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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7호] 202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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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주역 3개의 괘에 대권이 보인다

이지형  주역연구가·‘강호인문학’ 저자  2021-12-13 오후 3:54:14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photo 뉴시스
주역(周易)에는 혁명의 추억이 담겨 있다. 춘추전국 이전, 고대 중국의 은·주 교체기에 주나라 창건 세력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과 고심이 고스란하다. 주역은 일부 신봉자들이 떠들어대듯 희대의 예언서나 마음공부의 책이 아니다. 신비의 경전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피의 흔적과 냄새가 행간에 진하게 밴, 왕조교체 시국의 르포에 갈음한다. 직설적 언어 대신 암호를 표면에 둘렀지만, 저널의 성격도 띤다. 바람 찬 연말, 고대의 비급(祕笈)을 화두로 꺼내드는 건 저널·르포로서의 주역에 내재한 특유의 ‘왕조교체’ 분석 틀 때문이다.
   
   
   “꽃잎을 포갠 듯…” 차이 없는 지지율
   
   대선이 90일 남았다. ‘D-90’이라는 기호는 대선 당사자들에게 절박의 시그널이다. 대선 캠프의 마음가짐은 긴박하다. 그러나 멀리서 유력 주자들의 바쁜 행보를 관조하듯 쳐다보는 동안 서정적 풍경 하나가 홀연히 떠오른다. 바람 잔잔한 날 두 장의 꽃잎이 살포시 포개지는 모습….
   
   한 정치평론가는 “붙어 있는 정도를 넘어 찰싹 달라붙었다”고 표현했다. 윤석열·이재명 두 유력 대선후보의 지지율 얘기다. 한때는 엎치락뒤치락, 오차율 범위 안에서 요동치는 흉내라도 내더니 12월 이후 두 사람의 지지율 그래프는 옴짝 달라붙었다.
   
   선거에 임박하면 모든 초점이 후보들에게 맞추어지고, 다른 것들은 페이드아웃(fade-out)된다. 이번엔 반대다. 두 유력 후보는 프레임의 중심에 서려고 안간힘이지만, 카메라는 자꾸 아웃포커싱(out focusing)을 시도한다. 초점이 맞춰져 선명한 외곽엔 두 후보가 없다. 정권교체와 정권유지의 구호만 남는다.
   
   12월 초 공개된 여론조사 하나를 살펴보니,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30% 대 중반에서 엇비슷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포함한 4자 대결을 상정할 경우다. 두 유력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그야말로 꽃잎처럼 포개졌다. 찰싹 붙었다. 그런데 정권교체 또는 정권유지에 대한 기대는 격차를 보인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교체하잔 쪽이다. 이 지점에서 왕조교체, 요즘 식으로 말하면 정권교체에 대해 할 말이 많을 주역을 소환해야 한다.
   
   
   “하늘과 땅은 뒤집히고 만다”
   
   주역은 64괘를 펼쳐가는 중에 문득, 하늘과 땅의 위치를 문제 삼는다. 문제 삼을 게 뭐 있을까. 하늘은 머리 위에서 늘 강건하고, 땅은 발 아래로 유장하다. 창을 열면 하늘과 땅이 제 위치를 지킨 채로 굳건하다. 보이는 대로 아닌가. 위아래, 천(天)-지(地)의 순서는 정상이고, 지-천의 순서는 비정상이다.
   
   주역은 허(虛)를 찌른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친다. 지-천을 태(泰)로 풀고, 천-지를 비(否)로 푼다. 주역 64괘 중 각각 11번째, 12번째 괘다. ‘태’는 평안, ‘비’는 막힘이다. 정상인 줄 알았던 천-지를, 배반하는 형국으로 규정한다. 꽉 막힌 상황 또는 파국으로 자리매김한다. 비정상일 줄 알았던 지-천에 영속과 평안의 속성을 부여한다. 하늘과 땅이 뒤집어져야 세상이 제대로 흐른다.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앞서 혁명의 추억을 얘기했다. 주역은 불온한 책이다. 태생적으로 왕조교체를 꿈꾸던 책이다. 고대에 왕조의 교체는 하늘과 땅이 뒤바뀔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주역의 편집자는 아래 깔려 있던 땅을 위로 올리고, 위에 군림하던 하늘을 아래로 끌어내려야 성이 풀린다. 그들은 전복(顚覆)을 꿈꾸었다. 전복이 일상이면 혼란이지만, 시의적절할 땐 쇄신이다. 세상은 정기적 쇄신을 통해서만 제 갈 길을 낸다. 괘 속으로 좀 더 파고들자.
   
   
   멀리 있는 무리를 챙겨야 집권?
   
   민심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중이니 ‘지천태’의 괘부터 살펴도 비난받을 일은 아니겠다. 태 괘는 하늘과 땅의 순환을 이끌어낼 리더의 자질을 설파한다. 이런 해설이 딸린다. ‘황량한 변방을 품는다, 맨몸으로 황하를 건넌다, 멀리 있는 것을 버리지 않는다, 가까운 패거리를 잊는다….’ 느낌이 온다. 통상적 리더의 일상적 리더십으론 변화가 없다. 내 편, 측근 그룹을 탈피해 외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진영도 무시해야 한다. 멀리 있는 세력을 내 품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정권교체 열망의 선두에 선 윤석열 후보는 주역의 지침을 따르고 있나. 기존의 보수 세력을 넘어 멀리 있던 중도를, 전통의 지지 기반이던 중장년을 넘어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는가.
   
   주역은 희한한 책이다. 지천태의 괘는 다른 괘들처럼 6개의 음양 막대로 이뤄진다. 위로 음의 막대가 3개 뭉쳐 땅을 상징하고, 아래로 양의 막대가 3개 뭉쳐 하늘을 상징한다. 주역의 편집자들은 6개 막대 중 제일 아래 자리한 양의 막대에 기묘한 설명을 붙였다. ‘잔뿌리를 뽑으니 무리와 엉켜 있다, 정벌하면 길하다….’ 훗날 주역의 해설자들은 정벌을 주도할 ‘무리’로, 괘의 아래쪽에 있는 3개의 막대를 지목한다. 정치 현실에 대입하면 야권의 대선 전략을 주도하게 될 3인방쯤 되겠다. 2021년 12월 현재, 국민의힘 대선후보, 총괄선대위원장, 당대표로 엮인 윤석열·김종인·이준석 3인을 예고했나.
   
   하늘은 하늘의 자리에, 땅은 땅의 자리에 두며 ‘정권유지’를 상징하는 ‘천지비’의 괘는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큰 것은 가고, 작은 것이 온다”는 해설이 먼저 등장한다. 여권의 대세이던 친문(親文) 대신 소수파였던 이재명 후보가 대선주자로 나섰으니 주역의 최소 지침을 지킨 걸까. 괘는 아울러 “소인은 길하고 대인은 막힌다”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의미를 알기 어려운 해설 하나가 추가된다. ‘포수(包羞), 부끄러움을 품는다….’
   
   그런데 정권교체 쪽의 지천태 괘에도 비슷한 용어가 등장한다. ‘포황(包荒), 황량함을 품는다….’ 정권교체 쪽(지천태)의 ‘포황’과 정권유지 쪽(천지비)의 ‘포수’를 궁구할 필요가 있겠다. 윤석열 후보도, 이재명 후보도 품어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품어야 할 대상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윤석열에게 쏟아진 ‘의혹’들은 거칠고 황량한 것들이다. 공수처의 가족 수사, 검찰권 남용에 대한 수사는 그야말로 거친 것들(荒)에 해당한다. 욕설과 염문, 대장동 사태와의 연관 추정은 부끄러운 것들(羞)이다. 두 사람은 ‘포황’과 ‘포수’의 지침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
   
   이승만과 신익희가 맞붙었던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구호는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다. 여권은 “갈아봤자 별수 없다”로 응대했다. 정권교체와 정권유지의 열망을 탁월하게 요약한 정치 카피들이다. 광복 이후 오랫동안 우리 정치는 ‘정권유지’로 기울었고, 그때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버전을 달리하며 등장했다. 1971년 야권 대선후보로 나선 김대중 쪽 캠프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살겠다 갈아보자”고 했다.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고도 외쳤다. 정권을 유지하려던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고 배수진을 쳤다. “갈아보자”는 카피는 무력했고, 결과는 늘 “갈아봤자…”로 기울었다. 한국 정치를 보수·진보로 구분할 때 보수에서 진보로의 실질적 ‘정권교체’는 1997년에야 이뤄졌다.
   
   정권교체는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 모르겠다. 대선 길목에선 온갖 변수가 돌출한다. 북한이 판문점에서 소동을 일으키고, 국적기가 추락한다. 야권의 대선주자가 선거 한 달 전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어느 선거에선 투표 전날 심야에 유력 조력자의 동맹 파기 선언이 나오기도 한다. 투표가 시작하는 이른 아침까지 상황은 예측 불허다. 선거가 시작되고 나면, 정치는 생물(生物)이 아니라 신물(神物)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혼란 속에서 정권교체 또는 정권유지를 꿈꾸는 비룡(飛龍)들은 자신들의 야망과 노력을 어디에 위탁해야 하나.
   
   
▲ 주역을 만든 주나라 문왕. photo 위키피디아

   ‘잠룡’ 2030세대의 진격
   
   정치 판도를 좌우하는 대세(大勢)란 게 있다. 한동안은 냉전이란 세계 정세가 우리 정치를 압도했고, 또 한동안은 군부(軍部)가 정치를 장악했다. 이후 한참 영·호남으로 구분되는 ‘지역’이 정치를 흔들었고, 뒤이어 영남 후보와 호남 민심의 결합이 대세로서 대선판을 이끌었다.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는 거대한 물결의 틈새에서 하나의 명분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그럼 이번 선거의 대세는 무얼까. 주역의 관점에서라면 ‘멀리 있는 무리’를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지천태의 괘가 웅변하지 않았나.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고, 멀리 있는 것들을 껴안으라고. 멀리 있는 무리, 그들은 수십 년간 우리 정치판의 잠룡(潛龍)으로만 암약하던 2030 또는 MZ세대일 수 있겠다. 냉전, 군부, 호남,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처음으로 세대가 강력한 핵으로 떠올랐다. 최근 정치판의 변화만 살펴도 그들의 약진은 명확하다. 그들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오세훈을 당선시켰고, 30대의 정치인을 제1야당의 대표로 옹립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경제적 추락, 조국 사태로 인한 심리적 추락이 그들의 출현을 촉발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한 세대의 부상(浮上)이랄까, 잠룡 그룹의 전격적 비상(飛上)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추락과 궤를 같이한다. 사회를 이끌 중추 세력에 공백이 생겼고, 2030이 그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대세의 형성은 역사적이다.
   
   
   20대 대통령은 ‘과도기적 대통령’?
   
   경제도 정치도 마케팅이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시장을 정의하는 일은 중요하다. 2022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2030세대의 약진과 관련, ‘시장’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새롭고 강력한 유권자 그룹이 등장했다는 정도로는 시장을 포착하지 못한다. 2030세대를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군(群)으로 봐야 시장이 보인다. 핀란드 총리는 30대 여성이다. 프랑스의 마크롱도 39세에 대통령이 됐다. 구설 끝에 사퇴했지만,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제바스티안 쿠르츠가 총리에 오를 때 나이가 31세다.
   
   명실상부, 글로벌한 시대에 금리, 주가 같은 경제적 고리들만 연동되는 건 아니다. 정치도 전염되고 감염된다. 그런 맥락에서 핵심은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과도기적 대통령’이 될 거란 사실이다. 심상정·안철수·김동연 후보를 제쳐 두어 미안하지만, 윤·이 두 사람 중 내년 3월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이 선출되고 나면 정치의 중심은 급속하게 20대, 30대로 옮겨갈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지천태 괘가 주목한 야권 3인방 중 핵심은 윤석열, 김종인이 아니라 이준석이 되기 쉽다. 2030을 자신의 새로운 지지세력 정도로 봐선 해답이 안 나온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2030을 새로운 집권세력으로, 차세대 지도자 그룹으로 정의하는 사람이 대선 정국을 주도한다.
   
   각설하자. 어쩌다 보니 주역을 잊고 정치에 몰두했다. 다만 시대의 변화가 얼마나 전격적인지 한마디는 하고 넘어가야겠다. 1969년, 7대 대통령 선거를 1년여 앞두고 당시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이 대권 도전을 선언할 때가 42세였다. 직후, 역시 40대인 김대중, 이철승도 대권 경쟁을 선포했다. 40대 기수론의 갑작스러운 돌발에 야당 실력자 유진산의 반응이 뭐였나. 구상유취(口尙乳臭)였다. 40대들은 너무 어려 젖비린내 난다는 얘기였다. 이후 사라진 건 진산의 세대였다. 정치판의 세대교체는 그렇게 벼락처럼 온다.
   
   
   스며들고 물들여야 한다
   
   구세대에 대한 경고는 이 정도만 해두자. 다시 이번 대선으로, 동시에 주역의 세계로 돌아와 여야의 두 유력 후보들에게서 여전히 멀리 있는 2030을 끌어안을 비책을 알아볼 차례다. ‘시장’을 조망하며 관측한 대로 이재명 후보든, 윤석열 후보든 2030을 잡지 못하면 끝이다. 정권유지도, 정권교체도 멀리 있는 2030의 포용 여부에 달렸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3개의 주역 괘를 혼돈의 정치판에 선사하고자 한다. 먼저 지수사(地水師)의 괘. 64괘 중 리더십과 관련 깊은 괘다. 마른 땅(地) 사이로 가는 물줄기들(水)이 모세혈관처럼 흐른다. 리더십의 관건은 스며드는 것이다. ‘윤며들다’란 표현이 화제였다. 오스카 수상 배우 윤여정 얘기다. 윤여정의 매력에 빠진다, 스며든다는 뜻이다. 대선후보들도 바라보지만 말고, 젊은이들에게 스며들어야 한다.
   
   풍산점(風山漸)의 괘도 주목할 만하다. 붉은 바람(風)이 산(山)을 천천히(漸) 물들인다. 늦가을, 단풍 진 산의 풍경을 포착한 괘다. 젊은이들에게 다가가려면 그들을 물들여야 한다. 괜한 수사(修辭)로는 겉돌 뿐이다. 마지막으로 뇌수해(雷水解) 괘를 봐야 한다. 해(解)는 풀린다는 뜻이다. 초봄, 우레(雷)가 진동하고 비(水)가 내리면서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는다. 그런데 뇌수해 괘에는 의미심장한 문장 하나가 등장한다. 나이 어린 사람(小人)에게 진심을 내보인다(有孚)…. 어떤 후보가 젊은이들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있는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뒤집기도
   
   물은 배를 띄우기도, 뒤집기도 한다. 한국 정치의 핵으로 급부상한 2030세대는 이재명, 윤석열 두 사람 중 과연 누구를 띄울까 혹은 뒤엎을까. 남은 석 달간의 관전 포인트는 그러니까, 부력(浮力)의 작용 방식이겠다. 광복 이후 처음으로 거대한 물줄기를 이룬 젊은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협잡·공작의 돌발 변수들을 잠재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할까.
   
   옛날 걸출한 선승이 글을 읽다 한마디 했다. 법화경에 굴리지 말고, 법화경을 굴리라고. 필자가 원고 청탁을 받고 며칠, 이리저리 주역을 굴리며 궁리한 끝에 얻은 답은, 아무래도 2030들이 무언가 뒤엎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특정 후보를 뒤엎을까, 정권을 뒤엎을까. 그걸 알기 위해선 좌절하고 분노한 거리의 젊은이들에게 스며들고 물드는 방법밖엔 없겠다. 하늘·땅의 자리가 한 번쯤 바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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