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퇴근길 지하철 풍경이 스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잔뜩 움츠린 표정입니다. 마스크 위로 서로를 쳐다보는 눈길에는 경계심이 가득합니다. 간혹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일제히 시선이 쏠립니다. 얼굴이 벌건 채 마스크를 하지 않은 승객이 기침을 하자 앞에 서 있던 여성이 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광경을 본 적도 있습니다.

바로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사실 공포스럽습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병에 대한 공포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불신의 바이러스도 퍼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불신의 바이러스는 이 사태를 촉발한 사람들, 이 사태를 확산시킨 사람들에 대한 적의를 낳게 마련입니다. 중국인들을 향한 막연한 적개심 같은 것이 그럴 겁니다.

바이러스와 인간의 관계는 숙명적이라고 표현됩니다. 바이러스의 존재가 인간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과학자들은 세균의 1000분의 1 정도 크기에 불과한 이 미세한 전염성 병원체를 독(毒)을 뜻하는 라틴어 바이러스(virus)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세균은 생물로 분류되지만 바이러스의 정체는 아직도 아리송합니다. 스스로 증식하는 세균과 달리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으면 홀로 증식할 수도 없습니다. 숙주가 없는 바이러스는 단순한 단백질과 핵산일 뿐인데, 이것이 숙주에 침입해 유전적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진화합니다. 바이러스를 ‘조건부 생명체’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숙주에 침입한 바이러스는 기존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단백질을 벗어버리고 숙주세포의 유전자 복제 기능과 단백질 생성 기능을 활용해 자기를 빼닮은 놈들을 마구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숙주와 바이러스의 역설도 생겨납니다. 바이러스가 너무 치명적일 경우 숙주를 아예 죽여버리기 때문입니다. 리 골드먼 미국 컬럼비아대학병원장은 ‘진화의 배신’이라는 저서에서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소멸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오히려 전염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바이러스는 인간을 숙주로 삼아 인간의 역사에도 깊은 흔적을 남겨왔습니다. 인간의 의술이 꽤 발전한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바이러스는 치명적 공격을 멈추질 않았습니다. 1918년 창궐한 스페인독감이 대표적입니다. 이때 바이러스가 앗아간 목숨이 2500만명이 넘습니다. 이 숫자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군인(약 1000만 명)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전문가들은 끊임없이 발전해온 인간의 문명 자체가 바이러스의 숙주라고도 얘기합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베스트셀러 ‘총·균·쇠’에 따르면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은 1만년 전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출현했고 최초의 전파자는 가축이었다고 합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같은 책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 교역의 중심지였던 로마가 ‘거대한 세균 번식장’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이제 신종 바이러스는 제트기의 속도로 국경을 뛰어넘어 여기저기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빌 게이츠의 경고대로 신종 바이러스에 대비를 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판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수천만 명의 생명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바이러스가 숙주인 문명을 파괴하고 과연 ‘자살’을 감행할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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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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