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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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변화 사이, 별자리와 우주의 움직임, 가장 근원적인 선들, 수수께끼와 호기심…. 안현곤 작가의 기억 저장소에는 파편화된 단어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를 사로잡는 언어들은 과학적 질서가 지닌 임의성과 자연의 우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 언어들을 꺼내 캔버스에 풀어낸다는 것은 유쾌한 상상의 과정이기도 하고 신성한 의식이기도 하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풀어내든 작가가 바라보는 지점은 자연의 변화와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들이다. 거기서 얻은 감흥들을 마음의 필터로 걸러내고, 그 감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것을 찾아낸다.

비밀스러운 기호와 선, 언어 등으로 독특한 작업을 해온 안현곤 작가의 개인전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 갤러리 하비스트(6월 2일~7월 2일)에서 열린다. 자연을 키워드로 한 그의 작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는 방식을 깨고 새롭게 보기를 제안한다. 특히 그가 자주 사용하는 조형 언어는 ‘선’이다. 그의 선은 시간의 틈을 파고들듯 화면을 파고들면서 기억에 각인시킨다. 무정형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근원적인 존재의 질문을 낳기도 하고 새로운 이미지와 만나기도 한다. 낯선 단어들을 쌓아 만든 커다란 얼굴 실루엣, 원을 그리는 나비의 날갯짓에서 비롯된 생각의 에너지는 화면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6월 7일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전시회장에서 기자와 만난 작가는 “모든 창작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되고, 그 관찰은 경계의 선에 다다르게 된다. 따라서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말했다. 그는 20여년 전 강원도 양양과 홍천을 잇는 구룡령 자락으로 들어갔다. 바람과 들꽃, 원시의 계곡에서 사계절을 두 번 보내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8년을 보냈다. 다른 두 시간과 공간이지만 그에게는 세상 밖으로의 유배였고, 그 시간의 연결은 대상 너머의 본질을 파고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조혜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두 시절은 작가의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자연에 대한 지속적 탐구가 독일에서 철학적 깊이를 더했다. 우주를 유영하듯 그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성실한 드로잉과 기록을 통해 화면 안으로 안착한다”고 말했다. 패턴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더 큰 세계와 만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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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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