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마감일은 나름 의미 있는 날로 기록될 듯합니다. 10월 21일이 마침 노벨상을 만든 스웨덴의 화학자 노벨의 생일인데, 이날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로 날아갔습니다. 우주를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한국을 노벨이 축하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이날 누리호가 30%도 안 된다는 확률을 뚫고 발사에 성공할지 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습니다. 누리호의 전신인 나로호의 실패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선해서 더 그랬습니다. 2010년 6월 나로호가 이륙 약 137초 만에 폭발하면서 2차 발사도 실패로 끝나자 당시 발사 책임자들한테 온갖 비난이 쏟아졌던 걸 기억합니다. ‘한·러 공동개발은 빛 좋은 개살구였다’ ‘5000억원만 까먹었다’ ‘왜 그렇게 발사를 서둘렀나’…. 심지어 ‘러시아와 추진체 공동개발 협상을 벌였던 노무현 정부와 실제 로켓을 발사한 이명박 정부 중 어느 쪽 책임이 더 큰가’라는 갑론을박까지 벌어졌었습니다.

이후 2013년 1월 나로호가 세 번째 시도 만에 발사에 성공하면서 원성과 비난이 가라앉자 우리 기술진이 나로호 개발 현장에서 벌인 악전고투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졌습니다. ‘고흥 나로우주센터는 지난 10년간 한국과 러시아의 첩보 전쟁터였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현장에서는 발사체 기술에 다가서려는 한국과 이를 막으려는 러시아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러시아 측은 보안요원까지 데려와 자국의 엔지니어들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자들과 접촉하는 걸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는데, 이게 그렇게 성공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로호 공동개발에 착수할 때만 해도 액체 로켓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하나도 없을 만큼 초보 수준이었던 한국이 공동개발을 마친 후에는 ‘우리가 수십 년간 쌓아온 로켓 지식을 다 확보했다’는 한탄을 러시아가 할 만큼 우뚝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이 만들어낸 로켓 기술은 그동안 우주 강대국 클럽의 초청장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자국 기술로 만들어낸 로켓 발사에 성공한 나라들끼리 동맹을 맺고 다른 나라들은 여기에 끼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발사체 기술과 성과가 있어야 이들의 채팅방에 얼굴이나마 들이밀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위성을 하나 쏘더라도 남의 손에 의지해서 쏘는 것과 우리 기술로 쏘는 것과는 천양지차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일 텐데, 우리가 국산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쏘기까지 30년의 세월이 걸린 것도 이런 발사체 기술의 폐쇄성 때문일 겁니다. 누리호의 경우도 로켓 냉각시설에 필요한 합금과 연소기 헤드에 들어가는 고강도 스틸 등은 수입이 안 돼 전부 우리 기술로 국내에서 직접 제작해야 했다고 합니다. 94.1%라는 누리호의 국산화율이 그야말로 주어진 한계 속에서 고난의 행군 끝에 얻어낸 수치라는 얘기입니다. 누리호만 따지면 11년7개월의 시간과 2조원의 돈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37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누리호가 우주 길을 열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의 우주 선진국이 됐습니다. 자국 기술로 만든 발사체로 우주에 실용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는 나라가 전 세계에 7개국밖에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대선 전쟁을 벌이는 정치권에서는 너도나도 ‘나라를 살리겠다’는 말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나라를 살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리호를 쏘아올리는 데 기여한 모든 분들께 찬사를 보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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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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