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수도 앙카라의 아우구스투스 신전. 벽면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업적록이 새겨져 있다.
터키 수도 앙카라의 아우구스투스 신전. 벽면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업적록이 새겨져 있다.

지난 11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를 라이브 방송으로 지켜봤다. 퇴임 6개월 전 대통령의 타운미팅형 이벤트라고 한다. 외국에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시청했다. 이날 대통령이 강조한 키워드는 ‘세계 톱10 한국’이었다. 수많은 ‘K-1등’이 증명하듯, 세계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톱10 국가가 한국이고, 거기에 맞게 자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형식은 ‘대화’라지만 내용을 보면 ‘연설’이나 ‘주의 주장’으로 비친다. ‘자부심’이란 단어로 포장됐지만 실제는 ‘자랑’이란 말로 들린다.

문 대통령의 얘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다. 지구에 들르기 전, 어린왕자가 경험했던 6개 행성에 관한 얘기를 보자. 어린왕자는 기묘한 논리로 살아가는 행성 내 6명의 인간을 발견한다. 이 중 두 번째 행성의 ‘자기만족형 인간(Narcissistic Man)’은 항상 남의 칭찬에만 귀를 기울이고, 행성에 살지도 않는 사람들의 박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캐릭터다. 남의 말, 그것도 달콤한 찬사만 듣고 모두에게 자랑한다. 하는 일에 대한 자신이나 비전도 없다. 궁지에 몰릴수록 사람들의 칭찬이나 찬란한 수식어에 매달린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삶이란 점에서, 남의 생각에 좌우되는 식민지형, 피동형 캐릭터라 볼 수 있다. ‘좋아요’ 엄지손가락 숫자가 존재와 행복의 나침반이 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다. “경제, 외교, 군사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전 세계 넘버원이다. 세계 모두가 미국을 넘버원이라 칭찬하고 부러워한다.” 필자가 체험한 수많은 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가운데, 이런 내용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넘버원’ 자리는 스스로의 노력과 땀이 일궈낸 결론이자 증거다. 남의 평가 이전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중요하다. 톱10, 톱30와 관계없이 노력의 결과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누가 칭찬하고 부러워한다고 올라가고, 비난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톱10이란 숫자로 표현된 경쟁구도 자체가 20세기 개발도상국 성장논리로 느껴진다.

언제부턴가 ‘촛불과 적폐’ 대신 ‘톱10 한국’이 정권의 신종 슬로건으로 떠오른 듯하다. 그러나 일요일 밤 이벤트가 끝나기 무섭게 톱10 한국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톱10의 가장 큰 근거라는 ‘K방역’이 덜컹거린다. 코로나19 하루 감염자가 4000명대(11월 23일 기준)로 폭증했다. 같은 날 이웃 일본의 감염자 수는 40명이다. 무려 100배 차이다. 일본의 확진자 숫자 자체가 미스터리라지만 두 자릿수 감염자 ‘J방역’을 근거로 톱3, 톱5라 자랑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의문이다.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무덤(Mauso-leum of Augustus)’은 2021년 세계 고고학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글로벌 팬데믹에 묻혀 크게 보도되지 못했지만, 2007년부터 보수공사에 들어갔던 무덤이 지난 3월 일반 시민에게 개방됐다. 건물 건립이나 도시계획이란 관점에서 볼 때 이탈리아만큼 느리고 비효율적인 나라도 없다. 시작은 있어도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라틴민족 특유의 느린 성격 탓이겠지만, 땅을 파면 튀어나오는 고대 유적·유물이 더 큰 이유다. 지하로 파고들면 ‘예외 없이’ 수백수천 년 전 역사가 등장한다. 그러면 모든 계획이 전면 중지되고 곧바로 고대 유적·유물 조사팀이 파견된다. 아우구스투스 무덤 주변은 로마 유적·유물의 핵심지역에 해당한다. 무려 14년에 걸친 ‘길고 긴’ 보수공사가 이어진 이유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무덤 지난 3월 개방

아우구스투스 무덤은 바티칸교회와 더불어 로마를 찾을 때 반드시 들르는 필수 방문지다. 무덤 바로 옆에는 ‘아우구스투스의 평화의 제단(Ara Pacis Augstae)’이 세워져 있다. 전면 유리로 뒤덮인 평화의 제단에 들른 뒤 뒤쪽 무덤도 찾게 된다. 항상 공사 중이었기 때문에 바깥에서 훑어보는 식의 ‘어중간한 관찰’에 그쳤다. 바티칸은 초대 교황이자 천국행 열쇠를 받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Peter) 무덤 위에 세워진 나라다. 아우구스투스 무덤은 종신 독재자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이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기원전 27년, 제정로마 황제에 오른 옥타비아누스(Octavian)의 묘다. 이탈리아 로마를 무대로 한 ‘성(聖)’으로서의 기독교와 ‘속(俗)’으로서의 고대 로마 대제국의 출발점이 직선거리 2500m 안에 있다.

무덤 개방과 관련해 필자가 주목한 것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Res Gestae Divi Augusti)’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을 담은 동판으로, 21세기 식으로 보면 개인 숭배 차원의 프로파간다 기록물이라 볼 수 있다. 업적록 동판은 원래 아우구스투스 무덤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실제 어떤 장식과 모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발굴된 똑같은 업적록이 있기 때문에 동판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건축은 로마 역사 재현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로마 문명·문화의 증거이자 결과가 바로 로마는 물론 지중해 곳곳에 널린 건물과 건축에 녹아 있다. 문자와 기록은 로마 문명·문화의 수준을 증명하는 또 다른 증거이자 결과다. 문명대국이라는 중국조차도 2000년 전으로 돌아가면 극히 일부분의 자체 기록만 존재한다. 로마의 경우 이탈리아만이 아니라 지중해 주변 전체에 넘치고 넘친다.

보수를 거친 무덤도 좋지만 문자와 기록을 통한 로마 창설자의 위업을 실감하고 싶었다. 따라서 무덤 개방과 함께 무덤 앞에 서 있었다는 업적록 동판도 복원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대이자 예측은 빗나갔다.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지 못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유적지 보수의 기본원칙이라고 한다. 모두가 원한다고 해도 고고학적 증거가 100% 없을 경우 ‘무(無)’로 돌린다는 입장이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터키 앙카라에 들른 가장 큰 이유다. 믿어지지 않지만 로마에서 무려 2000㎞나 떨어진 터키 수도 한복판 언덕에 아우구스투스 신전이 들어서 있다. 앙카라는 아우구스투스가 정복한 로마 동부 신천지의 중심이었던 곳이다. 기원전 23년을 전후해 세워진 신전으로 건립 당시 가로 36m, 세로 55m에 달하는 초대형 건축물이었다. 현존하는 그리스·로마 당시 최대 규모의 사원은 가로 30m, 세로 69m에 이르는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다. 앙카라의 아우구스투스 신전은 이보다 조금 작을 뿐이다.

동부 변방을 정복한 로마의 호연지기가 엄청난 크기의 초대 황제 신전에 투영돼 있다. 아우구스투스는 살아생전 이미 신으로 추앙된 인물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로마의 수호신 중 하나인 여신(로마·Roma)과 함께 신전을 지켰다. 아우구스투스 단독 신전은 사후(死後)에 등장한다. 따라서 앙카라의 신전은 ‘아우구스투스와 로마의 신전’이라 불린다. 놀랍게도 2000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신전의 일부, 즉 길이 32m, 높이 12m에 달하는 내부의 벽이 아직도 건재하다.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운좋게 살아남은 벽면에 새겨져 있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묘소 앞에 세워진 업적록 동판의 복사판이 2000㎞ 떨어진 변방의 도시 언덕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입상
아우구스투스 황제 입상

앙카라 신전에 남아 있는 황제의 업적록

아우구스투스 신전은 앙카라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들어서 있다. 보행자 전용 인도를 통해서만 찾아갈 수 있다. 앙카라에 들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하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앙카라는 로마가 정복하기 전, 이미 지역 내 성지(聖地)로 통하던 곳이다. 7세기 이후 이슬람이 앙카라 지역을 지배하면서 언덕 위 전체가 모스크(Mosque) 공간으로 변신한다. 현재 아우구스투스 신전 바로 옆에는 터키 이슬람사원을 대표하는 ‘하시 바이람(Haci Bayram)’이 들어서 있다. 아우구스투스 신전과 업적록 관찰은 이슬람 신자의 기도와 아랍어로 울려퍼지는 코란(Quran) 찬양 속에서 이뤄졌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지만 대리석에 새겨진 업적록은 마모가 심해 판독하기가 어렵다. 언어학자와 고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터키어·아랍어·영어·독일어 주석이 업적록 밑에 따로 전시돼 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구성된 전부 35개 문장의 기록으로, 아우구스투스가 세상을 뜨기 1년 전인 서기 13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전의 자기 자랑이 아니라 사후의 평가 자료로서의 기록인 셈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사후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서양 문명·문화사의 핵심 주인공으로 남아 있다. 한순간 뜨고 사라진 수많은 황제 중 한 명이 아니다. 로마는 물론 고도의 문명·문화로 진화된 서양사의 핵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33살에 황제에 오른 뒤 41년간 재임한 로마 창설자는 과연 어떤 식으로 자기 업적을 기록했을까? 크게 보면 업적비는 다섯 개 영역의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1. 황제의 경력에 관한 부분: 로마 공직 사회에서의 행적, 2. 아우구스투스의 공적 공헌에 관한 부분: 정부 돈이 아닌 자신의 재력에 기초한 로마 사회에의 공헌과 기부 내용, 3. 황제 재임 중 보여준 군사적 업적에 관한 부분: 정복된 지역의 현황과 점령 당시 황제의 교섭력에 대한 기록, 4. 로마 시민과 의회의 아우구스투스 치적에 대한 지지와 찬사에 관한 부분: 원로원이 중심이 된 황제에 대한 평가, 5. 부록으로 제3자가 밝힌 황제의 돈으로 충당한 로마군 월급과 공공 건축물 비용에 관한 부분’.

자기 돈으로 로마 군대 유지한 황제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은 부록을 제외할 경우 1인칭으로 서술된 기록이다. 한국 정치에서 보는 것처럼 자화자찬 나르시시스트 보고서 정도라 예단할지 모르겠다. 2000년 전이 1인 절대권력자의 일방통행 시대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자랑 범주’에 들어갈 내용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2021년 서울에서 보듯, 자기 작품을 두고 자기가 앞장서서 박수를 치는 식의 뻔뻔스러운 캐릭터와는 다르다. 본인이 나서긴 했지만 로마 원로원과 시민이 인정해주는 ‘자화타찬(自畵他讚)’ 업적록이 아우구스투스가 남긴 기록의 핵심이다. 업적록에 새겨진 수많은 자랑거리가 실제 로마에 나타났던 현실이었고, 다른 황제들에 비해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는 것이 각종 자료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주머닛돈으로 로마군 월급을 지불한 황제다. 돈을 마구 찍어내거나 세금을 올리지 않으면서도 당대 세계 최강 로마군을 유지했다. 군과의 신뢰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결과이자 증거가 바로 아우구스투스 사후 무려 200여년간 지속된 ‘팍스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다. 팍스로마나는 아우구스투스부터 2세기 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까지 이어진다. 후대 황제들의 희생과 노력도 있지만 팍스로마나 초상화의 중심은 바로 아우구스투스 그 자체다. 신의 이름이나, 일방통행 독재자의 프로파간다가 만든 자화자찬 초상화가 아니다. 로마 시민, 그리고 후세의 모두가 납득할 만한 팍스로마나를 현실화한 인물이 바로 아우구스투스다. 업적록은 그 같은 이념과 이상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증거물이다.

지난 3월 14년간의 보수 공사 끝에 문을 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무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4년간의 보수 공사 끝에 문을 연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무덤. ⓒphoto 뉴시스

정적에 대한 저주는 없다

업적록에서 필자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신의 적에 대한 부분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이후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혼란기를 평정하는 과정에서 사방팔방이 정적들로 들끓었다. 그러나 업적록을 보면 자신의 적에 대한 증오나 저주가 ‘전혀’ 없다. 자신에게 반대했거나 싸움을 건 정적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도 구체적인 이름 없이 ‘카이사르 암살자’라는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집트까지 도망가 대적한 안토니우스도 ‘당파(黨派)’라는 식의 익명으로 처리할 뿐이다. 적에 대한 증오 저주를 통한 피의 정치, 권위 창조가 아니다. 팍스로마나를 위해 승자·패자 없이 모두 함께 가는 정치가 아우구스투스 업적록의 근간이다.

둘째는 아우구스투스 스스로가 밝힌 자신의 위상에 관한 부분이다. 아우구스투스가 가진 수많은 공적 타이틀 가운데 ‘프린셉스(Princeps)’라는 것이 있다. ‘평등한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First among Equals)’란 의미다. 신으로까지 추앙된 인물이지만 로마를 대표하는 인물로서의 신일 뿐 그 자신은 수많은 로마인 중 한 명에 그친다는 의미다. 아우구스투스는 업적록에서 자신은 프린셉스이며 다른 동료 정치인의 권위 이상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원로원과의 관계가 시종 우호적이었던 이유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형식 절차상의 문제지만 업적록은 원로원의 예산과 승인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 황제가 멋대로 만들어 배포한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의 대표 격인 원로원의 도움으로 탄생한 것이다.

중국 고전 ‘논어’에 나오는 말로 ‘덕불고(德不孤)’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결코 외롭지 않다, 타인에게 덕을 베풀면 언젠가는 반드시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다. 수많은 로마 황제들의 무덤 대부분은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 파괴됐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 무덤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유지돼왔다. 앙카라의 업적록도 사라지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보존돼왔다. 아우구스투스의 덕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르겠다. 2명의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2명의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은 저세상으로 간, 살벌하고도 쓸쓸한 해가 2021년이다. 6개월 남은 현직만 있고, 어제의 대통령이 단 한 명도 없는 척박한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곧 등장하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록은 과연 어떤 식으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팍스로마나로 매진한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덕불고’ 업적록이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