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의 비리 의혹이 유난히 잦은 지역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기도 성남시다. 이번에 은수미 시장이 또다시 기소되었다. 자신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는 경찰에게서 수사 정보를 얻고, 그 대가로 이권과 특혜를 제공했다는 혐의다.

아직 법원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여기에 연루된 혐의로 이미 6명이나 구속되었다. 그러니 혐의 내용만으로도 불길한 상상을 막기 어렵다. 권력은 권력자의 의지를 실현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권력자는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더구나 발각만 되지 않으면 그런 권력 농단은 한 번에 멈추지 않고 확대되기 일쑤다.

이처럼 권력에 내재한 충동적 유혹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스릴러 소설이 있다. 바로 노르웨이 소설가 요 네스뵈(Jo Nesbø)의 ‘맥베스’(Macbeth·2018)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비범한 상상력을 발휘해 셰익스피어 ‘맥베스’의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편소설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도 권력의 광기가 자행하는 무참한 살육이 꼬리를 물고 벌어진다. 저자는 타락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권력의 악마적 속성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원작 ‘맥베스’의 무대는 11세기 스코틀랜드다. 장군 맥베스는 개선 중에 “왕이 된다”는 마녀의 예언을 듣는다. 이를 전해 들은 아내 레이디는 망설이는 남편을 충동질하여 던컨 왕을 살해하게 한다. 그리고는 경비병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맥베스는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린다. 자신의 비밀을 알 만한 주변 사람들을 잇따라 살해하며, 폭정을 일삼는다. 결국에는 반란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던컨 왕의 아들 맬컴이 왕위에 옹립된다.

소설 ‘맥베스’는 원작의 모티브와 등장인물을 고스란히 1970년대의 어느 쇠락한 도시로 옮겨온다. 이 도시는 한때 전국 제2의 도시이자, 번창한 산업도시였다. 하지만 지금은 실업·부패·마약·범죄가 만연한 곳으로 추락했다. 무능한 시장은 장기 집권을 하고, 경찰청장은 막강한 권력을 향유한다. 마약 조직은 도처에 촉수를 뻗치고, 정치권력까지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 한복판에서 지난 25년간 철권을 휘둘렀던 경찰청장 케네스가 돌연사한다. 그 자리에 개혁 성향의 던컨이 취임한다. 신임 청장은 커다란 기대를 모은다. 그는 자기 측근이자 개혁안의 설계자인 맬컴을 부청장에 앉힌다. 그리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특공대장 맥베스를 조직범죄수사반 반장으로 기용한다. 이 부서는 그가 도시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의욕적으로 새로 만든 핵심 조직이다. 반장은 청장, 부청장에 이어, 서열 3위 자리다.

맥베스는 고아원에서 불우한 유소년기를 보냈다. 거기서 더프를 만나 한 방을 쓰게 되었다. 고아원을 뛰쳐나와 방황하며 마약까지 했다. 경찰관 뱅쿼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맥베스를 집으로 데려다 키워 경찰대학에 보냈다. 경찰 간부가 된 맥베스는 아버지 격인 뱅쿼를 부하로 둔다. 또한 더프도 경찰대학에서 재회하여, 지금은 동료 경찰로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맥베스는 계층적으로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던컨은 바로 그런 점이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고 생각하여 그를 발탁했다. 한편 맥베스의 연인이자, 실질적 아내인 레이디는 이 도시의 최고 카지노의 경영자다. 그녀는 열세 살에 강간을 당해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를 내동댕이쳐 죽이고는 매춘업에 뛰어들었다. 거기서 종잣돈을 만들어, 거대한 카지노 사업을 일구고 사교계의 거물 행세를 한다. 하지만 그녀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른다.

한편 마약왕 헤카테의 메신저가 맥베스 앞에 나타나, 그가 반장 임명을 통보받기도 전에 그 사실을 알려주며, “장차 경찰청장이 된다”고 예언한다. 이를 전해 들은 레이디는 흥분한다. 헤카테의 힘을 잘 아는 그녀는 헤카테가 이미 강직한 신임 청장을 비토하고 후임으로 맥베스를 점찍은 것이라고 눈치챈다. 그녀는 맥베스를 충동질한다. 결국 마약으로 긴장을 억누른 맥베스는 술에 취한 청장을 살해하고, 그 배후로 범죄조직을 지목한다.

청장이 죽자, 부청장인 맬컴 중심으로 경찰청 지도부가 꾸려진다. 그러자 맥베스는 뱅쿼를 찾아가 맬컴을 죽이라고 강요한다. 뱅쿼의 외아들 플로렌스도 현재 경찰대학에 재학 중이다. 맥베스는 “우리와 같은 서민 출신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장차 플로렌스에게 청장 자리를 물려주자”고 제안한다. 갈등하던 뱅쿼가 맬컴을 납치해 가짜 유서에 서명을 하게 한다. 그러나 마음이 약한 뱅쿼는 맬컴을 차마 죽이지 못하고 협박만 하여 그를 빼돌린다.

맬컴도 자신과 가족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일단은 피신한다. 그가 유서를 남기고 사라지자, 서열 3위인 맥베스가 자연스럽게 청장 대행이 된다. 처음에 맥베스는 일일이 레이디의 코치를 받았으나, 곧바로 자리에 적응해 누구보다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거기에는 마약의 힘도 컸다. 그는 기자회견 등을 앞두고는 늘 마약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점점 마약에 깊이 빠져들면서, 헤카테의 사슬에 더욱 깊이 묶이게 된다.

뱅쿼는 그에게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그는 맬컴을 죽이지도 못하고 자신의 비밀만 알게 된 뱅쿼마저 죽이기로 한다. 범죄조직에 살인을 청탁하며, 확실한 실행의 증표로 뱅쿼의 목을 베어 보내라고 한다. 맥베스의 초대로 저녁을 먹으러 오던 뱅쿼 부자는 범죄조직의 공격을 받는다. 뱅쿼는 죽어서 목이 잘렸고, 아들 플로렌스는 행방불명이 된다.

그러는 사이에 맥베스의 만행은 점점 더 도를 더해 간다. 아울러 그의 음모를 눈치채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그는 무지한 충견인 시턴을 특공대장에 앉히고 기관총까지 구입한다. 그를 앞세워 자신의 음모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한다. 심지어 오랜 친구 더프의 집을 공격해 그의 가족을 몰살시킨다. 더프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지만, 지명수배자가 된다.

그는 헤카테를 죽이고 시장을 암살한 다음, 자신이 시장 선거에 나서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헤카테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그의 계획은 어처구니없이 빗나간다. 레이디마저 몽유병에 시달리다 죽고 만다. 한편 절망에 빠진 더프는 뱅쿼의 압수된 유품 쪽지에 적힌 주소지를 무작정 찾아간다. 거기서 뜻밖에도 맬컴과 플로렌스를 만난다. 그들은 함께 도시로 돌아와 맥베스의 음모를 폭로한다. 결국 맥베스는 파멸하고, 맬컴이 청장 자리에 앉는다.

이 소설은 권력이 일단 탈선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흠을 덮기 위해 권력을 악용하는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머지않아 거악이 된다는 점을 경고한다. 물론 민주국가에서 권력에는 여러 견제 장치가 있다. 하지만 권력이란 그 속성상 “타인의 의사를 거슬러서도 나의 의사를 관철하는 힘”이다. 실제로 공직자는 크든 작든 권력을 합법적으로 위임받는다. 그래서 소설 속 맥베스처럼 본래는 충직했던 사람도 권력을 잡으면 탈선할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공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악용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더구나 권력 농단은 한 번으로 멈추지 않고 끝없이 확대되기 일쑤다. 그래서 공직자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특히 단체장이나 대통령은 능력만 있다고 아무나 맡아도 되는 영업관리직이 아니다. 능력은 주변의 도움으로 메울 수도 있지만, 도덕성은 오롯이 본인만의 몫이다.

키워드

#지금 이 책
박종선 인문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