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를 졸업한 A씨는 졸업 후 다음 스텝으로 미국 로스쿨을 목표로 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자신의 길이 맞나 확인하기 위해 로펌, 회계사무소 등에서 몇 개월간 인턴을 했습니다. 결론은 “내 길이 아니다”였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스타트업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스펙을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6개월 동안 개발자 공부를 해서 작은 스타트업에 취업했습니다.

한 관광고등학교를 졸업한 B씨. 고교 졸업 후 호텔에서 일하다 푸드 스타트업을 시작으로 스타트업 몇 곳을 거치면서 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개발이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개발자를 키우는 학원에 가서 어렵게 개발을 배운 후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가 일을 배우고 또 회사를 옮기면서 몸값을 올렸습니다. 최근 그는 병역특례지만 고액 연봉을 받고 핀테크 기업인 토스에 입사했습니다. 그의 나이는 이제 25세입니다.

두 사례처럼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과 미래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기업보다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민·당근마켓·토스)라고 하죠. 요즘 인재들이 몰리는 스타트업 동네에서는 과거의 공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스타트업 인재 매칭을 하는 조인스타트업 장영화 대표는 그 변화를 매일 목격한다고 합니다. 대기업 직원들이 스타트업 이직을 꿈꾸고 대기업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단련된 인재를 찾습니다. 내로라하는 기업에 다니는 1~4년 차들이 탈(脫) 대기업을 꿈꾸면서 그에게 구호요청을 해온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 대학을 가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기까지는 꾹 참았지만 더 이상 관성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넣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뒤늦게 내가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도 겪습니다. 장 대표는 “우리 교육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을 개척할 만한 여유와 맷집을 키워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더 이상 입시 경주마가 아닌 야생마를 원합니다. 공채도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채용 조건에 대학 졸업장 대신 ‘애니팡 등 게임 고득점자’ ‘좋아하는 일에 미쳐본 사람’을 내거는 시대입니다. 미래교육에 대해 더 깊숙한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연 우리 교육 현장은 어떨까요.

얼마 전 안산동산고의 자사고 지정취소는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이로써 해당 교육청으로부터 자사고 지정취소를 받은 전국 10개 학교 모두 승소를 했습니다. 교육청으로서는 10전10패입니다. 자사고 폐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전패’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조윤정 기자가 판결문을 모두 구해 들여다봤습니다. 자사고 폐지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을 받들기 위해 밀어붙인 교육청의 ‘눈물겨운’ 노력이 판결문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절차상의 위법도 문제지만 새롭게 바꾼 교육청의 평가기준들을 보고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학부모 동아리 공간, 지역주민 대상 프로그램 부족과 교실 꾸미기 예산 연 5만~10만원 작은 것이 자사고 존재 이유를 결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인지 모르겠습니다. 판결문은 속전속결로 자사고 고사작전에 나선 교육청의 일탈과 남용을 조목조목 짚어놓았습니다. 일반고의 황폐화 원인으로 자사고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정치를 걷어내고 보면 교육의 본질인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잘 보이지 않을까요.

정장열 편집장 휴가로 대신 인사드립니다. 무더위에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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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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