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라 버드 비숍
이사벨라 버드 비숍

영국 왕립지리학회 소속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 여사는 구한말 조선 땅을 주유천하하면서 줄곧 이런 의문을 가졌다.

‘조선인들은 잘생기고 힘이 세며 대단히 명민하고 똑똑한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게으르고 더럽고 가난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걸까?’

그러나 그녀의 의문은 두만강 너머 러시아 연해주 땅에 정착한 풍요롭고 근면한 조선인 마을을 보고 풀렸다.

‘주체성과 독립성, 영국인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들로 변해 있었다. 그들의 변화는 정직한 정부 밑에서 자신들의 생계를 보호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비록 제정러시아 말기이긴 하지만 조선에 비해 월등하게 뛰어난 러시아 정부와 시스템에서 이유를 찾은 것이었다. 그녀는 풍운의 격동기였던 1894~1897년 4차례나 조선을 방문해 조선팔도를 말을 타고 직접 돌아보면서 관찰한 소감을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란 책으로 출간했다. 그녀의 혜안대로 이후 한국인들은 그 명민함과 근면함으로 일제강점기-분단-전쟁-가난의 시절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성취했으며 전 세계가 이를 주목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구한말 비숍 여사가 본 것과 같은 혼란스럽고 후진적인 사회로 퇴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 없다. 지금 한국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① 기생충이 득실거리는 사회

이사벨라 비숍은 당시 조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글거렸다고 기술했다. 나라 지도층은 자신들의 측근과 친척, 친구 부양을 위해 할 일이 없는데도 새로운 관직을 계속 만들어내 국고를 축냈으며, 이들 ‘기생충’ 관료들은 흡혈귀처럼 인구 5분의 4인 하층민 평민계급의 피를 빨아먹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떤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연간 2000~1만명 규모였던 공무원 증원 숫자가 문재인 정권 5년간 총 17만명으로 늘어나며, 적자투성이의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이 마구잡이로 증가한 현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또 500조원이 넘는 국가 예산이 거의 국회 견제 없이 집행되며 이 과정에서 정치권, 중앙-지방정부, 시민단체들의 온갖 명목의 예산 확보와 담합이 이뤄져 일하지 않고도 돈을 타는 사람, 실세에 빌붙어 정부 돈 챙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정말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② 상인이 천시받는 사회

조선시대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사회였다. 지배층 선비들은 입으로 먹고살았고, 실제 생산·기술·경제활동은 하층민이 담당했다. 비숍이 본 조선은 농부들이 쟁기, 삽을 직접 만들었고, 돈도 제대로 유통되지 않는 물물교환 사회였다. 심지어 서울에도 변변한 가게조차 없는 최후진적 사회였다.

지금 한국 사회를 주름잡는 운동권 출신 세력은 평생 정치, 법조, 시민운동 분야 등에 몸담고 현실보다 명분과 이상을 주장하며 살았다. 이들이 가장 낮춰 보는 세력이 ‘매판자본, 정경유착으로 성장하고 노동자들을 착취해온’ 기업인, 상공인, 자본가들이다.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최저임금, 주52시간 근무제 등 소득주도성장이나 부동산정책 등 각종 경제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이요, 삼성 등 대기업들을 단죄의 대상이나 경제적 부담을 담당해야 하는 호구(虎口)들로 볼 수 있다.

비숍의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비숍의 저서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③ 백성은 수탈 대상

비숍이 목격한 사회는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체제였다. 만일 누군가 경작을 잘해 수확을 올렸거나 심지어 놋쇠나 사기그릇을 새로 장만한 사실만 알려져도 근처의 탐욕스러운 관리나 앞잡이가 가만두지 않았다. 구한말 조선은 온갖 조세제도를 만들어 징수했고, 중간 관리인 탐관오리들은 중도에 가로챘다.

문 정권 출범 이후 법인세, 근로소득세, 종부세, 상속세 등 온갖 세금과 세율이 늘어났다. 심지어 주정차 위반 과태료 징수 실적도 급증했다. 출범 2년간 총 24조원의 세금이 갹출됐고 불황인데도 매년 10% 이상 세금이 늘어난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세금주도성장’ 정책인 셈이다. 이런 세금 쥐어짜기에다 이미 벌어놓은 국고까지 빼내 펑펑 쓰는 바람에 나라 빚은 660조원(2017)에서 1070조원(2022·예상)으로 늘어난다. 이 모든 부담은 누가 지는 것일까.

④ 우리끼리 싸우는 데 귀신

역시 구한말 상황을 다룬 윌리엄 엘리어트 그리피스의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을 보면 사도세자 이후 사색당파 당쟁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기술돼 있다. 애오라지 자기네 문중·파벌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온갖 교활한 논리와 명분, 음모가 동원되고, 서로 죽고 죽이는 과정, 여기에 이용되는 사정기관 등 공권력의 모습을 보면 2020년 한국 사회의 데자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기네 편이라면 어떤 비리도 감싸고 상대편은 어떤 명분으로도 죽이려는 사회 모습 말이다.

⑤ 남과 싸우는 데 등신

당쟁에는 탁월했던 조선시대 지도부는 외교·안보에서는 ‘제로’였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수많은 외침(外侵)과 구한말 망국(亡國)은 ‘명민한’ 조선인의 능력으로는 사전에 적절히 대처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지금 한국은 과거 우방들은 홀대하는 반면 중국에 굽실대며 북한에 호구 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70여년간 어렵게 만든 우리 안전과 번영의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⑥ 겉으로는 군자, 속으로는 탐욕의 위선 사회

비숍은 책 말미(‘조선에 부치는 마지막 말’)에 ‘조선은 특권계급의 착취, 관공서의 가혹한 세금, 총체적인 정의(正義)의 부재, 음모로 물든 고위공직자의 약탈행위, 가장 타락한 국가와의 가까운 동맹관계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했다. 이런 조선 말 지도부 모습과, 지금 조국·윤미향·추미애·노영민·임종석·김현미 등으로 대표되는 이 정권 실세들의 ‘정의로운 태도’와 ‘위민(爲民) 정신’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조선시대 양반 지배계급을 대체하는 21세기 한국 신흥 지배세력은 과거 386 운동권 세력을 정점으로 그들이 장악한 정부관료, 공기업, 그리고 그 전위부대인 시민단체와, 민노총·전교조 등 노조 및 여기에 기생하는 세력들, 이와 함께 유시민, 김어준, 주진우 등으로 대표되는 어용문필가 등으로 변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세력들을 지키고 늘리기 위해 온갖 세금을 거둬들이고 나라 곳간을 텅텅 비우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전달하려는 진정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국 사회는 앞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그런 상황에서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함영준 마음건강 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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