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지난 2월 7일 공개한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전문 중 일부(위)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1973년 8월 15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면.
동아일보가 지난 2월 7일 공개한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 전문 중 일부(위)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1973년 8월 15일자 미국 워싱턴포스트 지면.

문재인 정권이 총동원돼 지난 6개월 동안 ‘검찰과의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훗날 문재인 대통령의 치명적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예감을 가졌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추미애 법무장관이 그토록 공개를 막았던, 현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사건의 검찰 공소장 내용을 보면서 확신으로 변했다.

‘아, 공소 내용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이 정권은 2022년 대선 전에 무너지겠구나….’

단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우리나라 민주 시스템과 사법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말이다. 지난 6개월처럼 청와대를 주축으로 정부, 여당, 친여 언론매체, 시민단체, 노조 및 ‘문빠’ 사람들이 온갖 요설과 부정한 방법을 동원, 거리로 나오고 흑(黑)을 백(白)이라고 민심을 계속 현혹한다면 우리 사회는 극도의 혼란한 상태나 무정부 상태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 후보로 내정하면서부터 시작된 ‘청와대와 검찰과의 전쟁’은 2018년 6월 울산시장 후보 선거지원에 대한 검찰 수사로 정점에 치닫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검찰 공소장을 보면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청와대 민정·정무수석실 등 비서실 7개 조직과 경찰이 적극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 후보의 첩보 수집 및 하달, 선거공약 마련, 정적 제거 등에 전방위 개입한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 ‘대통령’을 35번이나 언급하면서 청와대가 불법적으로 선거와 수사에 개입했다고 적시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를 알았는지, 어느 정도 연루돼 있는지 여부다. 공소장 내용은 예전 같으면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힐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추미애 법무장관은 공소장 발표를 못 하도록 막았고(직권남용의 위법사항일 수 있다), 친여 매체는 거의 다루지 않거나 작게 취급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20세기 미국 정치사의 최고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건 개요는 1972년 6월 닉슨 대통령의 측근이 닉슨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 내 민주당 본부에 하수인들을 침입시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다. 처음에는 단순 사건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재판이 진행되면서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최측근들이 관여한 사실이 밝혀졌고, 여기에 백악관의 은폐·조작, 이전부터 행해진 정적에 대한 불법적 정보활동까지 드러났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닉슨 대통령이 은폐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 또 사건 은폐에 개입하였는지 여부였다. 해결의 실마리를 준 것은 백악관의 모든 전화 내용이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이 상원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것이었다. 대법원은 녹음테이프를 특별 검사에게 제출할 것을 명령하였고, 그에 따라 닉슨이 사건 은폐와 관련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건 발생 며칠 후 사건 보고를 받은 닉슨 대통령이 수사의 범위를 백악관까지 확대하지 말라고 연방수사국(FBI)에 지시한 사실이 녹음에서 드러난 것이다. 결국 닉슨은 탄핵에 앞서 1974년 8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백악관의 극히 소수 인사가 관련된 사건이라면 문재인의 청와대가 취한 행동은 헌법, 헌법재판소법, 정부조직법, 형법,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공직선거법 등을 모조리 어겼을 가능성이 농후한 사건이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개입 여부는 아직 뚜껑도 열리지 않은 상태다.

돌이켜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왜 지난해 7월 검찰 서열·기수 파괴까지 하면서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발탁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까지 하면서 말이다.

민주사회의 핵심은 권력자 의중이 아니라 법과 시스템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자신이 원하는 식의 법 집행을 검찰이 순순히 응해주는 것이 민주사회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자신이 임명한 윤석열이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가차 없이 사법처리하듯 계속 자기 시키는 대로 해줄 ‘사냥개’로 생각했을까.

그런데 지금 21세기 한국 검찰은 더 이상 ‘권력의 주구(走狗)’가 아니다. 권력이 요구하는 사냥감뿐 아니라 권력 자체도 검찰의 사냥감이 될 수 있다. 그 점을 인권 변호사 출신이며 민주화 세력의 대표자로 대통령직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이 몰랐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된 지도 어느덧 33년이 됐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검찰은 ‘통치자’ 편이었다. 그때는 독재사회라 어쩔 수 없었지만 민주화되면서 성역은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1988년 집권한 노태우 대통령은 성난 민심에 따라 자신의 동지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고, 5공 실세들에 대한 ‘5공 비리’ 수사도 벌여야만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데 이어, 자기 아들(김현철)의 구속도 지켜봐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권력의 힘으로 조선일보 등 언론기관 사주들을 구속 수사했지만 역시 아들 2명을 교도소로 보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측근 안희정 비서관(충남지사 역임)을 비롯 강금원 등 친한 기업인들의 구속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고, 이명박 대통령도 재임 중 친형 이상득 의원과 죽마고우인 천신일씨(사업가), 그리고 휘하 수석비서관, 비서관들의 구속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권은 현직 검찰총장(채동욱)을 사실상 쫓아내고 조선일보를 비롯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사의 약점을 캐고 다녔다.

검찰 구성원들은 지난 30년간 이런 권력의 부침을 잘 지켜보았다. 권력 실세 편에 계속 서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또 권력 실세에 칼을 들이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순진한’ 문재인 대통령의 윤석열 임명 과정에서 어떤 치열한 계산이나 음험한 정치공작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국정운영의 미숙함과, 우리나라 정부 시스템·사법제도·권력 메커니즘에 지극히 어둡고 나이브한 내공(內空)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우리가 옳고 정의다’라는 40여년 전 운동권 시절부터 잉태된 치기 어린 독선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 검찰이야말로 ‘정치적 고려’를 중시해야 할 때다. 다만 그 고려가 ‘통치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과거 검찰의 힘이 통치자 편에서 나왔다면 21세기 검찰의 힘은 국민들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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