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맹주로 불리던 김종필(JP) 전 총리는 생전에 ‘민심은 호랑이’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사육사가 먹이를 줄 때는 반갑다고 하지만 수틀리면 언제든지 물어 죽일 수 있는 호랑이 같은 것이 민심이라는 얘기입니다. 권력자가 그런 호랑이 앞에서 경거망동하거나 오만방자하게 굴다가는 아가리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는 경구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보다 훨씬 살아있는 느낌입니다. 권력자들이 습관처럼 되뇌어서인지 영혼 없는 상투어 같아진 말보다 울림이 더 큽니다. 여당이 참패를 기록한 4·7 보선 다음 날 아침 JP가 애용하던 이 경구가 떠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진짜 권력을 호랑이가 삼켜버렸습니다. 불과 1년 전 국회의원 49석 중 41석을 여당에 몰아줬던 서울 민심은 거짓말처럼 달라졌습니다. 국민의힘 오세훈,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얻은 57.5% 대 39.2%라는 득표차와 서울 25개 자치구 중 모든 구에서 박 후보가 패했다는 사실은 호랑이가 제대로 화가 났음을 보여줍니다. 최근의 몇 차례 선거에서 성공적인 PK 공략에 들떴던 여당에 철퇴를 가한 부산 민심도 사납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선거 유세 과정을 보면 결과적으로 여당은 이미 분노로 포효하는 호랑이 앞에서 경거망동한 셈이 돼버렸습니다. 생태탕이니 페라가모 구두니 떠들어대다가 호랑이의 성만 더 키워버렸습니다. 선거 기간 여당의 나팔수를 자처하며 ‘정의로운 고발자’들을 연일 마이크 앞으로 불러낸 교통방송 진행자 김어준은 성난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던 셈입니다.

사실 이번 선거는 ‘유보된 심판’의 성격이 짙습니다. 권력의 사이클로만 보면 지난 총선이야말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비상시국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제대로 된 평가를 유보시켰습니다. 그 결과 여당은 180석에 취했습니다. 지난호 주간조선 커버스토리가 지적한 대로 오만과 착시가 지난 1년 사이 민심이반을 키운 것입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이미 민심이반 조짐이 일었지만 여권은 호랑이가 깨어났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정권을 심판한 주역이 2030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이번호 커버스토리 신지호 박사의 분석대로 20대 남자에서 시작된 반란이 20대 여성으로 확산되다가 급기야 30대까지 치고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2030이 이른바 ‘문주주의’에 대해 매서운 심판을 가했습니다. 정의를 독점하고 내로남불을 일삼던 문주주의는 젊은이들이 주도한 심판의 흐름에 밀려 퇴장당할 운명에 처해졌습니다. 여권의 마지막 지지층으로 남아 있는 40대가 2030과 5060 사이에 섬처럼 끼인 신세가 돼버렸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젊은이들의 반란 덕분에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문주주의의 득세 앞에서 ‘유사 파시즘’ 논란까지 낳았던 그 위기감이 이번 선거 결과 어느 정도 해소된 셈입니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을 막아설 그 어떤 정치적 기획과 세력도 발붙이기 힘들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무엇보다 관심은 2030의 반란이 내년 대선에도 이어질까 하는 점입니다. 호랑이는 내년 3월 누구를 집어삼킬까요.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경거망동하고 오만방자한 쪽이 다음에도 호랑이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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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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