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주변에서 ‘당선 후’를 상정한 얘기가 솔솔 나오나 봅니다. “큰 실수만 안 하면 정권 탈환을 확신한다”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말처럼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아니면 자신감을 북돋우려는 일종의 부스터샷 전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진짜로 ‘당선 후’를 떠올려보면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정권을 되찾아온들 대통령이 106석의 여당으로 169석의 거대 야당에 맞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뾰족한 해법이 잘 떠오르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국민의힘 안팎에선 벌써부터 협치니 거대 여당이니 하는 담론들이 무성합니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부터 일종의 거국내각을 입에 올리더군요. 김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홀로 모든 걸 독식해야 한다는 사고를 버리고 협치 내지는 통합적인 사고방식으로 다양한 사람을 굉장히 다방면에서 골라 써야 한다”며 “민주통합정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하던 협치를 헌신짝처럼 차버린 결과 지금의 갈등을 몰고 왔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더군요. 정권을 잡은 후 나라를 통합하고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야당과 손을 잡든지, 야당 세력 일부를 흡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용주의’에 대한 비판도 제기됩니다. 보수당에 표를 던졌지 정체불명의 ‘짬뽕당’에 표를 던진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보수 노선을 확실하게 하고 보수당을 지지해온 유권자들을 향해 제대로 책임정치를 하라는 주문이기도 합니다. 교과서적으로 보면 협치는 짬뽕과 정치공학이 아닌 운용의 묘에서 찾아야 할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에게 여소야대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3대 이후부터 따져보면 13대부터 16대까지 모든 총선에서 여당은 과반 확보에 실패했습니다. 여당이 과반을 확보한 건 노무현 탄핵 열풍이 불던 17대 총선이 처음이었습니다. 이후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공천 파동을 겪으며 다시 야당에 과반을 넘겨줬습니다. 21대 총선의 여당 압승을 포함해도 13대 이후 여소야대가 5 대 4로 우위입니다.

여당에 과반 의석을 몰아준다고 과연 일을 잘했느냐는 반론도 나올 법합니다. 지금의 21대 국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K방역의 위기와 부동산 대란 등 국정 난맥상을 앞에 두고 진보층은 진보층대로, 보수층은 보수층대로 거대 여당을 향해 불만과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높은 법안 생산성을 보이고 일을 제대로 한 건 오히려 여소야대 국회였다는 학자들의 연구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헌정 사상 첫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입니다.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김윤환 원내총무와 야3당 파트너인김원기(평민당)·최형우(통일민주당)·김용채(신민주공화당) 총무 등이 협상력을 발휘하고 국회 운영의 묘를 살린 덕분에 청문회 도입, 의료보험 확대 등 굵직한 성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로 보내고 5·18민주화운동 진압 책임을 물어 민정당 실세 정호용 의원의 사퇴를 이끌어낸 것도 여야 막후 타협을 통해서였다는데, 지금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내년 3월 전쟁 같은 대선을 치르고 나서도 이런 협치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우리 정치의 복원력을 꿈꿔봅니다.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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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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