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곽승한 기자는 그동안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의원에 대한 기사를 여러 차례 썼습니다. 기사 건수를 세어보니 작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20건에 육박합니다. 그야말로 ‘집요하게’ 취재해온 셈입니다.

제 경험에 비춰 보면 기자들이 특정 사안을 파헤치는 이유는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나 악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호기심이고, 경우에 따라 약간의 정의감이 더해집니다. 곽 기자의 경우는 일자리를 잃은 이스타항공 직원들과의 만남이 시작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곽 기자의 기사에는 한 달에 20만원으로 다섯 식구가 버티는 이스타항공 직원이 등장합니다. 그는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사주지도 못한다”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데 오너 일가는 건재했습니다. 250억원의 체불임금을 책임져야 할 이상직 의원은 여전히 힘센 여당 의원이었고, 회사가 팔리면 오히려 오너 일가는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곽 기자는 이상직 의원의 그 ‘건재함’ 뒤에 가려져 있던 미심쩍은 사실들을 많이 찾아냈습니다. 문 대통령의 사위가 취업했던 타이이스타젯이 항공기를 리스할 때 이스타항공이 보증을 서줬고, 이스타항공이 태국의 티켓총판회사에 받아야 할 외상매출금 71억원을 타이이스타젯 설립에 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단독 기사에 담긴 이런 사실들로 인해 ‘대통령 사위가 취업했던 회사와 이스타항공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이상직 의원과 여권의 주장은 결정적으로 무너졌습니다.

곽 기자의 취재는 이상직 의원이 구속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대통령 사위가 취업한 회사의 ‘실소유주’가 이상직이었다는 사실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사실들을 계속 캤습니다. 그런 노력 끝에 타이이스타젯의 자산 70억여원 중 51억원이 사용처가 불분명하게 사라진 사실을 밝혀냈고, 대통령 사위가 타이이스타젯에 잠시 몸담았던 말단 직원이 아니라 최소 4개월간 전무급으로 일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곽 기자의 취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어쩌면 앞으로는 발품을 판 기사를 보여드릴 기회가 점점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8월 25일 새벽 여당이 국회 법사위에서 통과시킨 새 언론중재법에는 ‘열람차단청구권’이란 게 있습니다. 열람차단을 청구해 받아들여지면 기사를 써도 인터넷신문이나 포털에서는 읽을 수 없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음 논의할 때 가장 앞장선 사람이 이상직 의원이었다는데 왜 그랬을지 짐작이 갑니다. 이번호에 인터뷰를 한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도 “올 2월 (언론중재법) 논의 당시 도입 찬성 목소리를 높인 건 이스타항공 비리로 논란을 산 이상직 의원뿐이었다”며 “6개월 만에 급작스레 당의 스탠스가 뒤바뀐 셈이다”라고 지적하더군요.

새 언론중재법이 효력을 발휘하면 기자들의 손과 발에는 어떤 형태로든 족쇄가 채워집니다. 잘못된 보도로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만 하면 언론사가 피해를 줄 의도나 중과실이 없었다고 입증해야 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압력 앞에서 취재원 보호는 점점 어려워지고 내부 제보는 사라질 겁니다. 누군가는 웃겠지만 결국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기사를 출고하는 제 머리 한편도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이 늘 짓누를 겁니다. 그렇다고 젊은 후배들의 호기심과 정의감을 억누르기에는 기자로서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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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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