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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3호] 2021.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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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대통령,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결국에는 품성’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pcsun21@daum.net 2021-11-17 오전 8:43:04

다음 대통령 임기 5년이 대한민국의 향후 50년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다소 실망스럽다. 비전은 없고 온통 의혹과 네거티브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이런 답답함에 환한 빛을 비춰주는 인상적인 안내서가 있다. 바로 로버트 윌슨이 엮은 ‘결국에는 품성’(Character Above All·1996)이다. 캐릭터(character)란 품성, 인격, 개성 등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 전문가 10명이 각각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 조지 부시까지 미국 대통령 10명의 품성을 분석한다. 그들의 결론은 대통령의 업적이 ‘결국에는 품성’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국민을 살리는 대통령, 죽이는 대통령’(1997)으로 소개되었다.
   
   아마 20세기 미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은 루스벨트, 트루먼, 레이건 등일 것이다. 루스벨트는 부모에게서 진심 어린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그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고마운 곳이라는 신뢰감을 가졌다. 그는 37세에 부통령 후보가 될 만큼 승승장구했으나 소아마비로 39세에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것을 정신적으로 극복하면서 “무슨 일이든 어쨌든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강인한 낙관과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동정을 존경으로 바꿨다.
   
   한편 그는 포커, 낚시, 우표수집 등 취미생활을 즐기며 어느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이를 통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활력을 재충전했다. 그러면서도 예민한 정치적 감각을 발휘했다. 특히 그는 반대자들이 왕성하게 움직일 때 곧바로 대응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들의 활동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단숨에 행동하여 뜻을 이루었다. 결국 그는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위대한 대통령이 되었다.
   
   트루먼은 루스벨트의 급서로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때 ‘입증되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사실 그는 루스벨트와는 달리 카리스마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이나 지위도 없고 화려한 인맥도 없었다. 하지만 고졸 출신의 농부였던 그는 당장의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업적은 역사에 의해 평가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런 질박한 성품은 원폭 투하, 베를린 공수작전, 마셜플랜, 한국전 참전 등 역사적으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바탕이 되었다.
   
   판매원이었던 레이건의 아버지는 사려 깊은 진보주의자였다. 레이건 역시 당시의 사조에 따라 진보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유가 상실되어가는 현실을 바라보며 1960년대에 차츰 보수주의자로 변신했다. 그의 비전은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상이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번영하는 미국이다. 그는 보수주의가 가장 인기 없을 때 과감하게 보수주의로 전향했다. 그만큼 그는 용기 있고 확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유난히 영민하거나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기, 품위, 확신, 도덕성을 지녔다. 이런 품성을 바탕으로 국민을 효과적으로 설득했다. 한편 그는 어디서나 유머를 잃지 않았다. 저격을 당하고 수술대에 누워서도 의사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공화당원이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의사들은 “이 순간에는 저희들도 모두 공화당원”이라고 화답했다.
   
   성공한 대통령들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태도를 길렀다. 또한 혹독한 위기를 극복하며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용기, 자신감, 낙관, 책임감 등으로 무장했다. 아울러 극한 상황에서도 여유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적지 않은 단점을 지녔다. 하지만 장점을 발휘하며 단점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품성이 좋은 대통령이 결국에는 정치적 업적도 뛰어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반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대통령들도 있다. 존슨, 닉슨, 카터 등이 대표적이다. 존슨은 유색인종 학생이 많은 학교의 교사 출신이다. 교사 시절 그는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꿈꿨다. 실제로 정치에 입문하여 빈자와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려고 애썼다. 그것이 ‘위대한 사회’라는 목표를 낳았고 수많은 진보적 법안을 만들어냈다.
   
   한편 “존슨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참지를 못했다.… 또한 사람들이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철저하게 통제했다.” 이처럼 그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욕망과 자신이 최고가 되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 기묘하게 뒤섞인 인물이다. 이로 인해 그의 품성은 안정적·균형적이지 못했다. 결국 국민적 동의를 무시한 베트남전 수행, 요란한 구호에 비해 빈약한 성과 등으로 그의 리더십은 신뢰를 잃고 말았다.
   
   닉슨은 가난한 야채가게 집안 출신이다. 그는 오로지 홀로 자신의 노력으로 온갖 난관을 돌파하며 누구보다 화려한 정치경력을 쌓았다. 특히 부통령 두 번, 대통령 세 번, 총 다섯 번이나 주요 정당의 후보 지명을 받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때마다 그는 ‘새로운 닉슨(New Nixon)’을 표방하여 그것이 그의 별명이 될 정도였다. 그만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는 성장과정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홀로 ‘비밀스럽게’ 하려고 했다. 특히 국무부를 소외시킨 채 키신저를 통한 ‘비밀외교’를 선호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치적으로 성공하면서 권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통속적 관념에 사로잡혔다. 워터게이트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권력을 남용해 비밀스럽게 사건을 무마하려다가 탄핵위기에 몰렸다.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었으나 아쉽게도 ‘열린’ 리더십이 결여된 옹색한 지도자였다.
   
   카터는 중앙정치 무대에서 거의 무명에 가까운 신인이었다. 그는 기독교 가치관에 준거한 도덕 우선 정치를 내세웠다.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도덕적 위기에 빠졌던 미국은 ‘도덕적’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통령 카터에게 요구된 것은 도덕이 아니라 현실적 해결능력이었다. 결국 그는 대통령으로는 실패했다. 대통령은 도덕만으로 감당할 수 없다. 반면 그는 퇴임 대통령으로는 성공적이었다. 퇴임 대통령에게 도덕은 강력한 무기다.
   
   대통령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실패한 대통령들도 탁월한 인물들이다. 그들 역시 비범한 품성 요소들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들이 내적으로 안정이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실패한 대통령이 되었다. 특히 지나치게 개인적인 욕망에 집착하거나, 권력 만능에 빠져 권력 남용을 불사하거나, 현실을 외면하고 지나친 이상 추구에 매달렸다. 그들은 여유와 유머감각도 부족한 가운데 스스로를 자꾸 구석으로 몰아넣으며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대통령은 굳이 똑똑할 필요가 없다. 트루먼 대통령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유럽을 스탈린으로부터 구하는 데 공헌했다. 대통령은 영리할 필요도 없다. 영리한 사람은 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품성은 빌릴 수 없다. 대통령의 용기, 품위, 강력한 도덕성… 이런 것들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저자들의 일치된 결론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의 품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화려한 정책이나 비전도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를 잃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표면의 거품을 걷어내고 후보들의 품성, 즉 인간적 됨됨이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이 현명한 선택의 요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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