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
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7차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촛불집회.

집권세력이 모처럼 만에 웃었다. 지난 9월 28일 대검찰청이 위치한 서울 서초동에 집결한 조국수호 촛불은 지난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래 수세에 몰려 있던 집권세력에 반전의 계기로 다가갔다. 집회에 참석한 집권당 의원들은 “백만 촛불이 일으킨 민란이 정치검찰을 제압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집회 이틀 후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검찰개혁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집권세력은 서초동 촛불을 보며 촛불혁명 시즌2를 꿈꾸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명분이다. 서초동 촛불의 주장은 ‘조국수호 검찰개혁’이라는 8자 구호로 압축된다.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피의자 조국을 지키는 것과 검찰을 개혁하는 것이 어떻게 한 묶음이 될 수 있는가. 조국의 혐의는 문 대통령의 말대로 검찰수사 등 사법절차를 통해 가려지면 된다. 거기에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치와 사법을 분리한 민주공화국의 핵심 원리다. “법무부는 법무부가 할 일을, 검찰은 검찰이 할 일을 하면 된다”는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조국 수사와 재판은 검찰과 법원이, 검찰개혁 방안 확정은 국회가 하면 된다.

이처럼 ‘조국수호 검찰개혁’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두 사안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견강부회(牽强附會)다. 검찰개혁이라 쓰고 조국수호라고 읽는 것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힘들다. 이 억지 구호를 외치면 외칠수록 검찰개혁의 진정성은 빛을 바랜다. 실제 검찰은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하루 만에 서울중앙지검 등 3곳 빼고 특수부 폐지, 파견검사 전원 복귀 및 형사·공판부 배치, 검사장 전용차 폐지 등 개혁안을 내놓았다. 개혁은 개혁대로, 수사는 수사대로 하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더 나아가 조국을 지켜내 검찰개혁의 도구로 쓰자는 주장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전달하는 메신저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낮으면, 메시지는 오염된다. 피의자 장관이 검찰개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오히려 검찰개혁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깎아먹는다. 조국은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아니라,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야 할 사람인 것이다.

윤석열 검찰을 정치검찰로 낙인찍는 프레임 공격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치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줄을 대 기획사정과 하명(下命)수사를 일삼는 행태를 가리킨다. 집권세력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득을 챙기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 인기도 없는 허약한 야당과 내통하여 무언가를 도모하는 ‘바보 같은’ 정치검찰은 없다. 살아 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검찰은 오히려 정치검찰 흑역사의 대척점에 서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신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하며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하였다. 윤 총장은 대통령의 주문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력과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없는 ‘원만한’ 검찰이야말로 정치검찰의 시작이다. 친문 정치인들이 윤 총장을 정치검찰이라고 공격하면 할수록 ‘문적문’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리적 측면은 어떨까. 대통령의 경고와 서초동의 촛불은 조국을 향한 검찰의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기껏해야 정경심씨 소환 방식이 비공개로 바뀌는 정도일 것이다. 진정한 검사는 바람이 불면 알아서 눕는, 시류의 추종자가 아니다. 누를수록 더 튀어오르는 용수철 기질의 보유자들이다. 특히 특수부 검사들이 그렇다. 때릴수록 독해지고, 압박하면 더 파고든다. 윤 총장을 비롯해 조국 수사팀은 목을 걸고 수사에 임하고 있다.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고 완벽한 공소장을 위해 불철주야 뛰고 있다. 검찰에 대한 여권의 강도 높은 비판과 압박은 오히려 완성도 높은 수사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 다중의 위력이다. 대전 인구 150만명보다 많은 200만명이 서초동의 일부 구간에 집결했다는 주장은 의욕 과잉으로 인한 뻥튀기였다. 그런데 설령 그 숫자가 모인다고 해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질까.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혼합물이다. 공화의 핵심가치는 자유인데 예속과 굴종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공화주의자 루소는 “나는 오직 법에만 복종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갈파했다. 자유를 위한 법치야말로 공화국의 핵심가치인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철학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조국은 서초동 촛불과 관련해 “국민들의 검찰개혁에 대한 열망이 헌정 역사상 가장 뜨겁다”며 “국민들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면서 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묻고 있으며,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에 대한 통제는 법에 의거해 이루어진다. 그 어느 누구도 법에 근거하지 않고 검찰을 움직일 수 없다. 현재의 검찰이 마음에 안 들면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법을 바꾸어야지 검찰청사 앞에서 촛불을 들 일이 아니다. 다중의 위력으로 검찰의 사법행위를 조종하려는 시도야말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초동 촛불로 윤석열 검찰을 제압하려는 시도는 대의명분, 프레임의 적절성, 실리 등 모든 면에서 설득력과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왜 서초동 촛불에 열광하는 것일까. 현재로서는 그것이 분위기 반전 및 국면 전환의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수세국면이 지속되면 지역구 민심에 민감한 수도권 의원들의 동요가 커질 것이고, 이는 당청 갈등 등 내부 균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력은 외부 공격보다 내부 균열로 무너진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경험칙이다. 그런 점에서 서초동 촛불은 내부 균열을 방지하고 결속력을 높이는 모멘텀이 되고 있다. 이종걸, 안민석 등은 서초동 촛불에 고무되어 윤석열 사퇴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도 탄력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 대다수는 문제투성이인 조국도 그만두지 않는데 윤석열이 왜 그만두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고 있다. 내부 균열 방지도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진보 성향인 경향신문 10월 2일자 1면 헤드라인은 ‘조국 사태, 진보를 가르다’였다. 서초동 촛불은 조국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시켜주고 역전의 희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구세주로 여겨질지 모르나, 그 파급력에는 한계가 뚜렷해 보인다. 오히려 방향변경 및 노선전환의 가능성을 차단하여 손실을 키울 위험성이 높다. 촛불은 바람에 흔들려 꺼지기 전에 크게 몸부림친다. 서초동 촛불은 집권세력에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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