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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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을 탄 덴마크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주연을 맡은 매즈 미켈슨(54)과 영상 인터뷰를 했다. 덴마크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미켈슨은 악센트가 있는 유창한 영어로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군더더기 없는 답변을 했다. 미켈슨은 이 영화에서 매일 음주를 하는 고교 교사 마틴으로 나온다. 마틴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이론에 따라 친구인 동료교사 세 명과 함께 매일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친구들과 함께 삶의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미켈슨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나오는 ‘007 카지노 로얄’에서 피눈물을 흘리는 본드의 적 르 시프르로 나왔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장면.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장면.

- 혈중 알코올 농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이론은 실제로 있는 이론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노르웨이의 심리학자가 발표한 이론이다. 항상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고 있으면 삶의 질이 개선된다는 내용이다. 만약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0.05%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어떨 것인지 생각해 봤다. 그로 인해 우리가 영혼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인지 생각했다. 나와 내 친구로 나온 세 명의 배우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실제로 술을 마시고 연기했다. 우리뿐 아니라 술집 손님들로 나오는 엑스트라들도 다 마셨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영화 내용처럼 술을 계속 마시면 하루 포도주 2잔으로 출발한 것이 20잔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 이 영화의 내용이 덴마크가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어필하리라고 보는가. “영화는 덴마크 사람들 얘기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다.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에도 갔는데 그들은 비록 덴마크와 다른 음주 문화를 갖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서로 인정하는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첫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알듯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음주를 하면 대화가 흥겨워지고 다른 일들도 벌어지기 마련이다. 한 잔도 안 마시면 흥이 나지 않지만 두 잔 마시면 신이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덟 잔을 마시면 도가 넘게 된다. 따라서 음주는 국경을 초월해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공통점을 지닌 문화라고 하겠다.”

- 영화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때 음주에 대해 과거와 달리 생각하게 되었는가. 당신이 가진 음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영화로 인해 변하기라도 했는가. “아니다. 물론 우린 영화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긴 하지만 나와 동료 배우 세 명은 이번 영화 하루분 촬영이 끝나고도 심신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했다. 영화 스토리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주입한 것은 우리들이다. 나는 배우가 그들이 연기하는 역보다 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인슈타인을 연기하더라도 그를 연기하는 배우는 아인슈타인이 갖지 못한 개념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극중 인물을 흥미롭게 만들려면 주어진 그대로 연기할 것이 아니라 그 자신도 모르는 어떤 즉흥성을 가지고 역을 소화해야 한다. 음주에 대한 사회적 개념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그 결점을 잘 알고 있다. 과음의 위험을 알기는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서 포도주를 두 잔 정도 마시면 그 분위기가 멋있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별로 새로운 것도 아니지 않은가.”

- 영화를 본 외국인들이 덴마크의 음주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은가. 당신과 술과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우선 이 영화는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가 덴마크에 바치는 사랑의 헌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음주 습관에 대해서 말하자면, 미국 사람들은 점심때 식당에서 사업에 관해 대화하면서도 포도주 한 병을 다 마신다. 그리고 차를 몰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내가 보기엔 이건 미친 짓이다. 이 영화는 음주에 관한 얘기라기보다 삶의 포용과 인생에서 놓친 것을 다시 붙잡는 것에 관한 얘기라고 하겠다. 내 음주 습관을 말하자면 모든 덴마크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우리 세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젠 직장에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덴마크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세계 기록 보유국이다.”

- 마지막에 제자들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멋있던데 얼마나 연습했는가. “난 배우가 되기 전에 직업 댄서였다. 이를 아는 빈터베르그가 그 장면을 생각해낸 것이다. 자기 삶을 되찾고 재충전한 사람을 보여주자는 뜻이다. 춤추는 장면은 내가 다 했지만 그렇게 과도하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난 사실 이런 사실적인 영화에 춤 장면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한동안 망설였다. 그래서 그 장면을 꿈이거나 아니면 알코올에 취한 환상으로 처리하자고 제의했지만 빈터베르그는 이를 거절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춤을 춰본 것은 30년 전이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장면.
영화 ‘어나더 라운드’의 장면.

- 교사인 마틴은 술을 마시고 기분이 고양된 상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1970년대 학교에 다니던 때 선생님들이 술을 마시고 우리를 가르쳤던 기억이 난다. 교내 분위기와 학생들이 다 거칠기 짝이 없던 학교였기 때문에 그들을 나무랄 생각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알코올 없이 자신과 자기 삶에서 모두 해방감을 찾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술 마시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음주에는 그 무언가 마법적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 두 잔을 마셨을 때 일어난 아름다운 일을 겪어봤다. 또 그로 인해 우리가 지고 다니던 부담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 당신이 교사라면 무슨 과목을 가르치고 싶은가. 마틴처럼 개인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가까운 친구들이 있는가. “마틴처럼 역사를 가르치겠다. 난 역사광인데 역사를 흥미있게 가르치는 것에는 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 몇 명과는 포도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가깝게 지낸다. 그러나 때론 새로운 사람과 좋은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될 수도 있다.”

- 당신의 차기 작품은 무엇인가. “앤더스 토마스 옌센이 감독한 덴마크 영화다.”

- 앤더스 토마스와 토마스 빈터베르그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훌륭한 감독이어서 비교하는 것은 사절하겠다. 둘은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더 많다. 물론 둘의 영화는 많이 다르고 얘기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둘은 다 매우 시적인 사람들로 자기들 안에 꽃피우고 싶은 커다란 얘기들을 안고 있다. 앤더스 토마스는 광인의 열정으로 결실을 맺고, 토마스 빈터베르그는 인간성을 지닌 혼을 불러내듯이 열매를 맺고 있다.”

- 마틴 역에 어떻게 접근했는가. “빈터베르그가 각본을 보내와 그에게 내 느낌과 아이디어를 전했다. 우리는 촬영이 시작되면서 생각이 같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의견이 다르기도 했지만 그것이 촬영을 중단할 정도로 다르진 않았다. 한 장면 촬영이 끝나고 빈터베르그가 내게 ‘매즈, 내게 이런 생각이 있는데’라고 하면 난 그 즉시 그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촬영 전에는 토론이 많았지만 그 후 우리가 가는 곳을 알기 때문에 말수가 적어졌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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