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보니 적군이 거짓말처럼 물러가 있었다.’ 소설의 이런 대목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도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를 지켜보면서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매일 2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쏟아져나오는 지금의 우리 상황에서는 진짜 소설 같은 얘기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말입니다.

열쇠는 지금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바이러스의 변이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변이 메커니즘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뜻밖에 무력한 존재로 바꿔버릴 수도 있고, 거꾸로 가공할 위력의 더 무서운 괴물 바이러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실 바이러스에 변이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무생물에 가깝지만 숙주 세포만 있으면 생물 흉내를 내며 진화합니다. 단백질과 핵산(DNA나 RNA와 같은 유전물질)으로만 이루어진 바이러스는 세포 속으로 침투한 후 숙주 세포의 유전자 복제와 단백질 합성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무수히 증식해 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표면에 있는 스파이크가 숙주 세포 표면의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세포에 침투해 RNA를 복제합니다. 이 과정에서 스파이크의 유전자 등이 잦은 오류로 변이돼 재조립된 바이러스 역시 이전과는 다른 변이 형태로 배출되는 겁니다. 유전물질이 DNA처럼 두 가닥 이중나선 형태로 이뤄져 있으면 안정화돼 변이가 잘 일어나지 않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한 가닥의 RNA만 있기 때문에 변이가 쉽게 일어납니다. 바이러스 유전자의 변이 속도가 일반 생물보다 무려 50만배가 빠르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지금 우세종이 돼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는 이전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훨씬 전파력이 높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치명률을 눈여겨보면서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델타 변이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치명률은 확실히 전보다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세계적으로는 작년 5월 7.2%까지 올라갔던 (누적) 치명률이 이제는 2.2%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2%를 넘었다가 이제는 0.99%로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백신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가 순화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의 변이는 무작위적인 방향으로 종잡을 수 없게 이뤄지지만 독성이 너무 강한 바이러스는 숙주 자체를 파괴해 전파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지금의 델타 바이러스 또한 변이를 일으키면 더 순한 놈으로도, 더 독한 놈으로도 바뀔 수 있습니다.

물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미에서 번지고 있는 람다 바이러스는 델타보다 더 치명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호 조윤정 기자가 인터뷰한 영국의 보건전문가 마틴 맥키 교수는 아예 ‘집단 면역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경우 이미 코로나19에 걸렸던 사람과 백신 접종자를 합하면 항체를 가진 사람이 90% 이상인데도 집단면역은 어렵다는 겁니다. 그 역시 “코로나19가 결코 독감처럼 토착화할 수 없는 이유는 변이”라며 “미래의 돌연변이가 또 생길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그래도 당장 최선의 답은 신속한 백신 접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조언인데 우리는 백신도 부족해 답답하기만 합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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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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