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창들끼리 모인 단톡방마다 시끌벅적했습니다. 50대의 현안으로 떠오른 백신 예약을 둘러싸고 ‘성공기’와 ‘좌절기’가 넘쳐나더군요. 백신 예약 하나로 친구들끼리 나눌 얘깃거리가 갑자기 넘쳐난 것은 이 난리통에 소득이라면 소득입니다. “아들이 아침부터 고생해서 백신 예약해줬다”는 자랑질부터 “자식 복이 없으면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는 푸념과 “우리는 줄서기와 선착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세대”라는 한탄에다 “예약 성공하려면 폰이 좋으냐 PC가 좋으냐”는 진지한 질문까지 단톡방에 불이 났습니다. 예약 첫날의 북새통이 지난 후 한 친구는 “정부가 공표한 정식 예약 시작 전부터 예약 사이트의 ‘뒷문’으로 접속해 성공한 사람들도 있다는데 백신 예약까지 이런 편법이 통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더군요.

결국 백신 예약에서 출발한 대화는 정부에 대한 성토로 끝나 버렸습니다. 평소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친구들도 “어떻게 일을 이렇게밖에 못하느냐”며 혀를 차더군요. 한 친구는 “백신이 모자라면 솔직하게 실상을 고백하고 59살부터 한 살 단위로 예약을 받으면 일이 더 쉬웠을 것 아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투였습니다.

이번 백신 예약 소동을 지켜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0대는 어떻게 예약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40대부터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부는 8월 말부터 18~49세의 연령대는 이렇다 할 구분 없이 그야말로 선착순으로 백신 예약을 받는다는 계획인데, 50대 예약 조기 마감의 학습효과로 초반에 예약자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입니다. 그럴 경우 온라인 선착순에 익숙한 20대가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권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40대가 이래저래 배신감을 느낄지 모릅니다.

이 모든 소동과 난맥상이 결국은 백신 부족 때문이고 이에 대한 책임에서 정부가 비껴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백신 확보가 급하지 않다”고 말하던 사람이 청와대 방역기획관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며 정부를 향해 더 울화통을 터뜨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연일 확진자 사상 최고치를 위협하는 현재의 비상상황에서 이 정부가 내세우던 K방역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자랑인지 겸손인지 ‘K방역은 국민들이 이룩한 것’이라는 점을 유달리 강조해왔는데 그 국민들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피로감을 호소하며 불만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은 “더 버티기 힘들다”며 심야 차량시위까지 벌였습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는 자영업자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가게 문을 닫아야 코로나19가 종식되느냐고 심각하게 묻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협조와 인내가 K방역의 핵심일 텐데 그것이 무너지고 있는 꼴입니다.

이런 상황을 틈타 그동안 모든 방역 통계는 다 정부의 조작이었다는 음모론도 다시 횡행하고 있습니다. 검사자 숫자를 늘리면 확진자가 늘어나는 게 당연한데 정부가 정치적 의도에서 확진자 숫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전문가들 중 이런 음모론에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4차 대유행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접종 대상자 중 2200만명이 9월에나 접종이 가능하다는 전망이 가리키듯 무엇보다 백신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는 지적입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라도 K방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근거 없는 낙관론과 자화자찬 습관부터 버려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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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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