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이번 추석 분위기를 벌써 다 망쳐놓은 듯합니다. 가족들이 모이는 차례를 포기한 집도 주변에서 보이고,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들한테 대놓고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집도 꽤 있습니다. 자식과 손자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텐데 그걸 끊어내는 부모들의 심정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추석이 코앞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비대면 추석’이 코로나 시대 뉴노멀로 이미 자리 잡았나 봅니다.

코로나19는 진행 중인 가족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올해 결혼 건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7월 누적 혼인 건수가 12만6367건으로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최소 수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7월 출생아 수도 2만3067명으로 1년 전보다 -8.5%나 줄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7월 기준으로는 198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소치입니다.

이번 추석에 어른들을 찾아뵙지 않겠다고 답한 취업준비생의 숫자가 작년보다 훨씬 늘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10명 중 7명이 가족모임에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수치 역시 작년보다 15%나 늘었다는데, 어른들 뵙기가 불편한 취준생들한테는 올해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 셈입니다.

또 다른 여론조사를 보면 60%가 넘는 구직자들이 추석에도 여전히 일자리를 알아보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절박함 속에서 명절 분위기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 무리입니다. 동네마다 폐업하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여유롭고 풍요로운 한가위 분위기는 기대 난망입니다.

추석 전 급하게 추경을 편성해 현금 뿌리기에 성공한 정부는 ‘추석 이후’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추석 이동자제를 권고하는 정부의 목소리에는 추석 이후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염려와 조바심이 묻어납니다. 코로나19가 수도권에 확산되기 전만 하더라도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호언이 들렸지만 지금은 그런 자신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K-방역’이 늘어나는 깜깜이 감염자 앞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습니다.

우울한 코로나19 추석 분위기에 젖어있다가 이번호 이동훈 기자가 쓴 대만의 추석 풍경 얘기를 읽다 보니 부러움부터 앞섰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대만의 효율적인 마스크 행정과 철저한 대중 봉쇄 정책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게재한 바 있었는데 이제 ‘T-방역’이 ‘K-방역’을 완전히 따돌렸다는 느낌이 듭니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호언하던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대만은 실제 성공했습니다.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1%가 예상되지만 대만은 1.56%의 플러스 성장이 예상됩니다.

놀라운 건 코로나19 초기 우리와 달리 철저하게 틀어막은 중국과의 교역도 우리와는 정반대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상반기 대중국 수출량이 우리는 전년 대비 6% 넘게 줄었지만 대만은 오히려 9.8%가 늘었습니다. 방역에 성공하면서 ‘대만=안전지대’라는 인식이 대륙과의 교역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대만은 우리 같은 이동자제 권고도 없이 여느 추석과 다름없는 귀성 행렬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T-방역’과 ‘K-방역’의 성적표가 사뭇 다른 추석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어 씁쓸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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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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