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1일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1일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유세 중인 트럼프 대통령. ⓒphoto 뉴시스

미국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의 패권 도전에 맞서 자유주의 진영의 동맹국과 협력국가 등을 상대로 참여를 설득해오고 있는 ‘반중(反中) 글로벌 연합’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 글로벌 연합의 형태로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경제번영네트워크(EPN)’이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EPN 참여 제안을 받은 건 지난 6월 초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채 ‘전략적 모호성’으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는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 때처럼 중국에 제재를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이 정부의 친중 성향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서구 동맹국들부터 공략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21일 영국 런던을 방문해 보리스 존슨 총리에 이어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과 회동을 가졌다. 회동 후 그는 “중국 공산당에 맞서는 반중 전선 구축에 모든 국가가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여기에는 확실히 영국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 중단과 화웨이 퇴출 등 영국의 어려운 결정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자유주의 진영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인 영국이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반중 글로벌 연합의 구축 전선에 파란불이 켜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이다.

물론 미국의 참여 요청을 대놓고 거부할 수 있는 나라는 자유주의 진영에서 찾기는 어렵다. 오늘날 세계 질서는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러시아가 강대국 간의 정치 무대로 귀환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경쟁하는 다극 체제로 이행하고 있다. 그 같은 이행을 촉발한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중국의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 등 두 개의 지정학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하드파워인 경제력과 군사력에서는 물론 소프트파워인 문화력에서도 여전히 중국과 러시아를 압도한다.

미국은 중국이 보복하면 보상해줄까?

문제는 미국의 이런 지위가 반중 글로벌 연합의 구축을 성사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정말로 반중 글로벌 연합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자 한다면, 참여 시 중국의 보복으로 인해 입을 수 있는 경제적 피해를 상쇄하는 걸 넘어서는 구체적인 혜택을 참여 국가들에 제공해야 한다. 국제 질서의 최종 작동원리는 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경품’을 내걸기는커녕 오히려 그동안 제공해온 혜택을 도로 빼앗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독일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편성해 미국과 서유럽 안보협력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예산 분담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9500명의 주독미군 철수 결정을 내린 데서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반중 글로벌 연합에 참여할 경우 중국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진심으로 한국의 참여를 바란다면 예상되는 중국의 제재를 막아주거나 제재로 인한 피해를 상회하는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사드 사태 때처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못 하게 하는 방안과 한국의 대미 수출품의 관세 인하 등의 무역 특혜 제공 방안을 미국이 EPN 참여 대가로 검토할 가능성은 어디서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비로 요구해 온 5억달러 안(案)도 변동이 없다.

참여국들에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적국을 겨냥한 다자협정의 성공 조건이라는 점은 미국 학자들도 인정한다. 미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알렉산더 쿨리(Alexander Cooley)와 대니얼 넥슨(Daniel Nexon)은 올해 출간된 저서 ‘패권으로부터의 이탈(Exit from Hegemony)’에서 미국이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다자협정은 참여국들에 미국 체제가 보유하고 있는 힘에 기반한 경제적 혜택을 나눠주는 등 비용을 부담해야만 구축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반중 연합 비용은 재선 가능성 낮춘다

이 같은 지적은 트럼프가 2017년 취임 직후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중 경제 봉쇄를 목표로 추진해 의회 비준을 앞두고 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한 이유를 설명해준다. 트럼프는 전 세계가 ‘미국의 힘’으로 인식해온 관세 인하 등 무역상의 특혜를 TPP 회원국들에 나눠줄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경제적 현실이 악화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지금 EPN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미국의 경제가 그런 비용을 감당할 만큼 나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America First)’이라는 국익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미국의 경제사정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실업률이 4%대에서 3%대로 하락했다. 해외에 나갔던 미 기업들에 귀환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에 힘입어 고용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부의 양극화는 완화되지 않았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내 소득 상위 인구 1%의 소득 합계는 하위 인구 88%의 소득 합계와 같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머스 피케티는 미국의 빈부격차가 소득 상위 1%가 국내총생산 전체의 26%를 차지하는 등 1920년대 대공황 때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여기에다 올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미국의 경제 상황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별로 나은 것이 없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개인들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주택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지 못하더라도 당장 쫓겨나지 못하게 하는 정책 등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반중 글로벌 연합을 추진하더라도 여전히 참여국들에 경제적 혜택을 제공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반중 연합을 본격 추진하게 될 경우 그의 재선 가능성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쇠락한 공업지대인 중서부의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한 미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경제적 어려움을 도외시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봉쇄를 위해 피 같은 달러를 동맹국들에 나눠줄 경우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2016년 11월 대선 당시 자신이 당선되면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를 구 동유럽 공산권과 중동, 중앙아시아의 테러지원국들의 체제 전환(regime change)에 쏟아붓는 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전 세계 확산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 전략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2018년 12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를 선언했다. 그로서는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지 않는 지역에까지 파병함으로써 소요되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2016년 11월 대선에서 자신을 찍어준 유권자들의 뜻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2018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독일에 GDP 대비 2%의 국방비 지출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이나,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비 부담을 기존의 5배 증가한 5억달러를 내라고 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특히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액 요구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은 편집증적이라는 느낌까지 준다. 미 권위지 워싱턴포스트의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는 최근 발간된 저서 ‘격노(Rage)’에서 트럼프가 욕설을 쓰면서까지 “한국에서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책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 세계는 우리(미국)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변화의 시간이다. 나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미국은 한국인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3만명의 병력을 유지하는 비용을 내고 있다”면서 “우리(미국)는 모든 사람이 빼앗아가고 싶은 돼지저금통”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연설에 열광하는 지지자들. 미국 유권자의 3분의 2가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패권 전략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photo 뉴시스
트럼프 연설에 열광하는 지지자들. 미국 유권자의 3분의 2가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패권 전략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photo 뉴시스

미 유권자들은 패권 전략 포기를 원한다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해 부담했던 비용을 떠넘기려 하는 것은 그만큼 미 유권자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 유권자들의 이런 정서는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미 하버드대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스티븐 월트(Stephen Walt)는 2018년 출간된 저서 ‘선한 의도들의 지옥(The Hell of Good Intentions)’에서 같은 해 초 실시된, 매우 중요한 한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이 조사에 의하면 미 국민의 70% 이상이 해외 군사작전을 허용하려면 그 작전의 승리 또는 성공을 뒷받침하고 분명한 목표와 시간표를 요구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안보와 직결되지 않은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켜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미 국민의 3분의 2가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같은 해 나토 정상회의 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가 독일 등에 나토 방위비 분담 증액을 압박한 것에 약 50%가 찬성했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에 제공한 혜택을 되찾아온 것은 안보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취임한 뒤 한국, 일본, 캐나다 등과의 기존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해 특혜 관세 품목과 관세 인하율을 대폭 줄여왔다. 미·중 무역전쟁만 벌인 게 아니라 동맹국들과도 드러나지 않게 무역전쟁을 벌여온 것이다.

그렇다면 동맹국들에 참여 대가를 지불해야만 결성 가능한 반중 글로벌 연합을 추진하면서 이미 주어졌던 혜택까지 도로 빼앗는 데 혈안이 된 미국의 모순된 정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중 하나는 트럼프가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바이러스 진원지인 중국 때리기 차원에서 반중 연합을 결성할 듯한 쇼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의지가 없으면서 추진하는 듯한 시늉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로서는 유권자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참여국들에 비싼 달러를 지불할 생각은 없다. 그런 만큼 무역 특혜와 같은 대가 제공이 필수적인 반중 연합이 성사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로는 한 가지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트럼프가 반중 연합을 추진할 생각이 없다고 보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하더라도, 지금 미 국무부가 보이고 있는 공식적이고 진지한 모습은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문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 7월 21일 존슨 총리에게 참여를 적극 요청한 뒤 동맹국들을 향해서도 반중 글로벌 연합 참여를 요청한 데서 보듯이 적어도 미 외교 당국의 움직임은 시늉으로 보기 어렵다.

이상주의 외교 엘리트 그룹 ‘블롭’의 힘

이 점에서 트럼프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주도해왔던 이상주의 성향의 외교 엘리트 그룹인 이른바 ‘블롭(the blob)’에 패배했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블롭은 그동안 미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에 포진해 있었지만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않고 숨죽여왔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사태로 트럼프의 지지율이 하락해 재선 가능성이 낮아지자 트럼프를 상대로 중국의 체제 전환을 목표로 한 반중 글로벌 연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압박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반중 글로벌 연합이라는 구상은 중국 공산당 붕괴를 통해 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전형적인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해당한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월트가 ‘선한 의도들의 지옥’에서 제기한 분석을 보더라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트럼프 취임 첫해인 2017년 국무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NSS)의 기조를 둘러싸고 트럼프와 블롭 간 대결이 있었는데 블롭이 이겼다고 월트는 분석한다. NSS에 중국을 핵심 적국으로 규정하는 등 트럼프의 미국 국익 우선주의라는 현실주의와 거리가 먼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기조가 그대로 담겼다는 것이다.

그 결과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전략 기조를 놓고 미국 안팎에서 두 개의 상반된 견해가 맞서왔다. 첫 번째 견해는 트럼프가 중국 공산당 체제를 무너뜨려서라도 패권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 기조를 이어받아 왔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트럼프가 이런 기조에 따라 미·중 무역전쟁을 벌였으며, 지금 추진 중인 반중 글로벌 연합 결성도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두 번째 견해는 트럼프가 2016년 11월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뜻을 받들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폐기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유주의 패권 전략보다는 오로지 국익 증대에만 관심이 있다는 분석이다. 요컨대 그가 선택한 것은 중국을 압박해 미국의 농산물 수입을 늘리고 중국의 대미 수출 흑자를 줄이게 만듦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최대한 이끌어내 미 유권자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국익 우선이라는 현실주의라는 것이다. 이 견해를 따른다면 미·중 무역전쟁은 경제적 세력균형의 일환일 뿐으로, 트럼프가 반중 글로벌 연합이라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추진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진다.

현재까지 드러난 여러 정황과 근거를 바탕으로 추론할 경우 트럼프의 스탠스는 두 번째 견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각자가 세계를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현실주의적 세력균형의 관점에서는 두 번째 견해를, 이상주의적 자유주의 패권의 관점에서는 첫 번째 견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난 9월 21일 영국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9월 21일 영국을 방문한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왼쪽)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트럼프와 블롭의 일시적 타협

문제는 반중 글로벌 연합 구상이 트럼프가 블롭에 패배한 데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맞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냐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가 외교 전략을 다뤄본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블롭이 지배하고 있는 국무부와 국방부, 국가안보위원회를 마음대로 다루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앞서 월트의 책 분석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민주당과 공화당의 거대한 자유주의 패권 기득권 세력인 블롭을 적으로 돌린 결과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대외 전략 기조를 둘러싼 혼선은 여기에서 말미암는다. 그의 외교 전략은 크게 봐서 두 번째 견해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경우에 따라서 블롭의 훼방이나 압박으로 인해 반중 글로벌 연합 구상처럼 첫 번째 견해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가 그렇다. 이는 분명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더 가깝다. 트럼프가 파기 결정을 내렸을 때 미국 안팎의 현실주의 학자들은 혼란을 느꼈다. 존 볼턴(John Bolton)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7월 출간된 저서 ‘그 일이 일어났던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서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는 자기가 조언해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볼턴이 전형적인 자유주의 패권론자라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이란 핵합의 파기와 달리 반중 글로벌 연합 구상은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트럼프는 막대한 달러를 동맹국들에 쥐여주면서까지 반중 연합을 추진했다가는 재선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 같은 사안에서는 블롭에 져주거나 넘어가줄 수 있지만 자신의 재선과 직결된 반중 연합 구상 문제에서는 블롭의 압박에 완전히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실 미 국무부 중심의 블롭이 동맹국들에 압박해온 화웨이의 5G 장비 구입 금지 정책과 관련해서도 트럼프는 비공식적으로 거리를 두어왔다. 트럼프는 공식적으로는 화웨이를 비난하긴 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행정부 내부에서 화웨이 제품 구입을 허용했다. 볼턴이 ‘그 일이 일어났던 방’에서 이를 폭로하자 트럼프는 그제야 부랴부랴 구입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블롭과 트럼프가 반중 연합 추진 구상을 놓고 저마다 각자의 이익을 기준으로 타협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블롭의 계산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지지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11월 대선에서 이길 때를 대비해 올해 반중 연합 결성에 일단 착수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다 바이든이 승리하면 막대한 예산을 책정해 참여국들에 대가를 제공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블롭의 구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반중 연합 구상이 중국 때리기라는 측면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지지율 하락을 일정 부분 만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조건부로 허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블롭의 제안을 받고 일단 올해 동맹국들에 ‘로키’로 제안해 의사를 타진해보는 정도로만 추진하는 것을 허용하되 본격 추진 여부는 자신이 재선이 되면 결정하자고 타협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무부가 EPN을 제안해 놓고 재촉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바이든 진영에 몰려간 블롭의 계산

반중 글로벌 연합의 추진 배경을 둘러싼 여러 논란과 의혹을 계기로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또다시 이번 미 대선의 핵심 전선으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 때리기 효과만 거두는 선에서 반중 글로벌 연합과 같은 자유주의 패권 전략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 대신 동맹과 적국을 가리지 않는 국익 우선주의 전략과 해외 진출 미 기업들의 리쇼어링 정책 추진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왔다는 성과를 내세우는 등 재선이 되면 더욱 국익 우선주의 전략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으로 승부하고 있다.

반면 바이든은 트럼프가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위협이 되는 국가들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이 당선되면 이들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20여년간 클린턴, 부시, 오바마 행정부는 미국과 동맹국의 안보보다는 5조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구 동유럽과 중동,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체제 전환에 집착했다. 그 결과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을 받아 탈냉전 질서가 붕괴해 미국의 안보가 불안해졌고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미 국민들의 삶은 더욱 악화돼왔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 행정부에 남아 있는 블롭을 제외한 모든 블롭 세력은 다 바이든 캠프에 집결해 있다고 봐야 한다.

11월 미 대선의 핵심 전선을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부활로 볼 경우 트럼프가 절대 유리하다. 미 유권자들로서는 그의 막말이나 코로나19 방역 실패가 마음에 들지 않다가도 자신들의 복지보다는 중국의 체제 전환이나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에 막대한 예산을 쓰겠다는 바이든을 보면 차라리 트럼프가 낫다고 여길 수 있다.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지지율 격차를 급속히 줄이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하지만 누가 이길지 속단할 수 없다고 본다면 한국은 트럼프가 재선이 됐을 때와 바이든이 승리했을 때를 대비해 대미 전략을 본격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국익 우선주의는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에 대비해 5억달러를 다 댈 각오를 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를 막아야 한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문재인 정부가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보수 진영에서 ‘친미 프레임’을 각오하더라도 5억달러를 부담하자는 의제를 선제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이 될 경우 자유주의 패권 전략에 기반해 반중 글로벌 연합 결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더욱 어려운 선택지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특히 EPN의 경우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명하되 이로 인해 중국의 경제적 보복이 뒤따르지 않도록 미국에 ‘균형감 있는 정의’를 요구해야 한다. 동시에 중국의 보복이 있을 경우 이를 철회하도록 압박한다는 사전 공감대를 이루는 대미 외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전략적 모호성으로는 트럼프 2기든 바이든 1기든 그 어느 시기도 무사히 돌파할 수 없다는 걸 진보 정부나 보수 야당 모두 깨달아야 한다.

트럼프가 재선이 되더라도 블롭에 대한 외교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블롭은 지난 1기 때 트럼프와의 맞대결에서 몇 차례 이길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트럼프를 설득하는 것이 어렵다면 블롭에 대한 관여를 통해서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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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 한국국가대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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