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자신의 비트코인 계좌를 좌중에 공개했습니다. 재미 삼아 하는 수준을 넘어선 투자 금액에 수익률도 100%를 훌쩍 넘긴 상태여서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이 친구는 자신이 ‘코린이’ 수준은 아니라며 자신이 공부했다는 가상화폐 철학을 신나게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세속적일 수밖에 없는 술자리에서 귀들이 쫑긋해지는 건 철학이 아닌 돈입니다. 이 친구는 현재 개당 6000만~7000만원을 오가는 비트코인 가격이 얼마까지 오를 것 같냐는 좌중의 집요한 물음에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수치를 제시하더군요.

이 친구가 앞으로 투자에 성공을 할지 못 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할 사람이 없어 보이는 50대들도 현실에서는 이미 코인판에 뛰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요즘 퇴직금을 들고 불나방 처럼 코인판에 뛰어드는 50·60대에 관한 기사들도 많이 나옵니다. 데이터 조각들이 모인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코인들의 시총이 초일류 기업들을 넘어서는 현실은 대부분의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말세 같은 사태지만 현실에서는 그 쓸모없어 보이는 코인들이 돈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규제를 만들어내는 한국의 공무원들이 코인판에는 손을 놓고 있는 걸 보면 공무원들이 머리를 굴리기 힘든 속도로 현실이 앞서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상화폐 예찬론자들은 중앙집권적인 기축통화를 부숴버리는 날을 꿈꿉니다. 탈중앙적인 블록체인 기술로 무장한 코인들이 각기 제 역할을 하는 평등한 통화 세계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어차피 금본위제가 없어진 세상에서 달러도 신용 하나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는데 코인들이 ‘우리끼리’ 신용을 구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현실에서는 벌써 중앙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금들이 흘러다니고 있습니다. 일부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월렛’이라고 불리는 전자지갑을 갖고 다닙니다. 딱 USB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하드웨어에 자신이 투자한 가상화폐 자산을 저장합니다. 세계 어떤 가상화폐거래소에 가든 이것만 있으면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하답니다. 중국의 갑부들이 ‘월렛’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통에 중국 정부가 골머리를 앓는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가상화폐 예찬론자들은 코인 가격이 왜 오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큰 손들을 끌어들입니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월가의 큰 손들이 비트코인을 매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비트코인의 가격을 말 한마디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일론 머스크도 이들 큰손들의 앞잡이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평등한 통화 세상을 꿈꾸는 이들도 결국 기존 체제에 코인의 앞날을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은 모순적입니다.

주간조선에 통화혁명 시리즈를 연재하는 홍익희 교수가 이번호에 쓴 주제는 로마제국 기축통화가 어떻게 무너졌느냐는 겁니다. 로마제국을 호령하던 데나리온도 인플레이션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사라져버렸습니다. 데나리온의 가치가 95% 떨어지는 데 200년이 걸렸지만 달러는 50년 만에 그 가치가 98% 이상 하락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합니다. 로마제국의 기축통화도 날려버린 인플레이션이 코로나 시대 세계를 다시 덮칠지 모른다는 뉴스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상이 진짜 불투명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요즘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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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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