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끼리 모인 저녁 자리에서 의사 친구가 자신의 신세가 노예 같다는 푸념을 했습니다. 서울에 번듯한 병원을 갖고 있는 이 친구가 뭐가 부족해서 갑자기 헛소리를 하는지 궁금해지더군요. 이 친구 한탄은 이랬습니다. “병원 열면서 장비 리스하고 인테리어 하느라 빚만 잔뜩 졌다. 요즘처럼 환자가 없으면 임대료에다 이자 내고 직원들 월급 주면 진짜 월급쟁이만도 못하다.”

이 친구는 자기를 부리는 ‘주인’이 꼬박꼬박 이자 걷어가는 은행과 월세 뜯어가는 건물주라고 했습니다. 병원문 닫으면 저당 잡힌 집도 날아갈 판에 매달 은행과 건물주들 돈 벌어주면서 사는 것 같다는 신세타령이었습니다.

요즘 자영업자들이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입니다. 제 친구인 동네 의사도 어렵다고 하는데 동네 편의점 사장과 치킨집 사장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700만 자영업자들이 “폐업 외에는 답이 없다”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고 외치고 있고, “전국 7만 편의점 동시 휴업 불사” 같은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주 커버스토리로 다룬 압구정동 부활 얘기는 이런 상황에서 신선한 소식이었습니다. 건물주들의 지나친 임대료 인상으로 10년 동안 텅 비어 있다시피한 압구정로데오 거리가 다시 살아난 비결이 결국 건물주들의 욕심 비우기 덕분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 1번지’를 되살려낸 반값 임대료, 착한 임대료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은 시장의 힘이라고 봅니다. 정부의 임대료 억제 정책이나 규제가 아니라 거리를 살려야겠다는 자발적인 의지와 참여가 만들어낸 결과인 셈이죠. 압구정동의 상생(相生) 움직임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피폐화된 다른 동네까지 번져갈지 두고 볼 일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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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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