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64괘
주역의 64괘

주역(周易)의 세계는 늦가을 설악산처럼 중중하고 첩첩하다. 음양의 막대 384개가 합종연횡으로 만들어내는 64개의 괘는, 경고와 예언과 도참의 무성한 잎으로 울창한 숲을 이뤘다. 그러나 오랜 세월 감춰뒀을, 삭풍에 낙엽 흩날리는 스산한 풍경을 어찌 펼쳐 보이는가.

2021년 10월 한국에서 주역의 괘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광경은 기괴하다. 수천 년 세월을 속으로 품으며 동양의 거대한 사유 체계로 우뚝 선 주역이 모욕의 언어들로 엉망이 되는 순간, 우리 사회도 진창이 됐다. 당대의 천재들이 고고하게 보살펴온 주역이다. 주역은 언제나 시대의 절경(絶景)이었다. 그러나 몇몇 ‘꾼’들의 협잡으로 절경은 망가졌고, 오용과 남용으로 주역을 망가뜨린 한국 사회엔 듣도 보도 못한 장면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중이다. 주역의 내밀한 보복이라고나 할까.

‘화천대유’ 작명에 숨은 욕망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92만㎡의 좁은 땅덩어리와 그 땅 위로 허풍처럼 올라선 탐욕이 사태의 근원이다. 검·경의 무시 또는 방관을 뚫고 뉴스에 등장해 짧은 기간 안에 협잡과 부조리의 거대 상징이 된 대장동은 블랙홀인 듯 온갖 이슈를 빨아들이고, 빅뱅인 듯 우리 정치와 사회를 폭발시킬 기세다. 그 중심에 화천대유(火天大有)라는 이름의 자산관리회사가 있다. 화천대유가 무엇인가. 주역의 14번째, 대길(大吉)을 예감하는 괘의 이름이다. 심사와 숙고 끝에 하늘의 뜻을 묻던 이들에게 대망의 꿈을 안겼던 네 글자다. 몹쓸 작명이다.

화천대유를 중심에 놓고 두 가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우선 부동산 개발꾼들과 정치·법조 브로커, 후안무치한 명망가들의 커넥션으로 땅에 떨어진 주역 체계의 고귀한 속내를 간략하게나마 복원한다. 오명을 뒤집어쓴 화천대유의 진면목을 보여줄 생각이다. 대장동 이슈는 내년 20대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면서 악취를 뿜어내는 중이기도 하다.

주역은 예언서다. 점서(占書)라 해도 좋다. 그래서 다가올 대선과 관련한 주역의 예단도 흘깃 들여다보려 한다. 어떤 경우든 화천대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끔 이야기의 범위를 제한할 생각이다. 무궁에 가까운 주역의 전모를 세세하게 다룰 형편은 되지 않는다. 온갖 사연과 세월로 무장한 채, 중중첩첩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주역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는 간단히 살피고 시작해야겠다.

주역은 우리가 살아가는 불확실한 세계의 시뮬레이션 또는 메타버스다. 언뜻 보기에 대단히 정교한 방식으로, 두 개의 음양 막대를 64개의 괘로 쌓아 올린 강철 체계 같지만 보기에만 그렇다.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수천 년 전 산기슭에 무질서하게 널린 동물들의 뼈와 그 위에 각인된 불규칙한 기호들이 봉합된 채로 담겨 있다. 가뭄은 언제 끝날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천명을 받을 수 있을까, 대권을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하늘의 뜻을 물었고 칼집 낸 동물들의 뼈를 불에 그슬려 규칙이라곤 없어 보이는 점복(占卜)을 얻었다. 애매하고 모호하지만 그게 하늘이 전하는 은밀한 뜻이라 생각했다.

주역은 그 기호와 메시지들의 귀납이다. 주역의 수많은 해설서들이 신비한 어조로 얘기하듯, 태극과 음양에서 정합적으로 연역한 체계가 아니다. 주역의 가치와 매력도 바로 거기 있다. 불확실한 세상만큼 복잡다단한 속내, 그 속내를 음과 양의 조합만으로 단순화한 기발함에 주역의 진가가 있다. 합리와 불합리의 상충, 미신과 과학의 융합, 귀납과 연역의 소통이 주역 안에 온전하다. 수천 년에 걸쳐 사람들을 사로잡아온 64괘의 매력과 위력이다. 그런 64괘 중에서도 화천대유는 강렬한 아우라로 남다른 추앙을 받아왔다.

주역을 직관하는 방법 중 하나가 주어진 괘를 위아래 두 이미지의 중첩으로 보는 것이다. 예컨대 아래로도 까마득한 하늘(天), 위로도 아득한 하늘이 펼쳐지는 수가 있다. 중천건(重天乾)의 괘다. 잠룡물용(潛龍勿用), 비룡재천(飛龍在天), 항룡유회(亢龍有悔)는 시절을 타지 않고 등장하는 신문 정치면의 유행어들이다. 물에 잠긴 용은 쓰지 말아야 한다(잠룡물용). 때를 만난 용은 하늘 높이 날아오르지만(비룡재천), 그렇다고 너무 높이 오르면 후회할 수밖에 없다(항룡유회). 모두 중천건 괘에 등장하는 메시지들이다. 주역의 세계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화천대유도 중천건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체된다. 위로 불(火), 아래로 하늘(天)이니 화천이다. 불덩이 하나가 하늘 위로 떠 있다. 추수를 앞둔 한여름, 붉은 태양이 쉬지도 않고 쩡쩡하게 빛난다. 화천대유 안에는 다른 괘와 마찬가지로, 고대 제사장들의 주술과 후대 유학자들의 경구가 뒤섞여 있다.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다. 크게 형통하고, 어려워도 허물은 없으며, 위엄을 보이면 좋은 일이 있고, 기도하지 않아도 하늘이 알아서 도와준다…. 고대 중국 문헌에서 대유(大有)는 대풍(大豐)과 혼용된다. 대풍년, 그리고 전쟁에서의 승리는 고대인들에게 절대선이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이라면, 대풍은 경제의 절정이다. 화천대유는 주역 64괘 중, 경제적인 견지에서 최상의 괘다.

‘화천대유’ 사건의 주역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대주주 김만배씨. ⓒphoto 뉴시스
‘화천대유’ 사건의 주역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과 대주주 김만배씨. ⓒphoto 뉴시스

‘스리쿠션’으로 건넨 ‘수상한 돈’들

화천대유의 특별한 의미는 주역에서 화(火)의 움직임을 좇을 때 여실히 드러난다. 지화명이(地火明夷)란 괘가 있다. 땅 깊은 곳에(地) 붉은 태양이(火) 숨어 있다. 한때 빛났으나 이제는 상처받은 모습으로(明夷) 숨죽이는 중이다. 태양은 처음부터 하늘 위에서 쩡쩡하지 않았다. 땅속에 갇혀 신음하고 탄식해야 했다.

이후 화지진(火地進)의 괘에 탑승하는 것은 오랜 고통의 끝에서다. 앳되지만 붉은 태양이(火) 서서히 지평선 너머로(地) 모습을 드러내더니 진격을 시작한다(進). 태양은 땅 위를 떠돌고, 산 위를 주유하고, 비바람에 시달리다가 하늘 저 높은 곳으로 오른다. 그제야 화천대유의 괘상이다. 태양은 지상의 만물에 강렬한 빛을 쏘아준다. 세상을 움직이는 에너지원이 된다.

화천대유는 주역에서 궁극의 풍요와 한계 없는 베풂을 뜻하는 상징적 괘다. 대장동 무리들은 그 웅장한 형상을 가져다가 농락했다. 주역의 대표 선수를 협잡의 기치로 내세우고는 그 아래로 아수라장(阿修羅場)을 구축해나갔다.

1조(兆)원대의 대형 사업을 편취해 수천억원의 배당금을 자기들끼리 나눴다. 부당하게 얻은 돈에서 실명을 없애고는 당구장에서나 있을 ‘스리쿠션(three cushions)’으로 정치·법조계 인사들에게 수십억원씩을 뿌린 정황도 있다. 그러다 상황이 위험해지니 서로 다투고, 도망가고, 녹취하고, 검찰에 찌르고, 잡아떼고…. 이 정도면 천상세계의 패권을 놓고 제석천(帝釋天)과 싸우던 아수라가 버럭할 지경이다. 수십만원, 수백만원대의 일상에서 조용히 각자의 열심(熱心)을 내던 국민들은 화병에 걸렸다.

천화동인의 정치적 함의

타락한 지상의 무리는 화천대유 욕보이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주역의 천화동인(天火同人) 괘까지 끌어들인다. 화천대유에 자회사인 천화동인 1~7호를 더하면 8개이니, 64괘의 원형인 8괘를 겨냥했나. 주역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환장할 노릇이다. 참고 천화동인의 의미를 살피자.

주역에서 ‘화(火)’는 태양이기도 하지만 때론 불, 때론 신(神)을 함축한다. 화천대유에 천화동인이 겹치는 상황에서 주역은 묘한 암시를 준다. 화천대유의 태양이 천상의 신이라면, 천화동인의 태양은 지상으로 내려온 신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도교식으로 말하면 화천대유의 ‘화’는 야훼(여호와), 천화동인의 ‘화’는 메시아(예수)가 된다.

그런데 혼탁한 세상을 구원하러 내려온 메시아는 원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로마와 타협하는 과정에서 메시아의 정치색을 덜어내거나 탈색해야 했지만 그건 차라리 역사적 예외에 속한다. 게다가 ‘동인’은 동지의 규합을 뜻한다. 메시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동지가 필요했고, 대권주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동지가 필요하다. 화천대유 무리가 천화동인을 끌어들이는 순간, 대장동 협잡은 확연히 정치적 색채를 띤다. 누군가 자산관리회사 화천대유의 정체를, 특정 대선주자를 위한 정치·법조 로비의 플랫폼으로 규정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대장동 화천대유 무리는 과연 누구의 동지인가?

대장동 무리는 ‘누구’의 동지인가?

주역은 세상일의 조짐과 기미에 주목한다. 서리가 내리면 강물이 언다. 바람이 서늘하면 단풍이 진다. 화천대유 무리의 조잡한 행각에 속상한 채 주역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모종의 낌새가 느껴진다. 주역은 쉬지 않고 암시한다. 주역의 괘들도 가만있는 법이 없다. 주역은 그 자체로 변화의 이데아(Idea)다. 64괘는 쉼 없이 변하고 화천대유도 예외가 아니다.

대장동 사건에는 위로 정치·법조의 권력자들, 아래로 공무원·변호사·회계사·기자들이 얽혀 있다. 그런데 아랫단의 구성원들이 흔들리면서 대장동의 음모가 노출됐다. 그 사이 현실세계의 메타버스에 해당하는 주역의 세계도 흔들린다. 화천대유 괘가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윗단(상괘)의 ‘화’가 어렵사리 외양을 유지하는 사이, 아랫단(하괘)의 ‘천’에는 균열이 노골화된다. 흔들린 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다른 괘로 변한다.

주역에서 ‘화’로 시작하는 괘는 8개다. 주역에 내재하는 순서를 따르면, 화천대유→화택규→중화리→화뢰서합→화풍정→화수미제→화산려→화지진의 경로가 된다. 지금 대장동 상황을 염두에 두고 괘 8개의 변이를 관망할 때 화택규(火澤睽), 화뢰서합(火雷噬嗑), 화수미제(火水未濟) 세 가지 괘가 꿈틀거린다.

화택규는 이반과 갈등의 괘다. ‘규’가 어긋난다는 뜻이다. 이반과 갈등은 이미 진행형이다. 혼자 뒤집어쓰기 싫었던 누군가가 자신들의 대화를 몰래 녹취해 공개했다. 서로 협박하고 갈취하고 뺨도 때렸다. 법정 공방을 통해 이들은 더욱 원수가 될 것이다. 난장과 아수라는 사실 주역의 화천대유 괘에 내장된 불씨의 발화(發火)다. 어쨌든 일어난 일은 두고 보면 된다. 그보다 대장동 무리는 정말 누구의 동지인가?

화뢰서합의 괘에 답이 담겨 있다. ‘서합’은 물어뜯는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화뢰서합은 전쟁터의 이전투구 상황을 전한다. 전장(戰場)의 혼란 속에서 마른고기를 씹고, 독을 씹고, 화살을 씹는다. 그런데 ‘서합’의 의미는 이중적이다. 물어뜯는 것은 헐뜯는 것이기도 하다. 불(화)처럼 사납게, 번개(뢰)처럼 날카롭게 헐뜯는다(서합). 대장동의 아수라장을 끌어들인 치욕의 20대 대선판에서 사냥개, 하이에나처럼 ‘헐뜯는 자’는 누구인가? 대장동 무리는 지금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 궤변과 침묵을 고집하나?

“강을 다 건너려는데, 그만 꼬리를…”

화뢰서합의 주인공이 감당할 미래는 ‘화’ 계열 8개의 괘 중 화수미제에 담겨 있다. 화수미제는 미완성의 괘다. 건너지 못해, 끝내지 못해 ‘미제(未濟)’다. 화수미제가 괘사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간략하고 강력하다. 싱거울 정도다. 괘사에 이렇게 쓴다. 어린 여우가 강을 다 건너려는데,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화수미제의 주인공인 여우는 오랜 욕망에 사로잡혀 먼 길을 달렸다. 물어뜯고, 헐뜯으며 상황을 타개해왔다. 눈앞의 강만 건너면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막판에 삐끗한다. 대장동의 삿된 무리에게 난데없는 모욕을 당한 주역(周易)은 그렇게 탄식처럼, 예언처럼 읊조린다.

헐뜯는 자, 강을 건너지 못하리!

이지형 주역 연구가·‘강호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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