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스플링스의 집을 팔고 '요트노마드'의 삶을 선택한 랜디 히치콕씨 가족의 요트. ⓒphoto. 랜디 히치콕 제공
미국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스플링스의 집을 팔고 '요트노마드'의 삶을 선택한 랜디 히치콕씨 가족의 요트. ⓒphoto. 랜디 히치콕 제공

미국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스피링스에 사는 여성 랜디 히치콕 가족은 지난해 4월 ‘벽’에 부딪힌 듯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집안에만 갇혀있다시피 한 지 한 달쯤 된 시점이었다. 반려견 산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잠깐 밖에 나갔다 오는 것 외엔 모든 외부활동을 멈춰야 했던 시기였다. 히치콕은 “집에만 머물며 우리 가족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오래도록, 그리고 상당히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오랜 가족회의 결과, 우리가 가진 재산의 대부분을 처분하고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히치콕 가족이 선택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바로 ‘요트 생활’이었다. 요트 생활은커녕 요트를 몰아본 경험도 없었지만, 팬데믹으로 달라진 일상이 그들에게 새로운 삶에 도전할 용기를 줬다. 히치콕은 원래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고, 남편 스티브와 12살짜리 아들 코디와 함께 플로리다 주 세인트오거스틴으로 향했다. 그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12만5000달러(약 1억4000만원)에 구입한 11.5미터짜리 쌍동선(2개의 선체로 이루어진 동력선)이 그들의 새로운 ‘집’이었다.

플로리다에서 요트 면허와 조정법 등을 간단히 익힌 히치콕 가족은 지난 2월, 플로리다 해협을 건너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로 향했다. 바하마에서 3개월 가량 머물고, 비자 만료 시기에 맞춰 다시 플로리다로 돌아올 예정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원격 수업으로 전환했던 아들이 올 가을부터 다시 학교에 나가면 남편과 히치콕 자신은 요트 판매 및 배달업을 하며 일상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랜디 히치콕은 “플로리다에 머물겠지만 요트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주택으로 들어갈 계획은 없다”며 “팬데믹을 계기로 ‘재산’과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히치콕 가족처럼 요트를 집으로 삼는 사람들, ‘요트 노마드족’이 늘고 있다. 지난 5일 CNN 보도에 따르면 최근 요트에 사는 사람 수가 증가했는데, 특히 팬데믹 기간 동안 그 수가 더 늘었다. RV(레저용 차량) 판매량과 함께 요트 판매량도 급증했다. 전미수산제조업협회(NMMA)에 따르면 2020년 요트와 관련 장비 판매액이 47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년 대비 9% 성장한 수치이며, 지난 13년 간 최고치다. 팬데믹을 계기로 더 느리고, 더 미니멀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요트 생활이 팬데믹 시대의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요트 판매업과 더불어 요트 코치 및 컨설팅 업도 성행하고 있다. NMMA의 조사 결과 2020년에 생애 처음으로 요트를 구매한 사람이 10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했다. 이렇게 증가한 요트 초보자를 교육하고, 요트 위에서의 삶을 도와줄 사람들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증가한 것이다.

세일링 SV 델로스(Sailing SV Delos‧구독자 69만명), 세일링 루비 로즈(Sailing Ruby Rose‧구독자 13만명) 등과 같은 세일링 유튜브 채널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한 단면이다. 이들 채널 운영자들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올리는 수익과 요트회사 등의 광고비용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요트 판매업자 마크 엘리엇은 CNN에 “팬데믹은 모든 규모의 요트 판매 및 대여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며 “40년 넘게 요트를 타면서 이렇게 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유튜브 등 SNS 상으로 봤을 때 근사하고 자유로워보이기만 하는 요트 노마드의 삶.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요트 위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요트 위의 삶은 소박하지만은 않다. 요트라이프 컨설턴트 짐 브라운은 “요트 생활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생활방식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잘 모른다”며 “간단한 수리 부품 하나가 필요한 경우, 온라인에서 15달러면 부품은 살 수 있지만 세관 및 각종 처리 수수료 등이 붙어 결국 원래 부품 비용의 수 배에 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바다’ 역시 만만치 않은 환경이다. 브라운은 “바다 위 생활을 안 해 본 사람이 흔히 갖는 잘못된 생각은 ‘항해를 할 때 바람이 불고 바다가 잔잔해지면 배가 목적지로 미끄러져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자연은 우리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대응해야 하며, 바람의 분다 해도 차로 달리는 것만큼 빠르고 편리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과 ‘주택’을 중심으로 했던 기존의 삶의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요트 위 생활은 좋은 계기를 마련해줄 것입니다.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일상의 전환인 셈이죠.”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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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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