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표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본업이 뭘까요. 정치가 본업 아니냐고, 맨날 TV에 나와 떠드는 정치평론이 생업 아니냐고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력서에 정당인, 방송인 대신 교육업체 경력부터 앞세웁니다. 그는 지난 2007년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이라는 교육 자원봉사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자녀 등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배나사의 설립자이자 대표교사가 이준석이 제일 앞세우는 현 직책입니다.

기사로도 꽤 알려진 배나사의 활동을 보면 영락없이 1980년대 야학과 닮았습니다. 대학생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이곳에서 처음 배움의 혜택을 누렸던 아이들이 벌써 대학생이 돼 다시 자원봉사자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서울과학고와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가 왜 이런 일에 뛰어들었을까요.

이준석의 과거 인터뷰를 보면 ‘사다리’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군요. “저는 딱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서울역에 아버지 직장이 있었는데, 거기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할 수 있는 곳 중에서 제일 싸게 집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이 상계동이었거든요. 그 정도의 가정환경에서 태어나도 공부 하나 잘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 그게 제가 대한민국에서 꼭 지켜내고 싶은 사다리입니다.”

그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발탁한 ‘박근혜 키즈’라는 별명이 따라붙지만 그의 정치 입문은 스스로 택한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입니다. ‘공부’라는 사다리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그것만으로는 꿈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어 정치가가 될 기회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런 철학을 가진 37세의 청년이 진짜 보수정당의 대표가 되는 일이 벌어지면 우리나라 보수주의가 어떤 방향으로든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준석의 정치 입문기는 이번호 커버스토리로 다룬 용산 젊은이들의 정치 입문기와 아주 흡사합니다. 그냥 평범한 이웃 젊은이들이 자기가 부딪힌 삶의 문제를 풀기 위해 동네 지구당을 찾았다가 정치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구의원을 목표로 뛰고 있는 민주당 4인방의 얘기지만 이들의 목소리에서는 기성정치인들에게서 풍기는 권력욕이나 상대에 대한 적의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상대 정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준석 돌풍’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하더군요. 자기 또래의 젊은이가 기성정치인과 대등한 구도를 만들어 제1야당 대표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성과라면서 말입니다.

나이 듦은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자산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많은 걸 가로막는 방해물이기도 합니다. 지난호 ‘런던통신’에 대처의 개혁을 다루면서 18년간 보수당에 정권을 빼앗겼던 노동당의 악전고투를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들은 보수당에 번번이 깨지면서도 사회주의 정당의 금과옥조인 ‘기간산업 국유화’를 명시한 당헌을 절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70~80대 의원이 득실득실한 노동당에서 이 ‘자살노트’가 사라진 것은 41살의 토니 블레어가 당수가 된 이후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젊음이 힘이 되는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지 주목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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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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