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북쪽 시리아와 접경 지역에 있는 가브리엘수도원. 서기 397년에 세워진 시리아정교회 최고 수도원이다. ⓒphoto 게티이미지
터키 북쪽 시리아와 접경 지역에 있는 가브리엘수도원. 서기 397년에 세워진 시리아정교회 최고 수도원이다. ⓒphoto 게티이미지

전염병 시대가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깜깜한 어둠 속 터널의 끝이 안 보인다. 2021년 전 예수가 탄생했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정복자 로마의 지배가 영원히 갈 것이라 믿었을 듯하다. 예수 탄생은 이스라엘을 넘어서 인류 모두의 구원과 희망으로 이어진다. 성경의 마가복음 5장 41절에 나오는 ‘달리다굼’이란 말은 전염병 시대 종식을 믿는 가장 큰 근거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대한성공회 개역 한글판 성경)

막 숨을 거둔 12살 소녀를 되살리는, 예수가 행한 기적 중 한 장면이다. 신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을 경우 전염병 정도가 아니라 죽음조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미다. ‘달리다굼’은 수많은 성경 구절 중 방점을 찍고 싶은, 필자의 가슴속에 새겨진 말이기도 하다. 영어판 ‘킹 제임스 바이블’에 따르면 ‘Talitha cumi’로 표현된 말로, 예수가 내린 ‘부활의 명령’이다. 한국어로 표기된 ‘달리다굼’보다, ‘탈리사 쿠미’로 발음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소녀(Talitha)’라는 명사, ‘일어나라(cumi)’는 동사가 합쳐진, ‘소녀야 일어나라(Little girl, get up)’라는 의미다.

‘달리다굼’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게 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 식당에 들렀을 때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3대의 대가족 20여명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손녀의 이름이 ‘쿠미’라고 했다. 언뜻 듣기에 일본 발음처럼 느껴져서 어원이 어디인지 물어봤다. “성경에 나오는 고대 시리아 말이다. 기독교 신자라면 모두 알고 있는, 예수가 말한 ‘일어나라’는 의미다.”

예수의 일상어는 시리아어였다

성경에 시리아 말이 나온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수차례 정독한 성경이지만, 예수가 시리아어로 부활을 명령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무지와 무식’이 이유지만, 신에게 뭔가 큰 죄를 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호텔에 돌아온 즉시 ‘예수의 언어’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놀랍게도 예수가 일상에서 말한 언어가 히브리어가 아닌 시리아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로마 치하의 라틴어나, 당시 지중해 지식인의 언어인 그리스어도 아닌 시리아어가 예수의 일상적 언어였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로 돌아가지 않는 한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시리아어는 신학자 대부분이 인정하는 예수의 언어다. 기독교와 무관하더라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ema sabachthani)”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46절에 나오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의미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하늘을 보며 울부짖은 ‘처절한’ 독백이다. 이것이 바로 시리아어다. 오후 3시 숨을 거두기 직전 십자가의 예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고통과 비극의 언어가 바로 시리아어다. 당연하지만,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한 말이 세상을 뜨기 직전에 남기는 최후의 언어일 것이다.

시리아정교회(Syriac Orthodox Church)는 갈릴리에서 알게 된 ‘쿠미’와의 만남 이후 주목한 종교다. 예수가 사용했던 2000여년 전의 시리아어에 기초한 의식과 신앙생활에 주목하는 유서 깊은 종파다. 사도 바울이 세운 안티오크(Antioch) 교회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사원으로 통한다. 지중해 동쪽에 인접한, 현재의 터키 안타키아(Antakya)에 세워진 교회다. 예수가 처형된 뒤 12 유대인 제자들을 중심으로 한 모임이 곳곳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기름 부은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Christ) 신자임을 공언하고, 유대인만이 아닌 비유대인을 포함한 교회는 바울의 안티오크에서 시작된다.

당시 안티오크는 21세기 뉴욕과 비슷한 멜팅포트(Melting Pot) 도시였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 다민족·다종교 공간이었다. 이곳의 거주민 대부분이 사용한 공용어도 바로 시리아어였다. 히브리어는 유대인 일부만이 사용했다. 바울의 안티오크 교회는 시리아어에 기초한 최초의 기독교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이 세운 안티오크 교회의 발자취

안티오크 교회는 이후 여러 종파로 나뉘어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대부분 이슬람 땅에서 살아남은, 기독교 수난사의 증거들이기도 하다. 시리아정교회는 바울 교회의 법통을 잇는 대표적 종파에 해당한다. 서방 가톨릭 중심 세계관으로 보면,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규모 지역 종파로 비칠 듯하다. 그러나 2000여년 기독교 역사라는 차원에서 보면 유럽의 가톨릭에 앞선, 최고(最古) 원조에 해당하는 종파가 시리아정교회다. 특히 예수의 일상 언어인 시리아어를 통해 탄생, 발전한 교회란 점에서 라틴어에 기초한 가톨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종파이기도 하다.

전 세계 신자가 500만여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시리아정교회는 바울 교회가 만든 조직 신앙체계 법통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 물론 가톨릭의 교황과 똑같은 위상의 최고지도자도 갖고 있다. 신 앞에 설 경우 시리아정교회와 가톨릭은 평등하다.

종교 순례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갖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두 개의 강을 낀 메소포타미아와 주변은 인류에 등장한 수많은 종교들의 발상지이다. 문자, 천문학, 바퀴, 축산, 농업의 탄생지인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문명·문화의 원점이라 볼 수 있다. 신의 탄생은 바로 인류 문명·문화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하늘, 땅, 바다, 심지어 지하를 기반으로 한 신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도 원류로 들어가면 메소포타미아로 결착된다. 이집트는 파라오를 신으로 모시는 지역 차원의 문명·문화에 불과하다. 동과 서,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종교의 무대가 바로 메소포타미아다. 메소포타미아 변방에 속하는 이스라엘은 그 같은 배경하에서 탄생한 일신교의 땅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상류, 즉 현재 터키의 동남부 지방은 이란·이라크·시리아를 엮는 고대 종교의 박물관과 같은 곳이다. 인류사 초기 인기 신이었던 다산(多産), 태양, 달을 상징하는 신들의 무대이자, 초기 기독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티그리스 상류에 위치한 바트만(Batman)은 고대 종교는 물론 기독교 ·이슬람·조로아스터교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종교의 현장이다. 멀리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당시 경유지로, 오스만튀르크제국이 존재하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터키·쿠르드·유대·시리아·이란·아르메니아 민족이 함께 살았던 메트로폴리탄 도시이기도 하다. 이곳에선 세금만 내면 이슬람 외의 종교도 믿을 수 있었다. 필자가 현지에서 특히 접하고 싶었던 것이 시리아정교회다. 시리아정교회는 바트만 주변을 ‘제2 예루살렘’이라 부른다. 유대교와 유대인의 아성인 예루살렘보다, 다민족·다문화가 존재하는 제2의 예루살렘 바트만이 신의 포교를 위한 전진기지라 믿고 있다.

지난 7월 1일 바티칸을 찾은 시리아정교회 지도부. 왼쪽에서 두 번째가 시리아정교회 교황인 이그나티우스 아프렘 2세, 가운데가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photo 뉴시스
지난 7월 1일 바티칸을 찾은 시리아정교회 지도부. 왼쪽에서 두 번째가 시리아정교회 교황인 이그나티우스 아프렘 2세, 가운데가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photo 뉴시스

시리아정교회의 심장 가브리엘수도원

이라크 국경선 근처 도로에서 벗어나 북쪽 바트만으로 향하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가브리엘수도원(Mor Gabriel Monastery)이다. 작은 나무판에 표시된 안내 표식이 전부다. 제2의 예루살렘 주변에 펼쳐진 시리아정교회 수도원일 것으로 보고 달려갔다. 산이 아니라 평지에 들어선 수도원이기에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지중해 에게해 주변 기독교 수도원의 경우 산이나 높은 언덕을 끼고 있다. 반면 메소포타미아는 평지나 작은 언덕이 수도원의 주된 기반이다. 수도원에 가까이 가면서 놀란 것은 엄청나게 큰 규모다. 주변을 둘러싼 농토는 물론, 수도원 크기 자체가 남다르다.

필자가 접한 이슬람 국가 내 기독교 수도원 가운데 최대 규모로 느껴진다. 현장에 도착해 한층 더 놀란 것은 가브리엘수도원의 연혁이다. 서기 397년 세워진, 시리아정교회 최고 수도원인 동시에 기독교 전체를 통틀어 장구한 역사를 가진 수도원이다. 신의 도움으로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만난 듯하다.

시리아정교회와 관련해 특히 주목한 것은 두 가지 영역이다. 고대 시리아어에 관한 것과, 교회를 장식하는 조각과 문양에 관한 부분이다. 가브리엘수도원은 1시간에 한 번씩 공개 투어를 행한다.

터키어로 이뤄진 투어지만, 안내자가 영어도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현지 관광객 4명과 함께 수도원 안에 들어갔다. 1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라고 하지만, 수도원 건물의 대부분은 최근 세워졌다고 한다. 제2의 예루살렘 성지는 19세기 말 오스만튀르크 추락과 함께 죽음의 현장으로 변해간다. 기원전 5세기 때부터 이어온 메트로폴리탄 도시의 역사가 민족 간 대학살과 복수극으로 얼룩진다. 종교가 가장 큰 이유다. 기독교 신자에 대한 집단 참살과 더불어 수도승은 물론 수도원도 파괴된다. 수도원이 재건축된 것은 21세기 들어서부터다. 서방 기독교 단체의 지원으로 과거의 모습을 다시 찾은 것이다. 석회암은 새로 단장된 수도원의 주된 건축 재료다.

보통 메소포타미아의 건축 재료는 대부분 벽돌이다. 강에서 채취한 점토가 벽돌의 원료다. 메소포타미아 주변 이슬람 사원의 대부분은 벽돌로 이뤄져 있다. 성경에서 예수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라”고 말한다. 기반만이 아니라, 돌로 된 대리석과 석회암이 초기 교회 건축 재료로 사용된 근거이기도 하다.

수도원 투어를 맡은 안내원은 긴 수염을 단 시리아인 수도승이다. 가톨릭 수도승은 수염을 깎지만, 시리아정교회에서는 길게 기른다. 그는 긴 망토의 수도원 복장이 아니라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다. 예배에 참석할 때는 검은 망토를 입는다고 한다. 유럽 수도원에 들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수도원의 종파에 따라 입는 옷의 색상이 전부 다르다. 프란체스코수도원은 브라운색, 베네딕트수도원은 검은색, 도미니칸수도원은 검은색과 흰색을 겸한 옷을 입고 있다.

수도원에서 고대 시리아어가 차지하는 의미를 물어봤다. “시리아정교회는 2000년 전 예수의 언어를 기억하고 전수하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주변 기독교 신자의 어린이를 상대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나처럼 수도원에 거주하면서 배우고 전수하는 수도승도 있다. 현재 수도승 30명 정도가 시리아어를 배우고 있다.” 고대 시리아어는 히브리어는 물론 아랍어와도 전혀 다른 언어라고 한다.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법이나 발음도 전혀 다르다.

가브리엘수도원 벽에 그려진 아기예수 탄생 장면. ⓒphoto 유민호
가브리엘수도원 벽에 그려진 아기예수 탄생 장면. ⓒphoto 유민호

“아이들에게 예수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유대인인 예수가 히브리어가 아닌 시리아어를 일상어로 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듯하다. 2014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이스라엘 방문 당시 벌어진,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와의 설전을 보자. 네타냐후는 교황과의 대화 도중 “예수는 여기(이스라엘)에 있었고 히브리어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교황은 총리의 말을 듣는 순간 고개를 흔들면서 ‘아람어(Aramaic)’라 반론한다. 네타냐후는 웃으면서 “그렇지만 예수는 히브리어를 이해는 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린다. 예수 당시의 히브리어는 유대교 성직자들에게만 전파된 상류층 언어였다. 조선시대 양반의 한문이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조선 평민은 한글의 전신인 언문을 사용했다. 히브리어를 읽고 쓸 수도 있었지만, 예수는 보통 사람들의 언어인 시리아어를 사용했다. 교황이 말한 아람어는 고대 시리아어를 의미하는 말로, 언어학으로 볼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기원으로 한 셈어(Semitic languages)에서 발전된 것이다. 기원전 25세기부터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권 내 대제국 아시리아의 언어가 아람어다. 예수 생전에도 아시리아의 흔적이 이스라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의미다. 흔히들 21세기 시리아를 아시리아의 후손이라 보기 쉽지만, 직계가 아닌 방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현재의 시리아는1946년 독립과 함께, 아시리아의 이름을 빌려 건국한다. 21세기 시리아는 아람어가 아닌 아랍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국토도 원래 아시리아의 터전인 티그리스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지리, 언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제국 아시리아와 현재 내전 중인 시리아는 사촌 정도 관계라 볼 수 있다.

수도원 안은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 수도승을 위한 3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인 동시에 수행 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시리아정교회는 수도승 개인의 기도와 수행에 주목한다. 바울 안티오크 교회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개인 차원의 1인 기도와 수행이 기본이다. 서방 가톨릭이 행하는 집단 차원의 수도생활은 하지 않는다. 식사도 혼자 하면서 하루 종일 아무도 안 만나고 침묵 속에서 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시리아정교회의 수행 방식이다. 동굴에서 혼자 행하는 식의 고독한 신앙생활이라 보면 된다.

수도원 안은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비한 문양들로 채워져 있다. 시리아정교회의 문양은 7세기 이후 등장한 이슬람 모스크 내 문양의 원형에 해당한다. 조각으로 형상화된 우상을 멀리하는 곳이 시리아정교회다. 따라서 이탈리아에서 접할 수 있는 성인의 조각이 수도원 안에 하나도 없다. 형상화된 우상보다 예수의 복음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해 수도원 곳곳에 걸어두고 있다. 기하학적 문양은 ‘영원, 평화, 질서’를 의미하는 신의 언어로 이후 비잔틴제국의 그리스정교회와 이슬람 모스크로 전승된다.

수도원의 중심인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 탄생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리아와 요셉, 반짝이는 별과 물병, 그리고 어린 양 하나가 전부인 성탄 성화(聖畫)다. 소박(Innocent)과 간단(Simple)은 성(聖)과 미(美)의 또 다른 얼굴일지 모르겠다. 전염병 때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성탄 심야 예배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397년 설립 이래 수도원이 겪어온 고통과 수난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닐 듯하다. 예수가 죽은 소녀에게 ‘쿠미(일어나라)’라 말할 때 주변 모두는 비웃었다. 예수는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쿠미’를 외치지 않았다. 단 한 번의 명령으로 죽은 12살 소녀를 세상의 빛으로 끌어냈다. 신의 뜻을 헤아리고 미래를 확신하는 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신년을 맞아 설립 1625년을 맞는 가브리엘수도원은 그같은 믿음의 현장이자 증거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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