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장씨 묘지명. 유한지. 1794 ⓒphoto 기계유씨 대종회
인동장씨 묘지명. 유한지. 1794 ⓒphoto 기계유씨 대종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한자의 형태는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둥글둥글 그림 같은 형태가 아직 남아 있는 서체는 전서(篆書)이고, 상형문자의 회화적 요소를 벗어나 문자의 기호적 요소를 완성한 것이 예서(隸書)이다. 예서가 현대 한자의 출발점인 셈이다. 철권통치를 했던 진(秦)나라 때 수많은 노역 죄수를 관리하기 위해 간편하고 쉬운 문자가 필요해 만들어진 탓에 노예 예(隸) 자를 써서 예서가 됐다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글씨체는 그 사람을 드러낸다. 옛 서예가들은 글씨에 혼과 마음을 담았다.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느라 손글씨의 감성을 잃어버린 시대, 한 땀 한 땀 붓끝으로 서예의 정신을 일깨우는 전시가 마련됐다. 경기도 수원박물관의 ‘예법묘경-기원(綺園) 유한지 서예’전이다. 유한지(兪漢芝·1760~1834)라는 이름이 낯설겠지만 추사 김정희(1786~1856), 눌인 조광진(1772~1840)과 함께 19세기 전반 예서 삼대가로 꼽힌다. 김정희의 예서가 땅속 깊이 뿌리내린 고목이라면, 유한지의 예서를 비상하는 용의 몸통으로 비교하기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의 현판 글씨가 유한지의 작품이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가기 위해 만든 경기도 안양의 만안교 앞 비석의 붉은 글씨도 그의 글씨이다.

수원화성 북쪽 수문인 화홍문 현판. 유한지. 1796
수원화성 북쪽 수문인 화홍문 현판. 유한지. 1796

조선시대 선비들은 고대 비석과 청동 기물 등에 새겨진 금석문의 연구에 심취했고 독창적인 서풍을 일궜다. 유척기, 유한준, 유만주, 유언수를 거쳐 유한지와 장남 유화주로 이어지는 기계 유씨(杞溪 兪氏) 가문이 그중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는 ‘예서 필법의 신묘한 경지’로 평가받는 유한지의 전·예서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를 기획한 수원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지나씨는 “조선 후기에서 조선 말기는 새로운 서예 흐름이 전개되는 시점이었다. 유한지는 서풍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자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만들어낸 자형의 변화는 이후 서예가들의 창작 토대가 됐다”면서 “금석과 고예를 추구한 추사체도 거기서 나온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한기 글씨의 기본은 중국 한예와 조선 예서의 수용에 있다. 자형(글자꼴)과 필법에 대한 변화와 창의성에 대한 고민이 획과 획 사이에 살아 있다. 정제된 분위기로 예서에 대한 탁월한 인식을 보여준 전시를 통해 위드코로나 시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되살려내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수원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서 12월 26일(월요일 휴관)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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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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