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수스 도심. 로마시대 닦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타르수스 도심. 로마시대 닦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유사 이래 인류 문명 문화사를 총망라한 공간에 들르고 싶다.’ 어느 날 원통형 머리의 우주인 대표단이 지구를 공식 방문했다. 기념으로 인류 역사를 압축한 곳을 돌아보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별나라 손님의 기대에 맞추기 위한 지구 최고의 문화인류학자들이 모였다. 어디가 최적의 장소일까? 만약 필자가 참가한다면, 현재의 이슬람 땅을 강력 추천할 듯하다. 구체적으로 지금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근동(中近東)이 인류사의 압축판이라 확신한다. 글로벌 최강국 미국은 역사가 250년에 불과하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전 문명사가 거의 없다. 아프리카는 인류 탄생 당시의 얘기가 대세일 뿐 근세, 근대, 현대가 없다. 산업혁명의 땅 유럽은 원래 인류 4대 문명지와 무관한 변방에 불과하다.

중세 유럽인은 몸을 씻지 않았다. 11세기 십자군전쟁 기간 중 현재의 시리아에서 비누를 처음 만난 뒤부터 씻는 문화에 익숙해진다. 이집트는 기원전 1세기 로마에 흡수된 이후 유럽의 착취 대상으로 추락한다. 중국은 인류 전체 역사 차원이 아니라 한족 중심 우물 안 세계에 불과하다. 최근의 위구르 인종학살(Genocide)에서 보듯, 포용을 근저로 한 대제국의 관용과는 무관한 곳이다. 문명 문화의 출발점인 문자, 즉 한자는 메소포타미아 문자보다 1600여년이나 뒤진다. 문자뿐만 아니라 농업·가축·수리시설·신화·천문·관료제·세금·군대 등등 인류의 창조물 상당수가 현재의 이슬람 땅에서 태어났다. 부분적이지만, 메소포타미아 아래 땅인 이집트가 인류 역사의 기점이 된 적도 있다. 피라미드·화장품·미라·벽화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 땅과 크게 다른 부분이 하나 있다. 인간이자 신인 파라오 한 명만을 위한 나라가 이집트다. 파라오 부활을 위한 테마파크로서가 아니라 지역 내 인간들 모두의 삶을 위한 공간이 메소포타미아에는 존재했다. 30층 높이의 초고층 최첨단 피라미드라고 하지만, 보통 이집트인이 보면 노동 착취 현장인 동시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별나라 세계에 불과했다. 물론 직접민주주의 체제하의 고대 그리스가 보면 메소포타미아도 한 수 아래다. 그렇지만 ‘파라오 대 노예’로 이분된 이집트보다는, 정신적·물질적 측면에서 ‘훨씬’ 앞선 땅이 메소포타미아다.

15세기 이후 나타난 메소포타미아의 ‘고립사(孤立史)’는 이슬람 땅이 우주인 투어 코스 영순위에 올라갈 수 있는 근거다. 잘 알려져 있듯이, 15세기 이후 21세기까지 이슬람의 역사는 ‘고립’이란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 유럽의 신대륙 발견과 함께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와 역사가 한순간에 추락한다. 육지 중심의 메소포타미아 역사는 대서양·인도양을 통한 바다 중심의 세계사 흐름에서 벗어나면서 수직 추락하게 된다. 실크로드를 통해 이뤄지던 동서(東西) 중개무역이 사라지면서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 밀려난다.

행인지 불행인지, 고립의 역사는 의외의 결과도 창조해낸다. 수천 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곳곳에서 펼쳐졌던 인류 문명 문화의 보전이다. 서방의 경우 전 세계 해양 진출에 이어 자국 내 도시, 거리, 집을 신설하고 정비해 나간다. 어제의 세계가 사라지고 근대화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슬람 땅은 다르다. 이러저리 쫓겨다니다가 20세기 중반 들어서부터 겨우 변혁의 시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수백 년 쌓아온 서방의 변혁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이슬람 종교가 가진 보수성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필자가 본 21세기 이슬람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본래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상태다. 유적·유물 현장으로 갈 경우, 고고학 책에서나 만날 법한 고대 문명 문화의 흔적을 아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관광객 유치를 위한 성형미인식 싸구려 개발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은’ 메소포타미아 원형을 곳곳에서 발굴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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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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