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같은 명절을 교과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흩어졌던 가족과 친척들이 오랜만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는 소중한 시간.’

하지만 현실은 좀 다른 듯합니다. 명절만 되면 평안했던 일상이 깨지고, 오히려 갈등이 증폭되는 집안들도 많습니다. 실제 제 경험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릴 적 명절을 떠올려보면 누군가 울고 서로 싸우는 모습들이 중첩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탈감’과 ‘차별’이 이유일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핏줄들이 모이면 평소에는 잊고 살던 가시 같은 것들이 서로를 찌르나 봅니다.

좀 더 끔찍한 기억도 있습니다. 신혼 초 서울 변두리 아파트에 살 때의 일입니다. 명절 마지막날 아파트 옆동에서 엄청난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중년의 아저씨가 명절에 집을 찾아온 중년의 동생과 아파트 앞 공터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다 경찰 백차에 끌려갔지만 비극은 나중에 찾아왔습니다. 명절 며칠 후 그 형제의 노모가 아파트에서 투신했습니다. 이 비극의 자세한 사연은 듣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제 뇌리 한쪽에는 ‘가족은 슬프다’라는 명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구절에 쓴 대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가 세상사의 진리인 듯도 합니다.

왜 명절에 모이면 싸울까요. 과학적인 전문가의 분석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인격이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인격들이 있다고 하네요. 전문가들의 용어로는 ‘자기애적 인격’이나 ‘경계선 인격’ ‘의존적 인격’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인격의 소유자들은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대뇌피질과 변연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 중 ‘자기애적 인격’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경향의 사람은 자신에 대한 사소한 비난이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해 갈등을 일으킵니다. 혼기를 놓친 백수가 이런 인격일 경우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경계선 인격’은 특정인에 대해 좋고 싫음의 극단적인 감정을 갖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을 거의 신처럼 여기다가도 아주 사소한 이유로 기분이 급변해 극도의 증오심과 적개심을 드러내곤 합니다. 이런 인격의 사람들은 편가르기를 하고 갈등을 조장하기 일쑤라고 합니다. 시어머니에게 자신은 잘 보이려 하면서 동서를 욕하거나, 시부모가 가족 중 누군가를 욕하면 덩달아 맞장구를 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의존적 인격’은 삶의 중요 부분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지우는 사람입니다. 자신감이 결여돼 혼자 있으면 심하게 괴로움을 느낍니다. 특히 이런 경향의 남성은 부모에게 의존해 있다가 결혼 뒤에는 의존 대상이 아내로 옮겨갑니다. 하지만 명절 때만 되면 다시 부모에게 의존하려다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곤 합니다.

명절을 앞두고 명절의 그늘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가족의 역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족들 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아프게 만들기 쉽지만 그건 아마도 남과 다른 애정을 갈구하는 대상이어서 그럴 겁니다. 특히 요즘처럼 삶이 팍팍해지면 ‘그래도 믿고 의지할 것은 가족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가족은 기쁘다’는 명제도 늘 참입니다. 독자님들, 즐거운 추석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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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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