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를 뜻하는 새로운 한자를 만든다면 어떤 모양일지 좀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표의문자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다면 아마 두 개의 사람 인(人) 자 사이를 세로 획이 가로막는 모양이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가로막는 게 코로나가 우리에게 안기는 최대의 징벌이라는 깨우침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이리저리 바뀌면서 사적모임 허용 인원이 2명에서 4명, 4명에서 6명으로 바뀔 때마다 사람을 만나 밥을 같이 먹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왔는데 내용이 기가 막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철통 봉쇄 조치로 아파트 단지 바깥 출입을 못 한 지 6개월이 돼간다는 겁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아파트 단지 안 마트에 가는 정도만 허락된다는데, 그 오랜 갑갑함을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이 친구도 “사람을 못 만나니 도인이 된 느낌”이라면서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교민들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힘들다고 합니다. 이 친구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다 보니 교민사회 자체도 와해 직전이라는 겁니다.

2013년 개봉된 ‘고령화 가족’이라는 영화를 최근에야 봤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문제 투성이인 그야말로 ‘콩가루’ 집안 얘기인데, 형제들끼리 밥상머리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면서도 꾸역꾸역 밥을 먹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밥 먹는 장면은 ‘가족의 완성은 식구(食口)’라는 말을 상기시킵니다. 밥을 같이 먹어야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된다는 뜻일 텐데 매일 함께 밥 먹는 일의 위대함을 일깨웁니다. 영화 속 조폭 출신 장남의 자살 시도를 가로막은 것도 결국 ‘밥 먹으러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 목소리였습니다.

함께 밥 먹는 것의 위대함을 일깨우는 영화는 또 있습니다. 일본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가끔 ‘인생 영화’로 꼽히는 애니메이션 ‘썸머 워즈’가 그렇습니다. 가상세계 OZ를 둘러싼 어느 대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격인 사카에 할머니가 유언으로 이런 말을 남깁니다. “만약 힘들 때나 괴로울 때가 있어도 변함없이 가족 모두 모여서 밥을 먹거라.”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은 배가 고픈 것과 혼자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가족들은 할머니의 유언대로 모여서 밥을 먹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평범한 속에 깃든 위대함’이 뭔지 새삼 와닿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코로나 사태는 이 평범함을 가로막습니다. 나이 든 부모님을 찾아뵈어도 싸갖고 간 음식만 밀어넣고 후다닥 집을 나서는 경우가 흔합니다. 코로나가 식구가 되는 것을 훼방 놓으면서 평범하고 익숙한 풍경들이 자꾸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번호 조정육 박사가 쓴 글에도 이런 사라지는 평범한 풍경에 대한 애틋함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조 박사는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노래하듯 말씀하신 “사람 집에 사람 올 때가 좋은 법이다”라는 의미를 코로나 사태로 외부와 단절된 시간을 보낸 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썼습니다. 조 박사가 글에서 소개한 화가 배운성의 ‘가족도’는 너무나 익숙했던 우리의 모습이지만 어딘지 낯설게 보여 자꾸 눈길이 갑니다.

이번 추석 명절은 이 평범함과 익숙함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가족들이 모여 식구가 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코로나를 이기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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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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