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대표의 속은 타겠지만 더불어민주당 경선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경선 초기만 해도 ‘어후명(어차피 후보는 이재명)’으로 판이 정리될 줄 알았는데 역시 정치는 살아움직이는 생물인가 봅니다. 이재명 후보를 추격하는 이낙연 후보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싸움 구경만 한 구경이 없다고 두 사람이 연일 치고받는 말들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매일매일 뭔가가 터져나오면서 싸움의 양상과 소재들이 진해지고 있는데 이러다 진짜 뭔 일이 나는 것 아니냐는 스릴까지 줍니다. 최근 이낙연 후보 지지자가 이재명 후보의 ‘제2의 형수 욕설파일’을 공개하자 이재명 후보 측에서 “이낙연이 노무현 탄핵에 동조했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소재의 휘발성만으로 진단하면 두 사람 간의 싸움이 이미 레드라인에 다가선 것 같습니다.

지지율이 앞선 두 후보를 둘러싼 곁가지 싸움도 볼 만합니다.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드루킹 유죄 판결 후 난데없이 김두관 후보가 추미애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3번 자살골을 터뜨린 자살골 해트트릭 선수”라는 아픈 지적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고, 윤석열을 키워줬고, 드루킹을 고발해 친문 적자인 김경수를 날렸다는 것입니다. 추미애 후보는 “난 드루킹 수사 촉구만 했지 의뢰는 하지 않았다”고 혐의 자체를 부인하는 중인데 이재명 후보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분류돼온 두 후보가 치고받으면 경선 편 가르기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궁금해집니다.

정치적 무게에 비해 지지율이 영 바닥인 정세균 후보가 막판에 이낙연 후보와 단일화에 나설지 여부는 경선 클라이맥스를 찍을 만한 잠복 요소입니다. 이재명 후보 측에서는 두 사람이 막판 단일화에 성공하더라도 ‘야합’으로 비쳐 별 파괴력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 김빼기를 하는 반면 골수당원들이 결집하면 의외의 파괴력을 가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진지하게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경선은 나름 성공적입니다. 지난 원내대표 경선 때처럼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불분명한 김빠진 이벤트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후보 간 지지율이 요동치는 것도 당원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당이 쪼개지거나 경선 불복 같은 불상사만 없으면 세간의 주목 속에 대통령 후보가 탄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정당 대변인도 토론배틀로 뽑는 시절이지만 사실 대통령 후보 경선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경선이 아니라 최고권력자의 의중이나 밀실 담합이 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냈습니다.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했죠. 지금과 같은 대통령 후보 경선이 처음 치러진 것이 노무현 후보를 만들어낸 2002년 민주당 경선이었습니다. 당시 노풍의 진원지였던 광주 경선 현장을 취재하다가 노무현에게 한 표를 던지기 위해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노사모 회원을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노무현이 링컨”이라며 열변을 토하던 이 중년의 해외교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가 후보가 되든 ‘이 이벤트는 대박’이라는 예감을 가졌습니다.

길게 보면 우리 정당은 분명 진화하고 있습니다. 다 죽은 줄 알았던 국민의힘도 30대 대표를 만들어내며 생기가 도는 걸 보면 정당의 자생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민주당 경선이 막을 내리면 이제 다음 차례는 국민의힘입니다. 흥행이 성공 못 한 경선에서 주목받는 대통령 후보가 나올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번 대선이 양당 구조를 고착화하고 정당의 뿌리를 키우는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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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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