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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1호]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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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통신]60년 전 음반이 1600만원!

런던=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두터운 유럽’ 저자 johankwon@gmail.com 2022-01-08 오후 2:50:49

▲ 런던의 한 시민이 레코드 가게에서 LP판을 고르고 있다. photo 게티이미지
세상은 돌고 도는 것 같다. CD와 스트리밍에 밀려 거의 사라지기 직전이던 LP가 이제 CD보다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영국에서도 2020년 480만장의 LP가 팔려 1987년 이후 처음으로 CD 판매고를 앞섰다. 금액으로는 2019년에 비해 30%가 오른 8650만파운드(약 1384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 1989년 이후 30여년 만의 최고 판매액이다.
   
   LP 음반 재유행에 힘입어 영국 중고 음반 시장도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스테레오 LP 음반이 처음 발매된 1950~1960년대는 영국 음반 황금기였고 세계 음악의 중심이 런던이었다. LP 호(好)시절은 물론 지금도 클래식 음악인으로 영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음악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정설이 되어 있다. 영국인들은 원래 음악을 잘 못하지만 대신 영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클래식 음악 시장이다. 지금도 상표로 존재하는 EMI, HMV, Decca 등은 영국 음반 황금기의 산물이다. 이때 발매된 음반들은 아직도 ‘이베이’ 등에서 활발하게 팔리고 있다. 당시의 LP 음반은 매년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덕분에 순수 소장을 목적으로 하는 수집가들과 함께 이제는 음반 감상과는 전혀 상관없이 순수 투자 목적으로 LP를 수집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실 스테레오 LP 음반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한 번도 가격이 하락해 본 적이 없는 안전 투자 상품이다.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더 이상 생산될 수가 없어 공급이 지극히 제한된 상품인 데다, 최근의 레트로 유행에 힘입은 덕분이다. 사실 고(古)음반 붐은 1980년대 일본 수집가, 1990년대 한국 수집가, 2010년대 중국 수집가들로 인해 이미 오래전부터 불이 붙어 있었다. 동양 3국의 수집가들에 의한 ‘황화(黃禍·the Yellow Peril)’가 시작되기 전에도 스테레오 LP 초창기(1960년대 초)에 발매된 음반들은 영국인 사이에서도 ‘성배(Holy Grails)’라고까지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초고가 음반은 투자용
   
   영국에서 초(超)고가 음반이라고 하면 대개 가격이 1000파운드부터 보통 4000~5000파운드, 심지어는 1만파운드(약 1600만원)까지 호가가 형성돼 거래된다. 어떤 LP판이 왜 초고가에 거래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수집가들의 글을 읽어 보면 비슷한 답은 나온다. 그들은 “수집 가치가 있어서(collectable)”라고 말한다. 결코 연주가, 혹은 음악이 좋아서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가격이 비싸지만 미래에도 가격이 분명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거의 정답에 가깝다.
   
   예를 들어 초고가 음반이라는 말이 나오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연주가가 바로 구소련 출신 바이올린 연주가 레오니드 코간(Leonid Kogan·1924~1982)이다. 그냥 클래식을 좋아해서 유명 연주자 중심으로 음반을 모은 사람들이나, 클래식 음악 팬이라고 나름 자부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코간이 소련 최고의 명지휘자 키릴 콘드라신의 지휘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1958년 컬럼비아 발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은 2019년 2200파운드에 판매되었다. 2020년에는 3642파운드에 재판매되었다. 코간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 시리즈(음반번호 SAX2386) 역시 이베이에서 한때 1만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7420파운드에 팔린 적도 있다. SAX 번호는 음반 중간 원형 종이 상표 우상단에 표시된 시리즈 중 해당 음반번호이다.
   
   물론 이런 초고가 음반들은 당연히 처음 생산된 초반(初盤)이다. 수집가들은 ‘ed1(first edition)’이라고 부른다. 공장의 음반 생산 프레스 기계가 첫 번째로 눌러서(press) 생산했다 해서 ‘1st press’ 제품이라고도 부른다. 음반회사들은 초반 이후 생산한 단위는 반드시 디자인이 다른 원형 레이블을 음반 중간에 부착해서 서로 구분한다. 그래서 음반 수집 선수들은 매트릭스 번호(matrix number)를 보지 않고도 초반인 줄 금방 알아챈다.
   
   매트릭스 번호는 음반의 소리를 내는 수많은 홈과 음반 중간의 둥근 상표 종이 레이블 사이 밋밋한 공간(run-off groove area)에 보일 듯 말 듯 손으로 새겨진 번호를 말한다. 이를 가지고 몇 번째 프레스 음반인지를 알 수 있다. 수집광들이 이렇게 초반에 연연하는 이유는 짐작하다시피 초반이어야 값이 나간다는 이유 때문이다. 굳이 따져 물으면 수집가들이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 기가 차다. “하나의 음반을 많이 생산하면 음반 원형 금형(金型)이 마모가 돼 음이 망가지는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대단한 귀를 가진 사람도 구별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이유를 대면서 겸연쩍어한다.
   
   그러나 이런 초반도 모든 조건이 맞아야 제값을 받는다. 음반 상태, 레이블, 재킷, 속지 등등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원래 구입할 때 있었던 원형 그대로의 셀로판지도 열지 않은 미개봉 상태라면 최고의 조건이다. 이런 초반은 업계 관례상 대개 600장을 생산한다. 이 초반보다 더 귀한 판은 공장에서 시험 제작해 본 테스트 판인데, 이건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초고가 음반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연주자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을 못 받은 ‘비운의 천재’여야 한다. 음반이 본격적으로 시판되기도 전에 음반회사가 먼저 돌린 음반을 비평가들이 듣고 악평을 한 나머지 초도(初度) 물량도 안 팔리고 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초고가로 판매되는 코간의 영국 컬럼비아 발매(음반번호 SAX2386)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음반은 당시 한 비평가로부터 별 하나만 받았고, 다른 비평가들로부터는 그냥 보류 판정을 받았다. 워낙 혹평을 받아 팔리지 않은 탓에 최고 기량의 연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음반이 별로 없게 됐다. 그런 희귀성 때문에 고가가 되었다.
   
   
   고가 음반의 기준
   
   그에 비해 바이올린 연주 대가 예후디 메뉴인(1916~1999)의 HMV ASD377 같은 곡목은 별 3개를 받아 너무 흔해져버렸다. 연주나 녹음은 코간의 것과 비길 수 없이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가격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싸다.
   
   소련 바이올린 연주자 다비드 오이스트라흐(1931~2021)도 같은 경우다. 그는 워낙 훌륭한 연주자라 판이 많이 팔린 탓에 고가 음반이 없다. 대개 50달러에서 100달러 사이에 팔린다. 그러나 그의 연주 음반 중에도 영국 컬럼비아 발매(음반번호 SAX2315)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은 800파운드부터 1000파운드 사이를 오간다. 역시 발매 당시 형편없는 비평을 받은 덕분이다. 당시 비평 잡지의 평은 “그의 연주는 평소 수준에 못 미쳤다”라는 비교적 온건한 것이었지만 소비자들은 그 말이 바로 ‘형편없다’는 걸 쉽게 알아챘다. 그래서 오이스트라흐의 SAX2315 실버 블루 레이블은 거의 팔리지 않다시피 해서 지금 수집가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으려 든다.
   
   폴란드 출신 천재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소(1924~1970)의 경우도 희귀성으로 고가의 음반이 되었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기벽으로 음반 발매도 적었고, 46세라는 최전성기에 세상을 떠났다. 그 덕분에 그의 음반은 지금 2000파운드 이상에 팔린다. 최고가는 8200파운드까지도 한다.
   
   영국 음반업계의 황금시대라는 1960년대 초반에는 바로크음악이 별로 인기가 없었다. 특히 지금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안톤 비발디 음악도 작곡가 사후 바로 사장됐다가 재발견된 탓에 대중들이 그때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만들어진 음반 중 바로크음악은 시중에 존재하는 것들이 별로 없어 정말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이다. 대표적인 주인공이 이탈리아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지오콘다 데 비토(1907~1994)이다. 그녀의 음반도 거의 2000파운드가 넘고 최고는 5000파운드를 넘기는 것이 수두룩하다. 그녀는 바로크 이후의 곡은 거의 녹음하지 않았다.
   
   비토는 당시 영국 음반업계의 제일 큰손인 EMI의 중역과 결혼했음에도 자신이 만족하지 않는 녹음은 아예 발매를 하지 않았다. 87살까지 살았는데 아주 소량의 EMI 스튜디오 공식 녹음 음반(12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실황공연 녹음 음반은 몇 개가 전부이다. 거기다가 기량이 최정상에 달한 54세에 당시 교황 피우스 12세 앞에서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한 뒤 은퇴를 선언했다. 다음날 교황이 특별히 초청해서 “하늘이 내린 천재적인 기량을 이렇게 일찍 포기하는 일은 신의 뜻에 어긋난다”는 협박 반 설득 반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했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수개월 후 완전하게 은퇴했다. 덕분에 그녀의 음반은 아주 귀해져버렸다.
   
   
▲ 영국에서 거래되는 초고가 LP판들. 윗줄 왼쪽부터 각각 7000, 5000, 4000, 3000파운드, 아래 왼쪽부터 1000, 1500, 2000파운드에 거래되고 있다. photo 권석하

   한국, 일본, 중국 수집가들 열성
   
   바이올린 연주자 요한나 마르치(1924~1979)의 음반도 지금 엄청난 값에 거래되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에 헝가리 국적인 마르치의 음반은 다른 어떤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보다 고가이다. 고음반 거래 기록 사이트 팝시크(Popsike)에는 100파운드 이하가 없다. 거의 그 이상이거나 심지어 5000파운드 이상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헝가리 출신 이다 헨델(1928~2020)도 그런 여류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녀는 92살까지 살면서 말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했다. 2004년 5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초기 음반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지 못한 탓에 판매가 이뤄지지 않아 귀하다. 그녀 자신이 음반 발매 후 마음에 안 들어 판매를 중단하게 한 음반도 있어 희귀성만으로 가격이 대단히 높다.
   
   모든 초반이 초고가 음반이 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소위 말하는 명반 소개서에 나오는 명반들은 초반이라고 해도 초고가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명반은 대부분 유명 연주자의 판이라 회사에서 초반 물량을 대량으로 찍는 경우가 많다. 또 전 물량이 완판되면 다시 찍어 시중에 나도는 판 숫자가 많아 희소성이 없는 탓이다. 이런 유명 연주자의 판은 초반도 대개 당시 관례인 600장이 아닌 2000~3000장을 발매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고가에 팔리는 초반들이 분명 있고 이런 초반들이 왜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싼지에 대해서는 수집가들도 의문을 표시한다. 물론 아무도 명확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은 없다. 워낙 귀한 데다 값이 계속 올라가니 투자 목적으로 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 가장 쉬운 대답일 것이다. 워낙 구하기 힘드니 진짜 수집가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반드시 이 음반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이라고도 한다. 사실 명반 소개 책자에는 앞에서 언급한 초고가 음반들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고가 음반들에 대한 한국, 일본, 중국 수집가들의 집착에 가까운 열성은 유명하다. 앞에서 언급한 촉가 음반 거래에서는 한국 수집가들이 정말 큰손이다. 그래서 구매하는 경우도 많고 판매도 많이 한다. 예를 들면 팝시크에 나오는 거래 기록 중 초고가 음반 판매자의 국적을 보면 거의 3분의1이 한국인이라고 나온다. 구매자의 국적은 나오지 않아 알 수는 없다. 영국 음반수집 관련 웹사이트 여기저기에는 2000년 이후 한국 수집가들이 큰손으로 등장했다는 언급이 많이 나온다.
   
   
   고음반일수록 가격 올라간다
   
   영국의 유명 중고 음반 딜러는 초고가 음반을 사들인 동양의 수집가들을 은근히 비판한다. “그동안 몇 명을 만나봤지만 그중 대다수가 자신은 (음악을) 집중해서 듣기보다는 책 읽을 때나 다른 일을 할 때 배경 음악으로 틀어 놓는다”고 했다고 비판한다. 전곡을 듣지도 않고 대개 일부만 듣는다고도 한다. 동양인에게 고가의 음반을 팔면 반품이 잘 돌아오지 않는 데 비해 완벽한 품질을 원하는 유럽 수집가들은 전곡을 들으면서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반품한다고 불평을 한다.
   
   LP의 부활을 증명하는 가장 큰 사건이 2014년 일어났었다. 옛 음반을 리마스터링해서 재발매하는 영국의 전문회사가 4000~5000파운드에 거래되는 코간 음반을 옛날 기계로 새로 생산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정판으로 300장만을 찍어 350파운드에 발매했다는데 즉시 완판됐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베이에서 1125파운드와 2700파운드에 팔리기도 했다는데 음반 리마스터링 회사 입장에서는 노다지를 발굴한 셈이다. 부활한 LP의 인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나 분명한 것은 고음반일수록 가격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LP 큰손 상대하는 임재국씨
   “한국에 보낸 LP 100만여장… 그물 쳐넣고 LP판 찾는 어부”

   
photo 권석하
누가 자신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어부’라고 대답하고 싶다는 임재국(63) 대표는 상당히 특이한 일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 오래된 LP레코드를 한 장 한 장 수집해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일이다. 영국 교포인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실어보낸 LP판만 100만장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숫자와 금액으로 따지면 한국으로 LP를 가장 많이 실어보낸 사람이 아마 자신일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LP업계 사람들이 자신에게 “아직도 영국에 LP판이 남아 있느냐”고 묻는다면서 웃는다.
   
   임 대표가 하는 일은 영국 전국에 산재한 자선상점, 중고가게, 골동품 가게, 카부츠 세일, 고인의 유물 정리인 등을 찾아다니면서 쓸 만한 LP를 한 장 한 장 사 모으는 것이다. 그곳에 얼마나 쓸 만한 물건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음반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10시간이 걸리더라도 찾아간다. 물론 허탕 칠 때도 많다. 그래서 자신을 “바다에 그물을 던져 놓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어부 같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내용물을 일일이 살펴보지 않고 박스째 LP판을 사지만 결국 사 모은 LP를 전부 검사하고 가격을 매겨야 한다. 창고에 앉아 LP를 정성 들여 닦고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일은 고달프기는커녕 즐거운 일 중 하나라고 한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박스째 사온 음반 중에서 보물을 줍듯 횡재를 하는 경우부터 가격은 얼마 하지 않지만 전부터 찾으려 애쓰던 음반을 발견하는 경우 등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많기 때문이다.
   
   임씨에 따르면 이제 LP 시장에서도 인터넷 때문에 판매자나 구매자가 시장 가격을 정확히 알고 있어 횡재를 하는 경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처음 이 일을 시작하던 17년 전만 해도 음반 평균 가격이 50펜스(800원)에서 1파운드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각종 고음반 가격 사이트를 통해 알아본 가격에 제값을 부른다고 한다. LP 시장의 큰손들이 모여 있는 한국에서 한때 업자들이 직접 영국으로 건너와 중고가게들을 훑으면서 음반을 사갔으나 임 대표와 경쟁이 되지 않아 이제는 다 접었다고 한다. 많은 물량을 꾸준하게 구매한 덕분에 이제는 영국 딜러들이 좋은 물건이 들어오면 먼저 연락을 해줘 지금은 거의 독점으로 한국에 음반을 수출하고 있다고 한다.
   
   임 대표는 한국에 창고를 내고 경매 사이트(www.britishsound.co.kr)를 열어 소비자에게 음반을 직접 팔고 있기도 하다. 한국 창고에만 약 10만장, 영국 창고에는 5만장이 쌓여 있다고 한다. 임 대표는 “10파운드에 산 판이 1000파운드에 팔리는 시절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지만 큰 욕심을 내지 않기에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음반 장사를 하면서 얻은 인생의 교훈이 있다”며 “세상일은 안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언젠가 시기가 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욕심 없이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뭔가를 이루게 되더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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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하며
응답하라! 2030 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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