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세상이 흥미진진한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밥만 먹고 나면 집 밖으로 뛰쳐나갈 이유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옆집 강아지 출산은 반드시 기웃거려야 할 대형 이벤트였고, 친구들이 아직 발견 못 한 개미집은 매일 가서 살펴야 할 보물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의 다툼과 화해를 겪을 때마다 세상도 자꾸 달라져 보였습니다. 특히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뭔가 더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아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달력의 숫자 몇 개가 바뀌었을 뿐인데도 말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코가 쨍하게 시린 혹한의 세상으로 뛰쳐나가 뭔가 달라진 세상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총천연색이던 바깥세상이 점점 흑백톤으로 변해갔습니다. 세상은 무미건조해졌고, 모든 걸 알아버린 듯한 바깥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자꾸 줄어들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어릴 적 감흥이 되살아나지 않은 지 오래됐습니다. 이런 나이듦의 태도가 저만의 것은 아니겠지만 무덤덤한 새해가 늘 반복되면서 세상은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고여만 갔습니다.

이번주 신년호를 만들면서 저의 이런 생각을 부수는 작은 충격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문어 때문입니다. 김형자 선생이 쓴 과학 기사의 문어 얘기는 세상이 여전히 흥미롭고 새로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한 회사가 문어 양식에 성공하면서 논란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지각 있는 생물’인 문어를 가둬 키우는 것이 학대 행위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합니다. 문어가 똑똑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300여건의 과학적 연구를 통해 ‘지각 있는 생물’로 결론났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진 문어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알아보고 포유동물만의 특권인 장난도 칠 줄 안다고 합니다. 뭔가 한번 기억하면 기억력이 다섯 달은 간다는데, 이런 정교한 신경계를 가진 동물을 좁은 양식장에서 키우는 것이 학대가 아니냐는 겁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몇몇 나라들의 반응입니다. 영국은 2021년 5월 발의한 동물복지법에 문어 등 무척추동물도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미 스위스에서는 문어나 바닷가재를 삶아서 죽이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제사상 음식이나 술자리 안주 정도로 여겼던 문어가 세상을 새롭게 가르는 잣대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무슨 호들갑이냐고 난리를 칠 사람들도 분명 있을 듯하지만 세상은 문어의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저만 무덤덤했지 세상은 여전히 바뀌어가고 있나 봅니다.

이번호 신년인터뷰에서 옥스퍼드대 존 타시올라스 교수는 세상의 변화를 분명하게 얘기합니다. AI 세상의 윤리를 연구하는 이 교수는 “인류의 행복과 번영에 관한 문제를 AI, 빅데이터가 관여하기 시작했다”며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인류의 규범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결국은 이것도 인간의 선택지 중 하나일 텐데, 인간이 빠진 하이테크 세상은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를 불러온다는 경고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필자인 유민호씨가 언급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선의 하이테크 전쟁상은 우리 곁으로 바싹 다가온 디스토피아를 보여줍니다. 2022년의 세상은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달라질 것이 분명합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세상의 변화를 호흡하려고 합니다.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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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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