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데는 음악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는 말보다 노래로 들을 때 더 큰 힘을 지닌다. 선율을 입은 말은 머리와 입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오랜 시간 머문다. 그러니 별다른 장치 없이도 한 곡의 노래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뮤지컬 장르의 매력에 빠지지 않기는 힘들다. 레오 카락스가 뮤지컬영화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여태껏 파격적인 이미지를 줄곧 보여줘 온 그여서, 어쩌면 이런 시도는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껏 카락스의 영화가 가장 도드라지게 자극한 감각은 시각이었기에, 그가 어떤 식으로 관객의 청각적 상상력을 부풀릴지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네트’의 음악은 지극히 대중적이었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가 인상적이었지만, 여타의 뮤지컬 음악과 큰 차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건 아마도 레오 카락스가 음악에 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카락스는 음악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힘을 실어 넣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을 제압해 자신의 세계관을 공고히 했다.

영화는 스탠딩 코미디 쇼 배우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오페라 가수인 안(마리옹 코티아르)의 무대를 조명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언제나 무대 위에서 자신을 ‘살아내는’ 헨리와, 정해진 플롯 안에서 ‘반복된 죽음’을 맞이하는 안의 모습은 대비되지만, 두 사람의 무대는 모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이들은 얼마 후 결혼하고 둘 사이에서 딸 ‘아네트’가 태어난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쁜 안 대신 육아를 도맡아오던 헨리는 어느 순간부터 지친 몸으로 무대에 오르고, 더 이상 관객을 ‘웃기지’ 못한다. 실망한 관객들은 헨리를 외면하고, 대중의 관심에서 밀려난 그는 여전히 자신의 무대를 굳건히 지키는 안을 시기하다 못해 죽음으로 내몬다. 안은 아네트를 통해 남편을 저주하겠다고 선언하고, 그때부터 아네트는 안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기 시작한다. 헨리는 아네트를 데리고 전 세계 순회 공연을 다니며 딸의 ‘재능’을 착취한다.

영화의 줄거리는 언뜻 단조로워 보이며, 시종 나오는 노래는 일반 뮤지컬 영화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총합은 결코 평범한 뮤지컬 영화가 아니다. 보통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노래가 되어 불리는 것은 그 상황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절정에 이를 때의) 메시지이다.

그러나 카락스의 영화 속 음악은 그런 역할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카락스는 노래를 통해 관객을 몰입시키려 한다기보다 몰입을 방해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헨리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스탠딩 코미디도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는 무대에만 올라가면 기다렸다는 듯 관객을 조롱하는데,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조롱이 어쩐지 극장에 앉은 자신을 향하는 것 같아 함께 웃기 어렵다. 관객은 안팎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데,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곧 감독 레오 카락스 그 자체임을. 영화의 첫 장면에는 레오 카락스와 그의 딸 나스타샤가 함께 등장한다. 녹음 부스 바깥에 있는 카락스가 “So may we start?(시작해도 될까요?)”라고 말하자, 안에 있던 밴드 스파크스(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가 그 말을 반복해 따라 부르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이어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며 하나둘 모여드는데, 이 장면은 영화의 모든 말과 상황이 감독 레오 카락스의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헨리와 안, 그리고 그들의 딸 아네트 이야기는 감독 자신의 고백과 상상, 그리고 사죄로 읽히기도 한다.

‘아네트’에는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점이 있는데, 아네트가 실제 배우가 아닌 인형(퍼펫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 속 아네트가 엄마와 아빠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도구’와 다름없는 만큼, 그 역할을 인형으로 설정한 것은 의미 있다. 또 한 가지. 영화 출연에 스스로 동의할 수 없는 어린이를 위험한 촬영에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이 영화에는 아네트가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위 거장으로 불리는 남성 감독들의 영화에서 여자 캐릭터는 빈번하게 대상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레오 카락스 역시 그런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게 가장 문제적으로 보였던 것은 스탠딩 코미디의 세계(헨리)와 오페라 세계(안)의 대비였다. 헨리를 대변하는 스탠딩 코미디 쇼는 오로지 헨리의 말과 행동으로 플롯 없이 진행된다. 그의 상황과 컨디션에 따라 그날그날 공연의 형식이 바뀌고, 내용도 달라진다. 헨리는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본인의 말을 던지기 때문에, 이 무대는 때로 과장되고 예의 없을지언정 살아 생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을 대변하는 오페라의 세계는 죽어 있다. 안은 매 공연마다 같은 내용을 처음인 양 연기한다. 헨리의 움직임에 따라 환호부터 비난까지 매일 다른 리액션이 쏟아지는 코미디 쇼와 달리, 오페라의 세계에는 늘 반복되는 박수와 미소만이 있다. 영화는 무대 뒤의 움직임마저 겨냥하는데, 어쩐지 오페라라는 장르와 그 틀 안에서의 연기가 얼마나 작위적인지를 폭로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묘사가 감독의 예술관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캐릭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다. 오페라의 안은 코미디의 헨리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수동적이며, 납작하게 묘사돼 있다. 심지어 헨리가 폭력을 행사하는데도 안은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는데, 이는 레오 카락스가 여성 캐릭터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내게 ‘아네트’는 불균질하고 울퉁불퉁한 영화였다. 장점 못지않게 단점이 도드라지고, 순간순간 관객으로서의 자리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영화. 그럼에도 이 영화를 향한 고백을 멈출 수 없는 건 감독 레오 카락스의 내면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밑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충동을 안고서도 기어이 한발 한발 내딛는 이 감독의 단단한 내면이.

개봉 2021년 10월

감독 레오 카락스

주연 아담 드라이버, 마리옹 코티아르

조연 사이몬 헬버그

등급 15세 관람가

장르 드라마, 뮤지컬

국가 프랑스, 미국

러닝타임 141분

박수영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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