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원년은 2019년’이라고 할 만큼 코로나19는 세상을 크게 바꿔 놓았다. 특히 우리는 거의 상시적인 방역 규제로 인해 파탄 난 일상을 감내하고 있다. 심지어 영장 없이 곧바로 폰이나 카드의 내역을 검색당해도 그것을 탓하기보다 되레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안전과 행복만 보장된다면 프라이버시나 자유는 제약받아도 좋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일찍이 그런 풍조를 아예 기본적인 국가 운용 원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바로 가지타니 가이·다카구치 고타의 ‘행복한 감시국가, 중국’(幸福な監視國家 中國·2019)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중국인들은 국가와 공산당을 진정으로 지지하며, 국가의 감시와 감독이 자신들의 행복을 안전하게 보장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행복한’ 감시국가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행복’이란 지극히 공리주의적인 개념이다.

오늘날 중국인들 사이에는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견이 94%, “기술을 신뢰한다”는 의견이 91%에 달한다. 그것은 모두 압도적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긍정적·낙관적 분위기 속에서 그들은 결과적으로 행복만 보장해 준다면 국가의 어떠한 감시나 개입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그것은 ‘어두운’ 감시국가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인터넷 비즈니스의 발전이 눈부시다. 알리바바나 텐센트가 대표적이다. 그런 기업들은 대부분 슈퍼 앱을 운용한다. 즉 대표 앱에 가입하면 그 안에 다양한 하위 앱이 들어 있어 거의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들은 이런 슈퍼 앱 시스템을 통해 거래, 결제, 소셜미디어(SNS) 활동 등의 이용자 정보를 거의 전방위적으로 수집한다. 이는 비교적 자기 분야에 한정된 정보를 수집하는 다른 나라 기업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사실 이용자가 인터넷 서비스에 프라이버시를 제공하면, 이용 절차 간소화, 마일리지 적립 등 다양한 편익이 뒤따른다. 그래서 과거에는 주로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일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편리함의 대가로 개인정보를 기꺼이 기업이나 정부에 넘기고 있다. 이처럼 데이터 경제가 극도로 발전한 정보사회는 감시사회와 동전의 앞뒷면 관계다.

더구나 하이테크의 발전은 감시사회를 가속화시킨다. 예를 들어 감시카메라는 수효가 늘 뿐만 아니라,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도 급속히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개인의 동작 특징 등을 인식했다가 거대한 군중 속에서도 그 개인을 정확하게 특정해 낼 수 있다. 이를 실제로 구현한 것이 오늘날 중국의 ‘톈왕(天網)’ 프로젝트다. 말 그대로 ‘하늘의 그물’이다. 실제로 이런 시스템을 이용해 도시에서 유괴된 아동을 불과 30분 만에 찾아내기도 했다.

요즘 중국은 개인 및 기업 신용평가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신용불량 피집행인 명단’이라는 사회적인 블랙리스트 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현재 일정한 위반이나 법적 징계를 받은 약 2000만명이 고속전철 및 항공기 탑승 금지 등의 다양한 제재를 받고 있다. 나아가 각급 지자체별로 주민의 도덕 점수를 매기는 정책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범죄나 위반이 눈에 띄게 감소하는 등 중국은 전반적으로 ‘바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한때는 인터넷 확산이 중국 사회를 다원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당국은 인터넷에 대해 강도 높은 여론감시정책을 펼치고 있다. 검열·체포·접속 차단·금기어 차단 등은 다반사다. 그 결과, 인터넷에서 비판적인 논쟁은 자취를 감추고 오로지 ‘긍정 에너지’만 넘쳐나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에서 인터넷과 하이테크는 다원사회를 약속하기보다는 감시사회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통해 민주화 열기는 사그라들고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찬양 열기는 뜨거워졌다. 특히 지난 6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은 이런 열기가 고조된 행사였다. 중국의 MZ세대에게 아이돌은 국가와 공산당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사회에는 서양의 시민 또는 시민사회에 상응하는 개념 자체가 미약하다. 서양에서는 치자와 피치자가 동일하다고 보지만, 동양에서는 본래부터 양자가 철저히 구분되어 있다. 즉 사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높은 덕을 가진 통치자가 올바르게 이끌어 가야 한다는 관념이 강하다. 이런 전통과 더불어 프라이버시보다 편리성이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공리주의적 풍조가 오늘날 중국인들에게 감시사회를 기꺼이 수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공리주의적 풍조가 만연하고 하이테크가 발전하면 어느 사회든 궁극적으로 정교한 감시사회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공리주의는 결과주의, 행복(후생)주의, 집계주의로 요약된다. 거기서는 도덕 기준도 집계된 결과로서의 행복 총량에 의해 좌우된다. 예를 들어 감시기술로 개인의 속성이나 행동 패턴을 분석해 ‘반사회적’ 행동이 예상되는 사람의 자유를 미리 박탈하면, 범죄 예방을 통해 사회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도 이롭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무엇이 ‘반사회적’이냐는 사회마다 다르다. 앞으로는 아마 각 사회에 통용되는 기준을 아예 알고리즘으로 만들어 그 판단을 인공지능(AI)에 맡기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사회가 관장하던 시민적 공공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적 공공성이 대체할 전망이다. 특히 공리주의는 그런 알고리즘과 쉽게 결합될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알고리즘적 공공성으로 실현되는 통치란 “그야말로 ‘도구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적인 구매 행동이나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게시물 등을 데이터로 수집하고, 그것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절차에 따라 처리해서,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규칙이나 아키텍처를 만들어가는 통치행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중국이 지향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런 알고리즘에는 심각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AI가 가진 데이터 또는 판단에도 ‘인지 편향’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또한 데이터 축적과 판단은 요소별 세그먼트(Segment)를 통해 이뤄지는 바, 세그먼트되지 않는 특성들은 무시된다. 더구나 알고리즘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블랙박스다. 이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점수가 매겨지거나 행동이 제한된다. 이런 감시 시스템이 신장웨이우얼 지역 등에서는 소수민족 탄압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중국을 ‘어두운’ 감시사회로 오인한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국가와 국민이 서로 만족해하는 ‘행복한’ 감시사회다. 중국식 자본주의가 국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하듯이 ‘행복한’ 감시사회도 새로운 국가 운용 시스템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저자들은 현상만 분석할 뿐, 그런 사회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판단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처럼 행복·안전과 프라이버시·자유를 기꺼이 교환하려는 풍조가 중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코로나19 유행으로 방역의 고삐를 조일 때마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되레 치솟고 있다. 이렇듯 행복을 위해 자유를 좀 더 제한해 달라는 풍조가 은연중에 심화하고 있다. ‘행복한’ 감시국가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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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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