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에 가끔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를 찾는다. 노트북 전원이 있는 곳은 대체로 직사각형 탁자로 네다섯 명이 앉게 되어 있다. 한두 번쯤은 어쩔 수 없이 양옆에 앉은 사람이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펴놓은 책자를 흘끗 보게 된다. 얼마 전 카페에 갔을 때 마침 빈자리가 있어 노트북 전원을 연결하고 자리를 잡았다.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는 여성이 펴놓은 책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사 수험교재였다. 마침 펴놓은 곳에 ‘고려왕조 계보’라는 제목이 보였다. 교재 아래쪽에 ‘박문각’이라는 출판사 이름도 보였다. 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었다.

지난 6월 17일 서울을 제외한 7개 시도(市道)에서 9급 지방직 공무원 공채시험이 치러졌다. 1만명을 뽑는데 22만명이 몰렸다고 한다. 아마 내가 카페에서 본 그 여성도 시험을 치렀으리라.

9급 공무원 시험 과목에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고려왕조 계보도 알아두면, 뭐 그리 나쁠 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사에만 함몰될 경우 생길 수 있는 폐단이다. 그 사람이 공시생이 되었건 고3 수험생이 되었건 매년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국사만 파고든다고 생각해 보라.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고를 하지 못한다. 불멸의 영웅과 천재들은 이런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이다.

나는 학생 시절 지리와 세계사를 배운 세대다. 세계사 시간에 100년전쟁, 30년전쟁, 청교도혁명, 한자동맹, 보스턴차사건 등을 처음 접했다.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 것을 끙끙대며 외워야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때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용어라도 들어본 게 세상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곤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재미있어 한 것은 인문지리였다. 칠갑산 자락의 벽촌(僻村) 출신이 꿈을 키우고 객관적인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게 된 것은 팔할이 인문지리의 힘이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낯선 외국 지명이 나오면 아틀라스 세계지도에 형광펜으로 꾹꾹 눌러 표시한다.

미래 세대들이 한국사의 좁은 공간에만 갇혀 있게 해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공부하는 중학생의 10년 뒤 경쟁 상대는 서울 학생이 아니다. 그들의 경쟁 상대는 지금 중국 베이징과 미국 뉴욕에서 눈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학생들이다. 한국 현대사는 20세기 세계사 속에 놓고 보아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식이 가능하다. 세계사의 큰 흐름을 알고 그런 다음에 한국을 알아야 한다. 지난해 시카고 컵스가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메이저리그에서 우승했다. 야구장에 염소를 끌고 왔다가 퇴짜를 맞은 1908년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자. 1908년이면, 조선은 고종의 아들인 순종 시절이다.

한국의 객관적 좌표는 세계사의 시공간과 비교할 때 눈에 들어온다. 지리와 세계사는 개방적 사고방식과 진취적 도전정신을 배양한다. 북한과 미얀마는 1960년대까지 한국보다 경제력에서 앞섰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과 미얀마의 오늘은 개방 대신 쇄국정책을 고수한 결과다. 진보를 자칭하는 주사파들은 시간적으론 1980년대 초, 공간적으론 한반도에 시야가 박제되어 있다. 한국 현대사의 영웅인 이병철·정주영·박정희는 경험과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미래의 시공간을 상상하고 설계한 사람이다. 한국인은 한반도를 벗어나 세계와 경쟁할 때 위대해진다.

키워드

#편집장 편지
조성관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