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뉴시스
ⓒphoto 뉴시스

미국에서 인종차별, 특히 흑백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민권법안이 통과된 지 반세기가 훨씬 넘은 요즘에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위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역설적인 사실은 요즘 미국의 새로운(?) 병폐로 등장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자신들이 백인으로부터 당한 멸시와 수모를 엉뚱한 데다 분풀이하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하다.

흑백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대표작들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컸던 스탠리 크레이머가 제작하고 감독한 ‘흑과 백’(The Defiant Ones·1958),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1967) 등이다. 두 영화에는 모두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으로 나온다.

1961년 5월 칸영화제에 참석한 시드니 포이티어. ⓒphoto 뉴시스
1961년 5월 칸영화제에 참석한 시드니 포이티어. ⓒphoto 뉴시스

흑인 배우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흑인배우로서는 할리우드 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포이티어가 지난 1월 6일 바하마에서 94세로 타계했다. 포이티어는 1963년작 흑백영화 ‘들의 백합(Lilies of the Field)’에서 작은 마을의 수녀들을 위해 성당을 지어주는 떠돌이 노동자로 나와 노래까지 부르면서 따뜻한 연기를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이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온 포이티어는 할리우드의 인종차별 벽을 깬 개척자이자 흑인 배우들의 위상을 높여준 선구자로 추앙받아왔다.

그의 부모는 바하마 시민이었다. 그는 부모가 미국 마이애미를 방문했을 때 태어나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그는 바하마에서 자란 뒤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와 마이애미를 거쳐 뉴욕에서 연기 공부를 했다. 포이티어의 연기력이 최초로 인정받은 영화는 그가 고등학생으로 나온 1955년작 ‘블랙보드 정글’(한국 제목 ‘폭력 교실’)이다. 낯선 흑인 배우의 연기력이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이 영화는 민권운동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이티어는 평생 미 민권운동의 우상으로 흑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박사와 함께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에 참가하면서 비폭력 민권운동을 주창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수년간 킹 박사를 위해 모금운동을 한 것은 내가 그의 비폭력 철학을 강력히 신뢰하기 때문”이라면서 “나는 폭력 특히 폭력을 위한 폭력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늘 행진과 보이콧과 사회적 활동을 통한 변화와 민권운동을 강조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포이티어는 인종과 존경에 대한 미국의 대화를 발전시킨 사람”이라고 추모했다.

포이티어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활동했는데 대표작이 리처드 프라이어와 진 와일더가 나온 코미디 ‘스터크레이지’다. 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받았으며 미국 시민에게 대통령이 주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본 주재 바하마대사를 지내는 등 영화계를 벗어나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포이티어는 유명인이면서도 매우 겸손하고 소박해 대중의 사랑을 더욱 받았다. 필자는 오래전 비벌리힐스의 배우들이 많이 찾는 스파고 식당에서 배우 출신의 부인인 조안나 심커스와 함께 식사를 하는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에게 다가가 사인을 부탁했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사인을 해줘 듣던 대로 겸손한 사람이구나 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수여받은 시드니 포이티어. ⓒphoto 뉴시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의메달’을 수여받은 시드니 포이티어. ⓒphoto 뉴시스

‘들의 백합’ ‘밤의 열기 속에서’

평생 민권운동에 헌신해온 포이티어는 작품에서도 흑백갈등과 흑인들의 인권신장을 웅변하는 걸작들에 많이 출연했다.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들의 백합’ 외에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가 ‘밤의 열기 속에서’(In the Heat of the Night·1967)이다. 포이티어는 여기서 인종차별이 심한 미 남부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로 나온다.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자기의 뺨을 때린 마을 백인 유지의 귀싸대기를 때려 진짜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했었다. 노만 주이슨이 감독한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탔으며, 영화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마을 경찰서장으로 나온 로드 스타이거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다.

‘흑과 백’은 포이티어와 토니 커티스가 주연한 흑백 드라마로 쇠사슬에 함께 묶인 흑인과 백인 두 죄수의 탈출기이다. 미 남부의 두 죄수인 흑인 노아와 백인 존을 비롯해 죄수들을 수송하던 트럭이 전복하면서 쇠사슬과 쇠고랑으로 함께 팔목이 묶인 노아와 존은 도주한다. 둘은 서로를 죽도록 증오하면서도 자유를 향한 도주를 위해 이를 억제한다. 둘은 서로 육박전을 벌이고 욕설을 주고받다가도 도주에 성공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휴전에 들어가곤 한다.

노아와 존은 도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한 농가에서 고독과 섹스에 굶주린 홀어머니로 인해 배신의 유혹을 받기도 하지만 서로를 묶은 쇠사슬을 끊은 후에도 함께 달아난다. 둘을 묶었던 쇠사슬이 노아와 존을 친구이자 동료로 만들어준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매우 감동적이다. 달리는 화물열차에 먼저 올라탄 노아가 안간힘을 쓰면서 뒤따라 달려오는 존을 향해 팔을 길게 내뻗지만 존이 이를 잡지 못하자 노아는 존을 버리지 못해 기차 밖으로 뛰어내리며 굴러떨어진다. 그리고 노아는 존을 품에 안고 흑인들의 노래를 부른다. 동료애에 의한 흑백 통합의 장면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형제애와 우정, 증오와 편견 그리고 인종 간 대결의식과 가혹한 미 형벌제도를 고찰한 훌륭한 작품으로 모질고 혹독하면서도 얄궂은 유머와 박력 있는 액션을 갖춘 영화로 평가받았다. 개봉 당시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 남부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대부분 다른 곳에서는 호평과 함께 흥행도 잘됐다.

포이티어와 커티스의 연기는 강렬했고 둘의 화학작용도 아주 좋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쁜 남자로만 취급받던 커티스가 사납고 거친 연기를 맹렬히 해낸다. 포이티어 역시 노아 역으로 베를린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둘은 이 영화로 빅스타가 되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과 촬영상(흑백)을 받았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시드니 포이티어를 추모하는 화환들이 놓여 있다. ⓒphoto 뉴시스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시드니 포이티어를 추모하는 화환들이 놓여 있다. ⓒphoto 뉴시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던진 메시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영화 제작 당시만 해도 미국 17개주에서 불법화했던 흑백 인종 간 결혼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겼다. 진보적인 미 상류층 부부로 평소 인종 간 평등의 이념을 지녔던 언론사 부장 매트(스펜서 트레이시 분)와 화랑을 경영하는 크리스티나(캐서린 헵번 분)의 딸 조안나(캐서린 휴턴 분·캐서린 헵번의 질녀)가 이혼남인 10년 연상의 흑인 의사 존(시드니 포이티어 분)과 결혼을 선언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딸의 결혼에 특히 당황한 사람은 매트이다. 흑백 간 평등의식을 딸에게 심어준 그가 막상 딸이 흑인과 결혼하게 되자 심한 갈등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뒤늦게 사랑의 중요함을 깨닫고 딸과 존을 받아들인다.

이런 인종 간의 결혼 문제는 미국의 한인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한국인 부모들도 자녀가 타 인종, 특히 피부색이 검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인종차별이란 이렇게 우리 모두의 안에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서 감동적인 대사는 존이 “너는 지금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충고하는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다. 존은 “아버지는 스스로를 흑인 남자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자신을 남자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과 함께 헵번이 여우주연상을 탔다. 헵번의 실제 연인이었던 트레이시는 병약한 몸으로 영화에 출연했다가 촬영이 끝난 지 2주 후 사망했다.

시드니 포이티어가 평생 싸워온 흑백 문제, 나아가서 인종차별 문제에는 해답이 있는가. 이에 대해 한국인 부인을 둔 배우 겸 감독 우디 앨런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도 미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와 이에 대한 격렬한 반대운동은 미국이 노예국가로 세워졌고 또 여러 세대에 걸쳐 인종편견으로 채워진 나라라는 것에 대한 응분의 대가이다. 수백 년간을 인종문제에 대해 무감각해온 나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인종차별에 대한 폭력적 대응은 인종 간에 깊이 뿌리박힌 반감이 고르게 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할 때까지 우리가 물어야 할 대가이다. 우리가 여전히 타 인종을 증오한다면 법으로 인종 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박흥진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 회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