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여권을 펼쳐 보니 일 년에 한 번은 꼭 일본에 다녀온 흔적이 있습니다. 맛있는 ‘라멘’을 먹겠노라며 2박3일, 바다 구경 좀 하고 오겠다고 3박4일, 짧게 부담 없이 떠나기 좋은 여행지가 일본이다 보니 벌써 10번은 넘게 다녀온 것 같습니다. 서재에는 일본 만화책이 가득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가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반면에 저는 반일(反日)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제 고조할아버지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하다 일본군의 총탄에 스러지셨는데 할아버지 사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일제강점기가 얼마나 악독한 시기였는지, 그로 인해 할아버지는 물론 후손 되는 우리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배우고 자랐습니다.

일본 문화를 즐기면서도 일본과 얽힌 역사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저는 모순된 사람일까요. 저만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짱구를 보고 포켓몬스터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자란 요즘 20대에게 일본이란 삶의 배경과 문화를 제공해주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20대가 마냥 친일(親日)파인 것만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역사를 잘 알고 역사의식이 투철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친일·반일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한·일 관계를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처럼 가깝고 또 먼 나라 사이에 이런 단선적인 시각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책임질 젊은 세대가 얼마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지 분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