내년 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본소득이 태풍의 눈이다. 그것은 외견상 상당한 명분과 호소력을 지닌 제도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 하겠다고 나서면 포퓰리즘 경쟁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이런 와중에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인 ‘안심소득’이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우리의 이목을 끈다.

실제로 오 시장은 올해 안에 200가구를 선별해 안심소득을 시범적으로 실행할 계획이다. 오세훈표 안심소득은 중위소득 미달 가구에 대해 그 부족분의 50%를 보전해 주도록 설계되었다. 현재 4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연간 약 6000만원이다. 만약 어떤 4인 가구가 연 수입이 3500만원이면 중위소득과의 차액(2500만원)의 50%(1250만원)를 보조받게 된다.

이런 안을 실험적으로 제시한 연구서가 바로 박기정 등의 ‘기본소득, 논란의 두 얼굴’(2017)이다. 이 책은 기본소득(basic income)과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음소득세의 논리를 우리 실정에 알맞게 변용한 안심소득(safety income)을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무엇보다 안심소득은 기본소득과 달리 불평등 개선에 효과적이며, 현행 복지제도와 달리 근로 유인을 계속 유지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인류의 오랜 이상이다. 지난 세기에는 복지제도가 그 일을 담당했다. 그것은 비약적 산업발전과 완전고용, 효율적 국가체제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성장이 둔화하고 완전고용이 위협받자, 복지제도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국가는 결코 효율적이지도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최근에 새롭게 관심을 끄는 것이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세다. 기본소득이란 재산이나 소득과 관계없이 국가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액수의 현금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다. 음소득세란 소득이 면세점에 미달하는 가구에 그 미달분의 일정 비율을 보전해 주는 제도다. 이처럼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소득을 보전받는다는 의미에서 음소득세라고 불린다.

기본소득은 요즘 비교적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주간조선 제2609호·제2623호 본란 참조) 반면 음소득세는 아직은 다소 낯선 편이다. 그것은 1940년대에 영국의 줄리에트 리스-윌리엄스(Juliet Rhys-Williams)에 의해 최초로 제안되었으나, 복지국가 흐름 속에 묻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이 재차 제기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음소득세는 모든 가구에 최소한의 생계수단을 제공하고, 복지제도의 단순화로 복지 누수를 막고 복지 관료 체제를 축소하고, 복지제도와는 달리 근로 유인을 유지시켜주려는 목적으로 제안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기본소득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보편적 지원을 추구하고 음소득세는 선별지원을 지향하며 철학적 배경을 달리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최근에 급속도로 공감대를 확대해 가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일부 정치인들마저 그 필요성을 언급할 정도다. 하지만 그런 획기적 조치가 실제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한편 음소득세는 다른 모든 복지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이미 상당한 복지를 실시하고 있는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세라는 혁명적 변화를 섣불리 추진하기는 곤란하다. 더구나 기본소득에는 천문학적 재원이 요구된다. 다만 저소득 지원에 집중하는 음소득세를 우리 실정에 알맞게 변용하는 방안, 즉 안심소득은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안심소득은 음소득세와 현행 복지제도의 접점을 찾아, 양자의 장점을 취합하려는 정책적 절충인 것이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매우 다양하고 너무 복잡하다. 그중에 대표적인 저소득가구 지원대책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자녀 장려금이다. 이 두 제도에 따르면, 4인 가족의 경우 소득이 전무하더라도 연간 가처분소득으로 최소한 약 2000만원(2016년 기준)을 보장받는다. 다만 소득이 생기면 지원액이 차감되거나, 아예 수급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이로 인해 근로 유인을 없앤다는 점이 현행 복지제도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2016년 중위소득(면세점과 거의 동일)은 4인 가구당 대략 5000만원이다. 따라서 안심소득을 도입해 지금처럼 최소한 2000만원을 보장해 주려면 안심소득률을 40%(5000만원×40%=2000만원)로 정하는 것이 적당하다. 이 제도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려면 약 37조원이 소요된다. 그런데 이 제도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주요 부분과 근로·자녀 장려금을 직접적으로 대체하여, 거기서 약 12조원을 절감한다. 따라서 추가 재원은 약 25조원이다.

2016년도 중앙정부의 보건·복지·노동 사업 예산은 총 123조원이다. 소득이 생계비에 미달하는 국민이 1000만명이라면 1인당 1230만원씩 지원할 수 있다. 4인 가구당 5000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더구나 오늘날 복지 관련 예산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그 증가분만 가지고도 안심소득 추가재원은 어렵지 않게 조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안심소득은 기존의 세제와 복지제도를 크게 흔들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책의 가시성과 안정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또한 현행 복지제도와 달리 소득이 늘면 가처분소득도 계속 늘어나서, 근로 유인을 강하게 유지시켜 준다. 더구나 제도의 투명성으로 인해 복지 누수를 방지하고 복지 행정 수요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한편 저소득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기본소득과는 달리 불평등 개선 효과도 매우 뛰어나다.

현행 복지제도 중에 어떤 것을 안심소득으로 대체할지, 안심소득률을 어떻게 설정할지, 재정은 어떻게 확보할지 등은 지속적으로 검토·보완해야 할 과제다. 그만큼 안심소득은 현행 복지제도를 존중하며 새로운 모형에 접목시키려는 매우 실용적인 시도다. 따라서 심각한 리스크 없이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제도의 완성을 향해 진화해 나아갈 수 있다.

기본소득이나 음소득세는 제도의 단순성과 투명성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그런 특징이 자칫 제도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한국형 안심소득은 제도적으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이 책이 나온 이후로도 현실은 크게 바뀌고 있다. 오세훈표 안심소득만 해도 새로운 중위소득(연 6000만원)을 반영하고, 재조정된 안심소득률(50%)을 선보이고 있다.

세상은 반드시 ‘선한’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획기적 조치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의 전격적 도입은 위험천만한 도박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구·토론하며 국민투표를 벌이고 실험까지 하면서도 아직은 어느 나라도 선뜻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제 겨우 논의가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시하겠다”는 용감한(?) 주장이 서슴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대한민국이 영원히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에 서울시가 시범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안심소득’이 각별한 관심을 끈다. 이것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좀 더 성숙한 정책 경쟁을 촉발하는 중요한 자극제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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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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