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자녀·친인척도 있다”
“청와대 수석급이 인사 청탁”
소문 쏟아지면서 내부 술렁
석호익 부회장, 김규성 사장, 이춘호 사외이사, 허증수 사외이사, 김은혜 전무, 이태규 전무, 서종렬 전 전무 (왼쪽부터).
석호익 부회장, 김규성 사장, 이춘호 사외이사, 허증수 사외이사, 김은혜 전무, 이태규 전무, 서종렬 전 전무 (왼쪽부터).

KT 내부에서 일명 ‘낙하산 인사’로 거론되는 임직원이 적어도 40명은 된다는 주장이 제기돼 ‘김은혜 인사 파문’이 증폭되고 있다. 방송사 앵커에서 2008년 이명박 청와대의 ‘입’으로 기용됐던 김은혜 전 대변인이 최근 KT 콘텐츠전략담당 전무로 영입됐다. KT가 통신 업무 이력이 전무한 김 전 대변인을 영입하자, 여야 정치권은 물론 KT 안팎에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조차 “이번 참에 ‘KT 낙하산 부대’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내부 전문가는 명퇴로 내치면서…”

통신업계에선 김은혜 전무의 ‘KT 입사설’이 몇 달 전부터 거론돼 왔다. 부사장급으로 영입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았으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무급으로 한 단계 직급을 낮췄다는 말도 나온다. 외부 인사영입에 필요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논란에 대해 KT는 “목적과 필요에 부합하는 인사를 절차에 따라 영입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정치권 주변에선 김 전무를 추천한 청와대 고위인사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형식적 절차를 거쳤을 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KT 내부 관계자는 “일일이 확인하진 않았지만 낙하산 인사 논란은 임원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어디서 어떤 줄을 타고 입사를 하는 건지는 몰라도 과장급과 부장급 자리에도 영입된 인사들이 상당하다. 임직원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40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낙하산 인사들은 대체로 KT의 주력사업인 통신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외부인사 영입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 정부 들어 일부 정치권 고위 인사의 자녀와 친인척까지 KT에 입사했다는 내부 증언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실제로 직원들 사이에선 “누구누구는 청와대 수석급 인사가 회사 윗선에 민원을 제기해 취직이 됐다”는 식의 말이 돌고 있다. KT 관계자는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에 대해 내부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불만이 많다. 지국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해도 승진은커녕 명예퇴직 대상자가 될 뿐이라면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견제역할 해야 할 노조도 침묵

KT 내부에서 사측의 견제역할을 담당해야 할 노조는 이번 사안에 대해 입장표명을 미루고 있다. KT노조는 최근 민주노총을 탈퇴한 이후 사측과 노사상생 코드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발한 일부 직원들은 “회사의 투명성을 담보할 복수노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KT는 낙하산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홍보실 서민우 상무는 “해당 임원이 와서 일을 해보고 잘하는지 못하는지 평가하면 되는 것 아니냐. 우리도 전략적 목적에 따라 외부 인사를 영입한 건데 오기도 전에 언론에서 뭇매를 때려 힘들다”고 해명했다. 서 상무는 또 “김은혜 전무는 본사와 계열사로 나뉘어진 콘텐츠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어느 분이 추천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김 전무가 진퇴 문제를 밝힐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실세의 친인척과 자녀들이 입사했다는 지적에 대해 서 상무는 “누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지 알려달라. 그런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KT가 임원의 급여와 성과급을 인상한 부분에 대해서도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KT 이사회는 올초 이사 보수 한도를 높이고 임원 퇴직금을 상향조정하는 안건을 처리해 눈총을 받았다. KT는 이에 앞서 지난해 5992명의 사상 최대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직원을 구조조정한 바 있다.

야당에선 김은혜 전무의 KT 입사와 관련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다” “이런 게 현 정부가 말하는 공정사회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나라당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뛰었던 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이런 인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토해냈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조직파트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권력은 칼자루를 쥔 사람이 휘두르는 것이다. 칼자루를 쥔 사람에 의지해 칼날을 잡고 행세를 하다 보면 언젠가 출혈이 생기게 마련”이라며 우려감을 피력했다. 한나라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올초 청와대 참모들 재산신고에서 1위를 한 김 대변인이 선출직도 아니고 수억원을 받는 통신사에 입사한 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고 주장했다. KT 전무급 임원의 연봉과 성과급을 합치면 1년 수입이 3억원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민영화된 KT는 직원 3만2000명에 연매출 20조원의 국내 최대 통신업체 중 하나다.

사령탑 이석채 회장 임명 때부터 논란

KT의 낙하산 인사 문제는 사령탑인 이석채 회장 임명 당시부터 논란이 됐었다. 이 회장은 현 정부 들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을 지낸 친정부 인사로 통한다. 그는 또 LG와 SK 등 KT의 경쟁사에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경쟁사에 근무 경력이 있으면 입사가 제한된다’는 내용의 회사 정관의 적용을 받아 회장 임명이 사실상 불가능했으나 KT는 회사 정관을 고쳐가면서 이 회장이 취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정보통신부 관료 출신인 석호익 부회장은 통신분야 전문가이긴 하지만 지난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북 성주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인사다.

이 회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청와대 혹은 실세 정치인의 후광을 입은 친정부 인사들의 KT행은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초대 여성부 장관 후보였던 이춘호씨도 현재 KT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씨는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관련 의혹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해 낙마했던 인물이다. 허증수 사외이사도 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으로 인수위 시절 향응·접대 의혹이 불거져 중도 사퇴한 바 있다.

김규성 KT엠하우스 사장은 대통령직인수위 경제분과 상임 자문위원을 지냈고 서종렬 전 KT 미디어본부장도 인수위 출신이었다. 서 전 본부장은 최근 김희정 현 청와대 대변인이 거쳐간 한국인터넷진흥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사장급 중 일부 인사도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활동했던 친정부 인사들로 채워졌다.

전무급 인사들 중에도 통신분야 비전문가로 영입된 낙하산 케이스가 상당하다고 한다. 이태규 KT경제경영연구소 전무는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출신이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조만간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으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이밖에도 통신사업과 무관한 금융권 또는 생활용품 회사에 재직하다가 최근 전무급으로 영입된 인사들이 더 있다. 내부 직원들은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은 명예퇴직을 받으면서 비전문가는 계속 영입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KT 계열사 대표로 영입된 인사들도 이석채 회장과 친분이 두텁거나 정치권과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져 내부에서 불만이 높다. KT는 KT렌탈, KT캐피탈 등 모두 2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KT는 계열사 사장을 인선할 때 배수 후보를 올려 임원진에서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KT 서민우 상무는 “회장님이 각 계열사별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건 본연의 업무다. 회사 전략에 맞는 인물은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 회의에서 결정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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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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