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지내는 대학교수 한 분이 얼마 전 민주당 김해영 최고위원한테 10만원의 후원금을 보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민주당원도 아니고, 김 최고위원과 별다른 인연도 없는데 선뜻 지갑을 열어 후원했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김 위원이 얼마 전 민주당 지도부 회의에서 한 소신 발언 때문이었답니다. 부산 연제구를 지역구로 둔 초선의원이기도 한 김 위원은 지난 3월 11일 지도부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비례대표용 연합정당’ 참여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날 김 위원은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도한 정당으로 그동안 미래한국당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입장을 견지해왔다” “민주당의 (연합정당) 참여는 명분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의 연합정당 참여로 상당한 민심 이반이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습니다.

사실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을 지켜본 유권자라면 김 위원의 발언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느껴졌을 법합니다. 4+1 협의체라는 졸속 조합을 앞세워 그 난리를 치면서 통과시킨 이른바 ‘선거법 개혁’이 버림받을 판인데 다들 입을 다물거나 오히려 동조하고 나서는 것이 너무나 이상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상식이 궤변에 묻혀버리는 게 지금 민주당의 현실입니다. 미래한국당이라는 ‘꼼수’ 정당을 만들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마구 흔들어대는 당도 문제지만 그렇게 욕하던 꼼수를 ‘정당방위’ ‘시민연합 세력 호출에 응하는 것’ 운운하며 따라하는 쪽은 더 큰 문제로 보입니다. 아무리 총선 승리와 의석 수가 중요하다지만 정치의 기본룰조차 실종된 막장으로밖에는 보이질 않습니다.

어떤 분은 지금 벌어지는 비례당 아귀다툼을 지켜보면서 ‘하이에나들 같다’고 표현하더군요. 마지막 살점까지 놓고 다투는 아프리카 초원의 하이에나가 연상된다는 겁니다. 실제 준연동형 비례의석은 도입 취지도 오간 데 없이 그냥 정당들의 먹잇감으로 내던져진 모양새입니다. 이 와중에 민생당은 “앞 번호를 양보해주면…”이라면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비례정당 참여 의사를 은근히 내비칩니다. 의석 앞에서 입맛을 다시는 저급한 본능만이 번뜩이는 꼴입니다.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이번 공천을 지켜보면서 정당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서로를 죽이기 위해 이른바 물갈이와 전략공천이 난무하는 바람에 지역구 민심이라는 정당정치의 기본은 온데간데없어졌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실제 이번 공천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의 지역 연고와 지역 유권자 의사는 거의 무시됐습니다. 승산이 있다는 중앙의 판단만 있으면 아무 연고도 없는 후보를 마구 내리꽂았습니다. 민주당은 말만 시스템공천이었지 중앙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극성 친문세력의 동원이 있었고, 통합당은 공관위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른 끝에 사천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몇 년씩 지역구 텃밭을 갈아온 예비후보들은 그간의 노력이 허공으로 떠버렸습니다. 당만 보고 찍으라는 식으로 유권자들한테 후보를 ‘강권’하는 현실에서 지역구 의원이 뭐가 필요하느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한 정치 전공 교수는 “지역 유권자와 지역 당원들을 믿지 못하는 절름발이 공천이 이뤄졌다”고 지적하더군요.

4·15 총선은 여러모로 이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큽니다. 코로나19 사태가 투표일까지 진정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민의는 제대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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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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