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후보자에서 자진사퇴한 변호사의 이름은 곧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주식투자만으로 1년에 12억원을 벌었다는 실화(實話)는 개미들의 무덤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전설로 빛날 것이다. ‘워런 버핏이 울고 갈 사람이다’라는 댓글이 모든 걸 함축한다. 한때 개미의 한 사람이었던 나 역시 그녀를 기억할지 모른다. 신기(神技)에 가까운 그녀의 투자 실력으로 인해 나의 무능력을 깨달았으니. 그저 부러울 뿐이다. 나는 왜 저렇게 못 했을까.

세진(世塵)에 사는 우리는 모두 속인(俗人)이다. 가정을 꾸렸으면 가정을 지켜야 한다. 자식을 낳았으면 미국 유학은 언감생심이라도 적어도 고등교육까지는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가정이 지속가능하려면 경제적 안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려면 부모가 돈을 벌어 재산을 축적해야 한다. 몇백만원의 여윳돈이 생기면 주식투자도 해야 하고, 더 큰돈이 있으면 부동산에도 투자해 재산을 불려야 한다. 왜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노원구 로또 명당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가. 부자가 되고 싶어서다. 횡재(橫財)라도 맞아 부자가 되고 싶은 거다.

법정(法頂) 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추구해서는 큰일 난다. 무소유(無所有)의 삶은 성직자나 구도자에게나 어울리는 덕목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 법정을 흉내 냈다가는 가정은 파탄 나고 자식들은 거리로 나앉는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무소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은 없을 것이다. 히말라야 부탄왕국처럼 살기를 원한다면 모를까.

자본주의는 그렇게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으면서도 왜 망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될까.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왜 보란 듯이 빗나갔을까.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인간의 본성에 가장 근접하게 부합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반대로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부정하고 기계적인 평등을 이루려는 시스템이다.

혈기왕성한 20대들은 대체로 평등한 세상을 외치는 좌파의 주장에 솔깃한다. 인간은 복잡한 본능과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그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얼굴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불평등을 극복하려 투쟁하는 게 인간이다. 결핍이 인간을 추동한다. 한국의 좌파는 기성의 모든 것을 특권·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해 20대들에게 분노할 것을 선동해왔다. 삼성과 현대차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재벌은 양극화를 심화하는 주범이며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헬조선’이다.

이번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의 재산은 93억원, 민정수석 조국의 재산은 49억원으로 각각 공개됐다. 장하성 실장의 경우를 보자. 그는 교수 시절 저서를 통해 재벌중심의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질타했다. 대학생들은 이런 장하성에 열광했다. 그런데,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가 재벌기업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다가 재산공개 직전에 팔아치웠다는 사실이. 장하성과 조국은 0.5% 안에 드는 대한민국 최고의 특권층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두 사람은 대한민국과 기득권층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좌파들은 왜 위선적인가? 애당초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주장을 펼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20대들이 혹(惑)한다. 좌파적 삶은 절제와 희생과 인내가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두 사람은 진보라는 용어를 말할 자격도 없다. 산업자본주의를 정 부정하고 싶다면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 스코트 니어링(1883~1983)처럼 살아야 한다. 그게 정직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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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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