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하면 바다와 오름의 색깔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 사이에는 또 다른 제주의 색깔이 있다. 제주를 찾는 객(客)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색깔이다. 사진작가 조의환도 다르지 않았다. 일 때문에 수십 년 제주공항 문턱이 닳도록 오갔지만 객의 눈으로 바라본 제주는 똑같았다. 10년 전 제주로 이사하고 제주도민이 된 그의 눈에 비로소 제주의 다른 풍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올레길을 벗어나 들판과 마을길을 누비던 어느 날이었다. 하얀 각선미를 드러낸 무가 수없이 널린 밭을 만났다. 출하 시기를 넘기고 버려진 무였다. 시골 출신인 그에게 버려진 무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 후 제주의 밭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감귤 농사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제주는 밭농사가 발달한 곳이었다. 보리, 콩, 팥, 당근, 브로콜리, 콜라비…. 이루 다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현무암으로 쌓은 밭의 경계도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제주의 밭담은 그 길이만 2만2000여㎞에 이른다. 검은 밭담과 다양한 작물이 자라며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색상의 대비는 강렬했다. 흙의 색깔도 검은색, 붉은색, 누런색, 밝은 은회색 등 지역마다 달랐다. 따가운 햇살, 잦은 비바람에 단련된 제주의 땅이 생산해낸 농작물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그는 “제주의 경쟁력은 관광보다 농사에 있다. 농사를 잘 디자인하면 관광의 패턴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 곳곳을 훑고 다니면서 렌즈에 밭을 담은 이유이다.

그는 밭의 조형미를 담은 사진이야말로 제주 농사의 가치를 보여주는 가장 간결한 언어라고 생각한다. 제주에 대한 애정과 척박한 땅을 일군 농부들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 사진집 ‘조의환의 제주 스케치’를 내고 서울 종로구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밧디 댕겨왔수다’ 전시(12월 14~30일)를 연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제주도 농사를 관찰하며 기록한 사진일지이다. ‘밧디 댕겨왔수다’는 ‘밭에 다녀왔다’는 뜻의 제주어이다. 그는 “제주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작업의 시작이고, 제주의 밭과 농부에 대한 경배의 마음이 종점이다. 제주 농사의 가치를 알리는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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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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