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이후 ‘권력의 절제’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단 180석을 거머쥔 거대 여당을 향한 보수 진영의 당부에 이 용어가 등장합니다.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는, 여당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반대 유권자들을 무시한 채 비대해진 의회 권력을 휘두르다가는 공동체 전체가 갈등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힘이 세진 여권에서도 아직 이 말을 쏘아붙일 대상이 있는 모양입니다. 여권 인사들이 ‘절제해야 할 권력을 가진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건 윤석열 검찰총장과 검찰이 대표적입니다.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는 총선 후 소셜미디어에 “대중 선동을 통해 힘을 얻은 히틀러의 몰락 원인은 주어진 권력의 남용”이라며 윤 총장을 히틀러에 빗대 비판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우 대표의 말대로 히틀러 정도의 권력을 휘두르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정파성을 떠나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마자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에게까지 물러나라고 하는 모습에선 그야말로 절제되지 않은 권력의 오만함이 느껴집니다. 우희종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앞의 글에서 “그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당신, 이제 어찌할 것인가”라면서 대놓고 윤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 권력의 절제라는 용어를 가장 인상 깊게 남긴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5개월 전 가진 한 인터뷰에서 “권력의 절제가 민주주의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봉하마을을 찾은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와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였는데, 당시 인터뷰 녹취록을 입수해 기사로 정리하면서 권력을 절제하지 않으면 왜, 어떻게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건지,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의 의미가 뭔지 반복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권의 수사 칼날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개인적인 경험도 ‘권력의 절제’라는 명제에 집착한 이유 중 하나일 듯합니다.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의 절제가 자신이 평생 추구해온 탈권위주의로 가는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권력의 절제와 그것으로 인한 규범과 상식의 지배가 하나의 사회적 풍토 내지 문화로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탈권위주의가 그러한 것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속했던 진보 진영은 다시금 야당으로 전락했고, 앞이 보이질 않는 위기에 내몰려 있었습니다. 한국이 여전히 보수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느꼈을 법합니다.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이 말한 ‘권력의 절제’와 ‘규범과 상식의 지배’도 보수 진영을 향한 당부였을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보 진영을 향해서는 “능력을 뛰어넘는 목표를 갖고 있다” “매우 적대적인 내부 경쟁을 한다”며 솔직하게 깎아내렸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었더라면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운동장이 반대로 기울더라도 ‘권력의 절제가 민주주의’라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그의 당부가 이번에는 진보 진영을 향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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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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