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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생활
[2678호] 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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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감독의 두 번째 시선]‘어시스턴트’의 관찰자 설정이 안고 있는 문제들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2021-10-12 오전 10:01:30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The Assistant(디 어시스턴트)’. 이 제목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많은 여성이 얼어붙을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경제활동을 하며 육체적 혹은 정신적 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이 반가운 한편 두려웠다. 영화를 보는 동안 잊고 싶은 기억을 너무 상세하게 떠올리게 될까 봐. 과거의 내가 혹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상처 입을까 봐.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한다. 직장 내 성추행이라는 ‘흔한’ 범죄가 사실적인 고발 영화가 될 때는,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은 관람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사전 알림이 있으면 좋겠다고. 어차피 이런 영화는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봐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영화 ‘어시스턴트’에는 몇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다. 직장 내 성추행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 시간과 공간을 아주 경제적으로 조직하고 연출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문제적 장면은 결코 재현되지 않는다.(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추행의 디테일이 아니므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 또 다른 장점은 영화가 주인공과 동료들이 일하는 사무실과 그 주위에서만 진행된다는 것. 불필요한 곁가지도, 낭비되는 공간도 없다. 그러나 이런 장점과 ‘선한’ 제작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주인공 ‘제인’(줄리아 가너)은 영화 제작자를 꿈꾸며 뉴욕의 대형 영화사에 취직했다. 좋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업무는 남자 동료들의 것과는 달랐다. 그가 맡은 역할은 대표의 ‘어시스턴트’. 남들보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청소를 하고, 남자 동료들의 점심을 주문하며, 그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치우고, 대표 부인의 갑질마저 참아내야 한다. 대표의 비정상적인 일 처리 방식과 수시로 쏟아지는 폭언 역시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표의 호텔 방에 불려간 신입 직원
   
   어느 날 바쁘게 일하고 있는 제인의 앞에 ‘어리고 예쁜’ 여자가 나타난다. 대표가 직접 채용했다는 이 신입 직원은 업무를 익히기는커녕 첫날부터 대표가 묵고 있는 호텔로 불려 간다. 출근은 하지만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며, 멍하니 앉아 퇴근 시간만을 기다린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던 제인은 결국 인사팀에 찾아가 대표의 만행을 고발하지만, 담당자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왜 쓸데없는 일에 열을 올리냐”는 것. 심지어 “영화 업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이런 사사로운 일에 개입해 뜻을 흐리지 말라”는 충고까지 듣는다. 그는 덧붙인다. “당신은 대표의 취향이 아니니 걱정할 것 없다”고. (이 역시 명백한 희롱이다.)
   
   여기까지 현실의 문제를 세세하게 짚어내던 영화는 그러나 태도를 조금씩 달리하기 시작한다. 영화계라는 커다란 산업 안에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추행당하고(나아가 즐기고), 그로부터 거대한 무언가를 얻는 것처럼 설명한다. 전전긍긍하는 제인에게 여자 상사는 말한다. “그들은 대표와 관계를 맺은 대가로 엄청난 것을 받을 것”이라고. (이 말을 하는 사람을 굳이 여자 상사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인공이 ‘관찰자’라는 설정은 이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영화는 대표의 방을 드나드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저 보여주는(외부에서 관찰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에, 그들 내부의 심정적 동요와 파문은 결코 읽어낼 수 없다. 그 여성들이 웃을 때, 그리고 영화가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 웃음을 그저 바라볼 때, 여성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상납하기로 결정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만다. 동시에 여성들을 그렇게 만든 힘의 구조는 묻힌다.
   
   또 한 가지. 영화는 대표의 ‘부름’을 받은 여자들을 관찰하는 제인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 때문에 제인이 ‘어리고 예쁜’ 여성을 질투라도 하는 것 같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제인이 사무실 앞 음식점 창가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은 특히 문제적이다. 영화는 부스러진 머핀을 집어 먹으며 대표의 사무실을 올려다보는 제인의 모습을 담는데, 이때 그는 영락없는 ‘처량한 젊은 여자’다. 누군가의 애정을 받지 못하고 전선에서 밀려난, 소외된 여자. (잘못된 일에 분노하는 제인은 더 이상 없다. 그는 완전히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놀라운 점은 대표와 함께 있는 피해자에게 영화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선택받지 못한’ 제인만이 스크린을 메울 뿐.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의 문제
   
   영화가 대표와 관계 맺는 여자들을 묘사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대표의 눈에 든 여자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형을 가졌으며, 백치미를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돌아보자. 과연 권력관계에서 성추행이나 성폭행 피해를 입는 여성들이 모두 이런 캐릭터에 해당할까? 누구보다 자기 주관이 확실하며,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들-영화 속 캐릭터들과는 반대되는-도 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숱하게 목격해 왔다. ‘어시스턴트’의 이런 설정은 성범죄 피해를 입은 여자들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런 면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그 때문일까. 영화가 끝난 뒤 우리가 다시 보아야 할 것은 분명 영화 산업의 문제적 구조와 그 구조에서 권력을 향유해 온 남자들인데도, 우리는 ‘여자들’을 보게 된다. ‘수혜를 입은’ 여자들, 그 구조를 ‘이용한’ 여자들, 자발적으로 그 체제에 ‘봉사한’ 여자들. 그러나 특정 성별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성범죄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구조에서 이런 설정은 기만적이다.
   
   어쩌면 이 영화의 어떤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산업 같은 거대한 구조를 배경으로 누군가가 착취당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찰자 시점’을 택할 때 필연적으로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구조의 내부에서 이미 그 구조의 한 축이 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고민하다가, 좌절할 확률이 높다. 영화의 결론에서 제인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끝끝내 순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 아닐까?
   


   개봉 2021년 9월
   감독 키티 그린
   주연 줄리아 가너
   등급 12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미국
   러닝타임 8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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