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버지 치매 예방약을 타러 종합병원 정신과에 들렀다가 환자가 너무 많아서 좀 놀랐습니다. 대기 환자들이 많아 앉아 있을 의자조차 없을 정도더군요. 코로나19 사태로 가족의 대리 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탓도 있다지만 의사 얘기로는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환자들이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제게 처방전을 끊어준 의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가리지 않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며 “특히 사업하거나 장사하는 분들이 불황에 시달리면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하더군요. 이런 말을 들어서인지 진료실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스크 위 눈빛이 온통 불안에 흔들리는 듯 느껴졌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4월 의원급의 과목별 진료비를 산출한 결과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는 54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82억원에 비해 12.9%나 늘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진료비는 무려 67.3%, 이비인후과는 45.6% 감소한 것과 무척 대조적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전염이 무서워 병원에 잘 안 가는 와중에도 정신적 고통을 참지 못해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많았다는 얘기입니다. 아마 정신과를 찾은 환자들 숫자는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제 주변에도 요즘 “우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즐거운 일은 없고 화가 나고 짜증 나는 일만 널려 있다는 겁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한 친구는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소주 한 병씩 사들고 일찍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털어놓더군요. 알코올 중독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혼자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직원들 하나씩 챙겨서 내보내고 무사히 회사를 접는 것이 요즘 가장 큰 목표”라고 씁쓸하게 얘기했습니다.

불황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사람의 마음조차 어둡게 만듭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동네 쇼핑몰의 가게 세 곳이 다 문을 닫은 걸 알아차렸습니다. 옷가게, 신발가게,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매장 안이 껌껌하게 불이 꺼진 채 ‘임대’라는 종이만 나붙어 있더군요. 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결국 코로나19 불황에서 헤어나질 못했나 봅니다. 출퇴근길 오가면서 봤던 종업원들과 가게 주인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미치자 아침부터 우울해졌습니다.

재난지원금을 풀면서 반짝했던 경기가 다시 가라앉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코로나19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끝이 잘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는 듯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염력이 강한 변종을 자꾸 만들어내면서 우리를 끝나지 않는 전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지 앞날의 불확실성이 가슴을 짓누릅니다. 유·무급 휴직으로, 실직으로, 구직 포기로 집에 어쩔 수 없이 머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일상의 코로나 블루는 또 다른 만성 전염병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장마철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나듯이 언제쯤 코로나 블루가 말끔히 사라지고 사람들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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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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