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는 확실히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느낌이다. 서울은 그동안 도시의 역사와 규모에 비춰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롯데월드타워는 높이 555m로 세계 5번째다.

롯데월드타워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광장에 세워진 낯선 동상을 살펴보게 된다.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의 동상이다. 괴테 동상이 왜 이곳에?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동상은 베를린의 대표 공원인 티에르 가르텐에 있는 괴테상(像)을 그대로 본떠 제작한 것이다. 티에르 가르텐의 괴테상은 1880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롯데의 의뢰를 받은 독일 조각가들이 현지에서 만들어 몇 부분으로 나눈 뒤 한국에 들여와 조립했다. 롯데는 제작·운반·설치에 모두 16억원을 썼다. 티에르 가르텐의 괴테상이 독일 밖에 설치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나는 추석 연휴에 연차휴가를 붙여 독일 여러 도시를 순례하는 ‘독일 기행’을 다녀왔다. 당연히 괴테가 중심이 되었다.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를 시작으로 ‘파우스트’의 영감을 받은 라이프치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티브를 얻은 베츨라르, 황제 나폴레옹과 역사적 만남을 가진 에어푸르트, 그리고 괴테가 숨을 거둔 바이마르까지. 독일을 기행하면서 괴테와 관련, 새삼 두 가지를 절감했다. 하나는 21세기 독일인의 정신세계에 18~19세기 인물인 괴테가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괴테는 독일문학의 울타리에 가둘 수 없는 위대한 문호(文豪)라는 사실이다.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열렬한 독자였다. 나폴레옹이 전쟁을 치르는 와중에도 진중(陣中) 도서관을 운영했고, 그곳에 괴테의 저작들을 비치해두고 읽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황제는 자신을 감동시킨 작가를 만나고 싶어 바이마르에 사는 괴테를 초청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1774년 출간되자마자 전 유럽을 휩쓸었고, 지금도 여전히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심리상태를 괴테처럼 묘사한 작가가 또 있을까. 괴테가 사랑한 여성 샬로테 부프(Charlotte Buff)가 살던 집은 현재 박물관 ‘로테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로테하우스(Lottehaus)에는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판본들이 전시 중이다. 얼마나 많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비극에 가슴 아파하며 불면(不眠)의 밤을 지새웠을 것인가. 열아홉 살 식민지 청년 신격호도 일본어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다. 이 소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기에 바빴던 신격호를 얼마나 사로잡았으면 훗날 회사를 세우면 그 이름을 ‘로테’로 짓겠다는 꿈을 품기에 이르렀을까. 신격호는 괴테가 전하는 사랑과 자유의 가치에 깊이 공감했던 것이다.

문학은 꿈과 상상력의 원천이다. 과학은 문학이 뿌려놓은 꿈과 상상력의 씨앗이 꽃피우고 열매 맺게 하는 수단이다. 선진국은 문학과 과학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사회다.

괴테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바이마르. 괴테가 살던 2층집 전체가 국립박물관으로 지정되어 운영관리 중이다. 괴테하우스에서 가장 뭉클했던 공간은 집필실 옆의 작은 방. 그 방에는 침대 옆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괴테가 저 의자에 앉은 채로 먼나라로 떠났다”는 설명을 듣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괴테 선생님, 한국에 당신 작품의 영향을 받은 대기업이 있고, 얼마 전 당신 동상까지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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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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