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여전히 기승이지만 요즘 봄볕이 너무 좋습니다. 거기다가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으면 바깥 나들이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지난 주말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한강변에 나가봤습니다. 뚝섬 유원지에 들어서는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코로나19의 그늘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행복해 보이는 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씌워져 있는 마스크가 오히려 낯설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배달음식을 넘겨받는 곳에도 마스크를 쓴 배달원과 손님이 뒤엉켜 ‘사회적 거리’는 온데간데없더군요. 코로나 19가 따뜻한 봄볕에 사위어진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면서 차례로 마주치는 한강 변 공원의 풍경은 다 비슷했습니다. 사람들 얼굴을 가린 마스크와 가끔씩 호주머니 속에서 진저리치는 휴대폰의 재난알림문자만 아니면 나른하고 평화로운 봄 풍경이 위협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봄 풍경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강 자전거길에서 여의도로 올라가봤습니다. 돈과 권력을 좇는 사람들이 사라진 일요일의 여의도는 사방이 너무나 조용합니다. 고층빌딩숲 한가운데 있는 여의도공원에만 농구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왁자지껄하더군요. 거칠게 숨 쉬는 젊은이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들 위로 마스크들이 꽃잎처럼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공원을 산책하는 한 아주머니한테 주변의 시선이 쏠리길래 바라보니 함께 걷는 애완견이 마스크를 하고 있더군요. 최근 레바논에서 개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입에 거품을 물고 괴로워하는 개 사진들이 소셜미디어에 잇달아 올라와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개에 마스크를 씌우는 사람과 개를 독살하려는 사람과의 거리는 도대체 얼마나 멀까요.

지난 주말 여의도는 이미 벚꽃이 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벚꽃이 터널을 이룬 여의도 주변 도로를 달리고 있자니 이런 호사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국회 뒤편 윤중로 벚꽃길에서 복병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다시 맞닥뜨렸습니다. 큼지막한 현수막에 ‘4월 1일부터 벚꽃길 출입을 막는다’는 경고문이 쓰여 있더군요. 이 흐드러진 벚꽃에 다가가는 걸 누가 가로막는다는 건지 의아해졌습니다. 이 봄날,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무서워하면서도 자꾸만 벚꽃에 다가가려 할 겁니다. 봄에 우리 곁에 다가온 꽃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꽃에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건 바이러스가 기생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곁에 갑자기 나타난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사람이라는 숙주가 낯설기만 할 텐데 이런 낯섦이 모두의 봄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동네 어귀에서 다시 호주머니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요동쳤습니다. 이 화사한 봄에 몸속에 들어온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그 봄은 끝내 오지 않는 건지 안달이 납니다. 결국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우리의 일상이 되고 말까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창밖의 봄볕은 좋기만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키워드

#마감을 하며
정장열 편집장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