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호칭은 부르는 사람의 연령대에 따라 변한다. 처음에 그들은 ‘군인아저씨’로 불린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여학생이 주로 이렇게 부른다. 요즘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등학생들은 초겨울이 되면 그들에게 의무적으로 편지를 써야만 했다. ‘전방에 계신 국군 아저씨에게’로 시작하는, 누가 받는지도 모르는 위문편지다.

중학생이 되면 그들은 이제 ‘군인오빠’로 친근하게 불린다. ‘군인오빠’라는 호칭은 이들이 20대가 되어서도 당분간 유지된다. 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면 군인과 군대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다. 거리에서 지나치는 휴가병에 대해서는 거의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들이 결혼을 해 아들을 낳게 되면 조금씩 달라져간다. 사내아이들은 대체로 태권도장이나 검도장에 다니면서부터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태권도장이나 검도장에서 따르던 ‘사범 형아’들이 어느날 군대를 간다면서 사라진다. 이때부터 군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슴속에서 자란다.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은 뜬금없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군대 가기 싫어요.” 이스라엘 여성과 달리 군대 경험이 없는 엄마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퇴근한 남편에게 슬쩍 귀띔한다.

“아드님께서 학교에 갔다오더니 군대 가기 싫다네요.”

이것이 한국 여성이 병역의무에 대해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 출발점이다.(딸만 둔 엄마들은 영원히 이런 자각에 이르지 못한다.) 아들은 중·고교를 다니면서 군입대 문제를 놓고 생각이 수없이 왔다갔다 한다.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학생으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생각이 바뀐다. 빠질 길이 없으면 빨리 끝내자! 대체로 1학년을 마치고 군입대를 결심한다.

엄마들은 훈련병 시절 집으로 보내온 사복을 보고는 눈물을 펑펑 쏟는다. 금쪽같은 아들을 군에 보내고 비로소 ‘군인아들’을 둔 엄마가 되면서 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다. 군과 관련된 단신기사도 빼놓지 않는다. 병과(兵科)와 사단 위치까지 줄줄 꿴다. 여름철 거리에서 만난 휴가병을 보면 아들처럼 반갑다. 태극마크 패치가 붙은 어깨를 토닥이고 캔주스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 자꾸만 쳐다본다. 그들은 이렇게 ‘군인아들’이 되어간다.

그들은, 여성의 생애주기에 따라 ‘군인아저씨’에서 ‘군인오빠’를 거쳐 ‘군인아들’로 다시 태어난다. 마치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현실에서 구현되는 것 같다. 엄마들은 ‘군인아들’을 통해 비로소 중대한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그동안 저렇게 어린 아들들에게 나라를 맡기고 마음놓고 지냈었구나.’ 그랬던 자신에 대해 괜시리 미안해진다.

지난 가을 강원도 철원에서 복무 중이던 상병이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총탄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청천벽력(靑天霹靂)! 군대에 아들을 보낸 부모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구칠 일이다. 그런데 아들을 비명에 잃은 아버지는 언론에 “빗나간 탄환을 쏜 병사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마땅히 억울해 하고 분노해야 할 사람인데. 세상에, 저런 사람도 있을 수 있구나.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모든 엄마들과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구본무 회장은 그 상병 부모에게 감사를 표하며 위로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병사 아버지의 깊은 배려심과 의로운 마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엄마들은 가슴이 찡했다.

강추위가 엄습하면 군에 아들을 보낸 엄마들 마음은 타들어간다. 그런 엄마들에게 겨울은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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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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