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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77호] 2021.10.04

노벨상 시즌, 그리스 7인의 현자가 전한 메시지

안탈리아=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silkroad100@gmail.com 2021-10-05 오전 11:40:06

▲ 안탈리아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현자 모자이크. 셀레우키아 도서관 바닥에 새겨져 있던 걸 뜯어서 왔다. 본래 가로·세로 4m 모자이크 안에 16명의 현자가 새겨져 있는데 파손 상태가 심해 12명만 확인할 수 있다. photo 유민호
매년 10월이면 빠짐없이 불어닥치는 계절풍 뉴스, 바로 노벨상 관련 소식이다. 믿거나 말거나 한국인 노벨상 후보자에 대한 얘기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한때 문학 분야가 오르내리더니 요즘은 과학영역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대부분 ‘아니면 말고’로 끝나지만 그래도 매년 ‘혹시’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다양성을 중시 여기는 시대정신을 감안할 때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도 곧 탄생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크게 터지고 곧바로 사라지는 한여름 밤 폭죽이 아니라 제2, 제3의 노벨상 수상자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노벨상 하나 받는 순간, 이미 관문을 통과했으니까 다음 경쟁무대로 돌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노벨상은 길고도 긴 수십 년의 학문적 여정을 필요로 한다. 결과로서의 노벨상에 앞서, 연구 하나에 인생 전부를 걸 수 있는 마음자세가 절실하다.
   
   
   플라톤의 저서 ‘대화’에 최초로 등장
   
‘그리스 7인의 현자(賢者·Seven Sages of Greece)’는 노벨상과 관련한 필자의 단상 중 하나다. 노벨상은 전부 6개 분야로 나눠 있다. 그러나 하나로 통합된 생리학과 의학상을 세분화할 경우 7개 영역으로 확장된다. 고대 아테네 시민이 21세기에 찾아온다면 ‘노벨상=그리스 7인의 현자 짝퉁’이라 비난할지 모르겠다. 현자의 영어 ‘세이지(Sage)’는 그리스어 ‘소포이(Sophoi)’에서 왔다. 단순히 현명한 사람을 넘어선 다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폭넓은 학식과 함께 이성에 기초하면서 미래 예언과 준비도 가능한 해결사가 당시 그리스 현자의 의미다. 당연하지만 현자는 모두가 흠모하고 따르며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싶은 인물로 부상한다. 당대의 어른은 물론 어린이들이 모범으로 삼을 구체적인 ‘롤모델’이었던 셈이다.
   
   그리스 7인의 현자가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7세기 때다. 알렉산더 대왕이 등장하기 300여년 전이지만 곧바로 동시대 그리스인 모두의 큰바위얼굴이 된다. 신과 왕의 권위만이 존재하던 당시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그리스인의 인생 모델로 부상한 것이다. 오직 그리스만이 생각해내고 창조해낸 위대한 전통이다. 현자를 둘러싼 그리스의 역사이자 전통이라 볼 수 있겠지만 21세기 노벨상 수상자 역시 인류 모두가 우러러보는 롤모델이라 할 수 있다.
   
   현자와 관련해 그리스인의 롤모델이 무려 7명에 달한다는 것이 우선 신기하다. 그리스는 서방 문명·문화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나라다. 원조답게 현자가 대량 탄생했다는 것을 당연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결코 적지 않은 수라 할 수 있다. 세계 최대 인구를 자랑해온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시대를 초월해 공자·맹자·노자·묵자 등 현인들을 다 끌어모아도 7명까지는 어렵다. ‘한국 역사 속에서의 7인 현자는?’이라고 물을 때 몇 명이나 떠올릴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근세 이후 서방 역사가들이 만든 ‘짜깁기 역사’로 인해 7명이나 탄생한 줄 알았다. 고대 로마 5현제는 좋은 본보기다. 로마 당시에는 5현제가 누구인지도 모를 뿐더러 5현제란 단어나 발상 자체가 없었다. 16세기 역사가 마키아벨리가 로마의 어제를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5현제가 창조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7인의 현자는 다르다. 그리스 역사가 진행되던 당시에 이미 7인 현자 목록이 존재했다. 후대가 아닌 당대에 탄생한 현자의 역사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이 그리스의 현자로 불렸을까?
   
   7인의 현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플라톤의 명저 ‘대화(Protagoras)’를 통해 전해지고 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 말한 철학·과학·수학의 아버지 탈레스(Thales of Miletus)는 그리스 현자 1호에 오른 인물이다. 이어 레스보스(Lesbos) 출신 장군인 피타쿠스(Pittacus),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비아스(Bias), 아테네 출신 정치개혁가 솔론(Solon), 로도스(Rhodes)섬 출신 시인 클레오불루스(Cleobulus), 평범한 농부 출신인 마이슨(Myson), 독재자를 몰아낸 정치가이자 시인인 스파르타 출신 킬론(Chilon)이 7인 현자의 구체적인 면면이다.
   
   
   도시국가별로 달랐던 현자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들 7명의 롤모델은 책이나 책상머리에서나 떠올리는 관념상 인물에 그치지 않았다. 벽화·조각·그림과 같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표현돼 그리스인 모두에게 대대손손 전해져왔다. 사진도 없고 정보도 극히 제한적이던 시대였지만 7인 현자에 대한 존경심은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로 확산됐다. 개인 차원의 롤모델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운명체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그리스인은 자신 이외의 모든 나라를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문명·문화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그리스의 정신적 우월감의 배경 중 하나로 7인의 현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특징이지만 문명·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 백인백색 다양하다. 전통은 물론 도시국가별로 모시는 신들도 전부 달랐다. 당연하지만 7인의 현자도 도시국가나 지역별로 다양화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플라톤 목록과 다른 새로운 롤모델들도 등장한다. 아테네 철학가 소크라테스, 수학자이자 철학가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2세기부터 등장한 신예 현자들이다. 그리스는 기원전 146년 로마에 의해 멸망한다. 그 유명한 코린트전쟁(Battle of Corinth)이 그리스 최후의 날로 기록된다. 코린트인은 물론 그리스인 전체가 로마의 노예로 추락했다. 그러나 로마의 실체는 힘자랑하는 싸움꾼에 불과했다. 로마가 무력으로 점령은 했지만 실제 로마인의 정신세계는 그리스인에게 정복당했다.
   
   그 결과 그리스의 문명·문화가 황제를 비롯한 로마 상류계층에 파고든다. 7인의 현자도 그리스에 이어 로마로 넘어가 큰바위얼굴로 지속된다. 소크라테스·피타고라스를 비롯한 새로운 인물들은 그리스를 점령한 로마인의 이상형에 맞춰진 롤모델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역의 차이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7인의 현자를 둘러싼 배경이나 캐릭터는 플라톤이 언급한 기존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철학자를 주류로 하면서 시인, 웅변가, 자연학자, 정치가들이 보태는 구조다.
   
   
   셀레우키아의 현자 모자이크
   
   그리스 유적지 셀레우키아(Seleucia)는 그리스 현자에 관련한 고고학 명소 중 하나다. 모자이크로 구성된 현자의 모습이 셀레우키아 도서관 바닥에 새겨져 있다. 구체적으로 누가 현자로 그려져 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스 현자에 관한 벽화·조각·그림은 지중해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리브레(Lybre)라고도 불리는 셀레우키아는 로마 시절 항구인 지중해 시드(Side)에서 북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있다. 알렉산더 대왕 사후(死後) 나뉜 4개의 헬레니즘 나라 중 하나로 이후 로마와 비잔틴 시대까지 번성했다. 셀레우키아 모자이크는 2세기 로마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중해 인근 도시지만 깊은 산속에 꼭꼭 숨은 고대도시가 셀레우키아다.
   
   언제나 그러하듯 방향을 알리는 표식판 하나 없다. 묻고 물어 겨우 찾아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자 전형적인 헬레니즘 스타일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의 남성적 엄격함과 페르시아의 여성적 섬세함이 합쳐진 구조물이다. 현자 모자이크가 있다는 도서관에 들렀지만 바닥에 모래만 채워져 있을 뿐 아무 흔적도 없다. 모자이크 바닥을 전부 뜯어 근처 안탈리아(Antalya) 고고학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불평할 틈도 없이 모자이크를 보러 당장 안탈리아로 달려갔다.
   
   “그렇게 늦게 걸으면 전부 못 본다.” 박물관이나 동물원, 수족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흔히 던지는 말 중 하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전부 봐야만 하는지 궁금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든지, 보는 데까지 보고 언젠가 다시 볼 때가지 미뤄두는 것도 좋다. 뷔페에 가서 제공된 음식을 전부 먹을 필요는 없다. 경쟁하듯 세상을 대할 경우 끝이 없다.
   
   안탈리아 박물관에 들른 것은 폐장 30분 전이다. 곧바로 모자이크 전시관으로 달려갔다. 그리스 현자는 가로·세로 4m 모자이크 안에 새겨져 있다. 놀랍게도 7인이 아니라 전부 16명의 현자가 들어서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7인 현자의 목록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16명에 달하는 현자를 보면 그리스 전역에서 추앙되던 인물 전부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모자이크 파손 상태가 심해 16명 가운데 12명의 현자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나톨리아 출신 철학가 아낙사고라스(Anaksagoras), 수학자이자 철학가인 피타고라스(Phythagoras), 철학가 페레키데스(Pherecydes), 아테네 정치가이자 웅변가인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에페수스 출신 철학가 헤라크리토스(Heraclitos), 아나톨리아 출신 시인 헤시오드(Hesiod), 스파르타 출신 법관이자 정치가 리코우르고스(Lykourgos), 아테네 정치개혁가 솔론(Solon), 강대국 간의 필연적인 전쟁을 예견한 아테네 철학가이자 역사가 투키디데스(Thukydides),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군인인 제노폰(Xenephon), 알렉산더 대왕에게 ‘태양을 막지 말고 옆으로 비켜라’라고 호령한 철학가 디오게네스(Diogenes)가 12 현자이다.
   
   나머지 4명은 확인 불가능했지만, 대략 소크라테스가 가장 먼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자의 대부분이 철학가라는 점에서 플라톤의 목록과 대동소이하다. 엄청난 부자나 노래를 잘하는 엔터테이너, 운동에 능한 스포츠맨, 장사를 잘한 비즈니스맨, 얼굴이 예쁜 미녀는 처음부터 그리스 현자에서 제외됐다. 굳이 표현하자면 외면이 아닌 내면의 세계가 그리스 현자들의 활동 영역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가치와 행복은 무엇인가, 정의·법·윤리·도덕은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문제가 그리스인 최대의 관심사이자 지혜의 기준이었던 셈이다.
   
   
▲ 베이루트 국립박물관에 있는 그리스 현자 모자이크. photo 위키피디아

   죽림칠현과 그리스 현자의 차이
   
   동양인이라면 그리스 7인의 현자를 접하는 순간 중국의 죽림칠현을 떠올릴 듯하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7인의 현자에 관한 그리스 특유의 발상이 페르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결과가 아닐까 판단된다. 중국 공산당은 소위 21세기 중국판 4대 발명품을 전 세계에 선전하고 있다.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에 이르는 고대의 4대 발명품에 이은 또 다른 4개의 업적이 21세기에 나타났다고 자랑한다. 고속철도, 공용 자전거, 모바일 결제, E-커머스가 중국발 첨단 4대 발명품이다. 내막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에서 도입했거나 이미 곳곳에서 시작된 것을 받아들여 규모의 경제로 확대 재생산한 것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은 얼굴색 하나 안 변한 채 독자적인 4대 발명품이라 우긴다. 틈만 나면 자랑하는 기존의 중국발 4대 발명품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고대 문명 현장에서 확인하고 느낀 것이지만 이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에 존재하던 물건들이 페르시아를 통해 들어간 뒤 개량된 것에 불과하다.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의 출발점은 전부 중국 밖에 있다. 나무 섬유질을 이용한 얇고 가벼운 종이라는 점에서 진화했지만 근본을 보면 이집트 파피루스 섬유질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그리스 7인의 현자보다 거의 900년 뒤 위(魏)·진(晉) 시대 나타난 죽림칠현도 마찬가지다. 발상 자체가 그리스에서 시작된 것이다.
   
   같은 단어지만 죽림칠현과 그리스의 현자는 근본부터 다르다. 뭔가 학문적이고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미지지만 실제는 무정부주의 반정치 허무주의로 무장한 7명의 피난처가 죽림칠현의 실체다. 그리스 현자들처럼 인간 사회와 신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나 연구가 전무하다. 화학적 요소인 물을 통해 세상을 분석한 탈레스, 숫자로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설파한 피타고라스, 법과 도덕 사이의 합치를 강조한 소크라테스…. 죽림칠현이 보면 고차원 문명세계에서 날아온 우주인의 세계관으로 느껴졌을 듯하다.
   
   그리스 현자 가운데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인물은 농부 출신 마이슨이다. 플라톤이 제시한 7인의 현자 중 한 명으로, 크레타섬에서 평범하게 농부로 일하다가 97세에 저세상으로 간 인물이다. 남에게 내세울 만한 업적이나 특별한 유산도 없다. 그러나 자연과 함께한 농부로서, 당시로서는 세계 신기록에 오를 만한 장수인생이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장수+농부’가 그리스 7인 현자에 오른 가장 큰 이유일지 모르겠다. 다른 현자들의 경력과는 다른 너무도 간단한 인생이라 말할지 모르겠다. 당시 로마 남성의 평균 수명은 24세였다. 아마 그리스도 비슷했을 것이다. 장수는 단순히 유전자적으로 오래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병장수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지혜와 지식을 필요로 한다. 대략 50대 중반부터는 의식주에서부터 생활습관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정신 건강도 중요하지만 육체 건강이 한층 더 핵심이다. 따라서 자기절제와 객관화가 365일 생활수칙으로 정착된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당장 이상이 온다. 좀 심하게 말하면 중세 수도원 생활로 접어든다.
   
   돈을 왕창 벌고 하루 만에 유명인으로 부상하는 것과 무병장수 97세 인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한발 더 나아가 ‘백만장자와 유명인 vs 무병장수 농부 97세’ 가운데 어느 것을 미래의 모델로 삼고 싶을까? 각자의 세계관이나 판단에 따라 다른 답을 던질 수 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한국인 가운데 필자가 가장 본받고 싶고 현자 넘버원으로 추대하고 싶은 인물은 102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다. 무병장수 농부 97세도 남다르지만, 철학자 직업을 가진 102세 인생은 그리스인조차 달성하지 못한 초유의 기록이자 역사일 듯하다. 가장 세속적이지만 가장 성스러운 무병장수의 지혜가 97세 농부와 102세 철학가의 일상사에 투영돼 있다. 사실 그리스의 현자, 나아가 인류의 큰바위얼굴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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