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 일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로 70~80년 된 한옥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종로구 익선동 166번지 일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로 70~80년 된 한옥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에 올겨울 들어 첫눈이 내린 지난 11월 18일 오전, 쌀쌀한 날씨에 70대인 정씨 할아버지는 익선동 골목길의 낙엽을 쓸고 있었다. 익선동은 서울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 인근 골목 안쪽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한사코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정씨는 “익선동에서만 40년 살았다”고 말했다. “여기(익선동 166번지 일대) 건물들은 죄다 50~60년은 된 것들이야. 어떤 건물은 70~80년 된 것도 있어.” 정씨가 사는 집도 194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바람 불면 춥지, 요새는 지붕에 비도 새더라고. 그래도 가끔 손자 손녀들 오면 ‘마당이 있네’라고 좋아하길래 그냥 여기 살고 있어.” 정씨 부부가 사는 안방과 사랑방을 제외하고 나머지 문간방은 세를 놓았다. 지금 익선동 원주민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 방을 나눠서 세를 놓아 세입자가 들어 살고 있다. 정씨는 “여긴 옛날부터 힘겨운 서민들이 살던 곳”이라고 말했다.

종로구 익선동은 동쪽의 종묘, 서쪽의 인사동, 북쪽 창덕궁과 북촌, 남쪽 종로 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북촌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종로 거리가 빌딩숲으로 변할 때까지 40~50년간 거의 변함없이 옛 모습을 지켜온 숨겨진 동네다.

1930년 당시 건설회사 ‘건양사’를 운영하던 정세권씨는 도시형 한옥마을을 개발하기로 하고, 익선동을 첫 번째 개발 구역으로 정했다. 정세권은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라고 불린다. 넓은 땅을 사들여 한옥을 다수 지어서 일반인에게 분양했다. 지금의 북촌 한옥마을도 정세권이 만든 것이다. 익선동은 북촌보다 앞서 정세권이 근대식 한옥마을로 개발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주택 보급이 부족하니 지역을 재개발해 보급형 한옥을 지어 팔았다. 익선동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 주거 단지다. 북촌은 예부터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던 반면, 익선동은 개발 당시부터 서민을 위한 곳이었다. 그래서 익선동에는 전통 한옥과 달리 한옥과 양옥의 중간 단계, 즉 ‘도시형 한옥’이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1988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한옥에서 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30년 넘게 ‘한옥 지킴이’ 역할을 자청해 온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익선동 도시형 한옥은 그 형태가 다양하다. ‘ㅁ’ 자, ‘ㄷ’ 자 형태로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는 한옥이 있는가 하면 ‘ㅡ’ 자형 한옥도 두 채가 있다. 내부 구조도 다양해 전통 한옥처럼 방이 떨어져 있는 한옥도 있지만, 양실 마루가 있는 한옥도 있다. 파우저 교수는 “일반적인 도시형 한옥의 특징은 대지 주변에 건물이 있고 가운데 마당이 있는 것, 집과 담과 벽이 하나인 것”이라며 “익선동의 다양한 주택 실험을 바탕으로 가회동 31번지, 북촌 한옥마을 개발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광복 후 익선동은 서울의 번화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살다가 1965년부터 익선동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종로구 골목길해설사 김금주(63)씨는 당시 북적거렸던 익선동의 풍경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5호선 종로3가역이 있는 데가 원래는 윤락업소가 밀집한 곳이었어요. 당시에는 유명한 요정집도 익선동에 다 있었습니다. 지금 이비스호텔이 있는 자리는 원래 우리나라 1호 요정 ‘오진암’이 있던 자리예요. 그 주변에 ‘명월’ ‘대하’ 등 유명한 집이 몰려 있었지요.”

1969년 12월 13일자 동아일보에는 ‘서울의 으뜸’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 중 하나로 최고급 요정들이 소개됐다.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곳은 종로구 익선동의 오진암. 방 아홉 개에 사십여 명의 호스테스를 거느린 이곳은… 한 달 세금만 123만원을 물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세금을 많이 내는 요정 3위가 익선동의 대하, 8위가 익선동 청풍이다. 김금주씨는 “예전에 박정희 대통령이 5·16군사정변 당시 저녁식사를 대하에서 했다고 들었다”거나 “한정식집 송암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라며 정치인들도 자주 찾던 1960~1970년대 익선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결혼하고 신혼집을 익선동에 지었다고 했더니 고모할머니가 말리시더라고요. 환락가인 거기에 왜 집 짓고 사느냐고요.” 김씨는 지도를 가리키며 40~50년 전 익선동을 설명했다. “오진암이 있던 지금의 삼일대로 위쪽으로는 명망 높은 사람들이 더러 살았어요. 지금은 옛 한옥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 익선동 166번지 일대는 주변에서 장사하는 서민들이 주로 살고요. 그 아래로 서민들이 자주 찾는 윤락업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익선동은 숨겨진 동네가 돼갔다. 채 1㎞도 떨어지지 않은 북촌이 2000년대 들어서 서울시와 관광 당국이 앞장서 개발해 관광지가 된 것과 달리 익선동은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세월을 보냈다. 2004년에는 익선동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지만, 최근 주민들의 반대와 익선동 한옥 골목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들의 주장으로 인해 계획이 보류되기도 했다. 2010년에는 요정 오진암이 폐업하고 그 자리에 지난 10월 25일, 비즈니스호텔이 들어섰다. 그리고 1930~1940년대 지어져 근 70~80년이 지난 집에서 이제는 살기 불편함을 느낀 집주인들은 집을 세놓고 익선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지금 남아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세입자다. 익선동에서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남명숙(70)씨는 익선동 166번지 일대에서 세들어 살고 있다.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역 앞에서 장사를 했다”는 남씨는 “여기 사는 사람들 대부분 역에서 가깝고 다른 곳보다 그나마 방값이 싸니까 들어와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씨가 사는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은 모두 8가구. 대학생이나 직장인처럼 20~30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익선동 166-68번지에서 ‘세탁’ 두 글자만 내어놓고 영업 중이던 ‘세탁소 사장 김씨’는 맡긴 옷들을 정리하며 “이 동네는 뜨내기들이 대부분”이라면서도 “얼마 전에 이사 온 젊은이는 한옥이 좋아서 여기로 왔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이제는 사라진 옛 서울의 풍취를 느끼기에 익선동은 제격이다. 영하의 추위가 찾아왔던 지난 11월 19일 오후에 익선동 166-36번지 골목에서 만난 프리랜서 사진작가 가가와 요시히코(38)는 물어물어 익선동을 찾아왔다. 가가와씨가 한국을 찾은 것도 벌써 여덟 번째. 한국 문화에 빠져 한국적 경치를 사진에 담으려 경주, 안동, 전주 등을 드나들었지만 서울 익선동 거리를 보고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 사극을 좋아하는데 경복궁을 갔을 때와 익선동에 왔을 때 느낌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진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가가와씨의 얘기다.

익선동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은 것은 가가와씨뿐만 아니다. 익선동 166번지에 있는 디자인스튜디오 ‘오디너리랩’의 김지은·유혜인씨는 ‘마음 편한 곳을 찾아’ 북적거리는 홍대 거리를 떠나 익선동으로 왔다. “지금이야 상점도 조금 생기고 했지만 저희가 이사왔을 때만 하더라도 여긴 아주 조용한 동네였어요.” 김지은씨는 익선동에 남아 있는 오래된 흔적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젊은 디자이너들이라 빠르게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맡을 때가 많거든요. 시간에 쫓겨 일하다 보니 문득 삶의 여유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주 오래된 집들과 오래 산 사람들이 많은 이 동네가 여유를 가져다 줄 것 같았습니다.” 익선동에서 두 사람은 ‘아마추어 서울’이라는 서울 골목길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지도는 서울 종로구 원서동과 계동 길.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이 익선동 길이다. “사실 익선동에서 뭔가 거창한 걸 보려고 하면 안 돼요. 관광지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천천히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 이런 곳이 남아 있었구나’ 감탄사가 나올 겁니다.”

전통찻집 ‘뜰안’은 익선동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뜰안’의 한옥도 193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위) 15년 동안 백반을 3000원에 팔아온 ‘부산집’(아래 왼쪽)이 익선동의 터줏대감이라면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랩’(아래 오른쪽)처럼 새로 생겨난 공간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전통찻집 ‘뜰안’은 익선동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뜰안’의 한옥도 1930년대에 지어진 것이다.(위) 15년 동안 백반을 3000원에 팔아온 ‘부산집’(아래 왼쪽)이 익선동의 터줏대감이라면 디자인 스튜디오 ‘오디너리랩’(아래 오른쪽)처럼 새로 생겨난 공간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한 블록만 들어오면 아주 낡은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나온다. 동서로 뻗은 골목길 한 끝에는 ‘가정식 백반 균일 3000원’ 간판을 내건 ‘부산집’이 있다. 오전 10시, 아침과 점심 사이의 애매한 시간인데도 식당 안에는 10여명의 손님이 각자 끼니를 해결하는 중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닭곰탕. 3000원짜리 정식인데도 닭 반 마리와 ‘고봉밥’으로 쌓아 올린 흰쌀밥이 쟁반 가득 담겼다.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던 ‘식당 아줌마’는 “15년째 여기서 3000원만 받으며 버티고 있다”면서 “물가도 한참 올랐는데 가격을 그대로 받으려니 남는 게 없다 못해 적자다”며 한숨을 쉬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든든히 끼니를 해결하고 골목길에 들어서면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은 한옥들이 보인다. 담벼락이 집의 벽인데, 창문은 철창살을 끼워 둔 집이 유독 많았다. 벽을 쌓은 모양도, 지붕을 이은 모양도 다양하지만 세월에 빛바래 낡은 흔적이 보이는 점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깔끔해 보이는 집이 있다. 익선동 166-40번지에 있는 ‘올재 게스트하우스’. 올해 4월에 문을 연 이곳은 익선동 유일의 숙박시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ㄷ’ 자 형태의 건물이 나타난다. 작은 마당을 둘러싼 방들의 이름은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등 팔도의 이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김효정(50)씨의 딸 천소민(27)씨는 “방이 6개라 6개 도 이름만 붙였다”며 웃었다.

이들 가족이 익선동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게 된 것은 익선동에서 추진됐던 재개발계획이 무산되고 난 뒤의 일. “원래는 분당에서 살았는데 익선동에 집을 마련하면서 이 집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게스트하우스를 열기로 했어요.” 천소민씨는 익선동이 “신기한 곳”이라고 말했다. “이 집만 해도 1947년 지어져 벌써 70년 가까이 된 집이거든요. 그런데 구조를 조금 손본 것 빼고는 튼튼해서 오히려 운치가 있어요.” 알음알음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명동, 강남 등지의 호텔보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아침식사는 거실에서 다 같이 하거든요. 천장을 기와지붕 모양으로 투명하게 해둬서 비가 오면 빗소리도 들려요. 외국인들은 한옥이 바깥 풍경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아늑하다며 좋아해요.” 올재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고 나서 익선동에는 외부인이 드나드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최근 들어 익선동에는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옛 정취를 느끼려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찾아오곤 한다. 이들이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쉴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곳은 익선동 166-76번지에 있는 전통찻집 ‘뜰안’. 2010년 한·일 합작영화로 개봉한 ‘카페 서울’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뜰안’이 들어선 한옥도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김애란 대표는 “이미 상업화된 북촌, 서촌보다 조용하지만 더 전통적인 익선동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건물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천장의 서까래만 보수하고 ‘ㄱ’ 자 형태 집의 마당을 정원으로 꾸미는 등 내부만 약간 손봤다. “손님들이 와서 하는 얘기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있는 곳은 오랜만’이라고 그래요. 원래 건물이 워낙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곳이라서 요즘은 건축, 역사 공부하시는 분들도 더러 찾아오세요.”

그러면서 ‘뜰안’은 익선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옥마을과 옛 골목을 지키기 위해 공부하는 연구 모임도 찻집에서 종종 열립니다.” 김 대표는 “익선동을 지켜야 한다거나 한옥마을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보다 이런 곳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아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낡았다는 이유로 재개발해야 한다거나 옛 모습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보다 한옥마을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로버트 파우저 교수는 “한옥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한옥이 계속 진화했다면 ‘불편하다’는 얘기가 없었겠지만 193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그대로 지내다가 산업화와 더불어 한옥 주거 형태가 급격히 사라진 것이 문제”라는 파우저 교수는 “서촌을 보면 일반인의 주거 공간으로서 진화된 한옥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한옥을 양식 주거 형태로 완전히 고치지 않아도 조금만 고쳐 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익선동은 20세기 도시형 한옥의 본 모습을 가지고 있어 건축적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특히 빌딩 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익선동의 장점이다. “도시는 다양한 경관, 풍경이 있어야 재미있는 곳이 됩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한옥과 양옥, 여의도나 테헤란로와 북촌 등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건축물이 있어야 하는데 익선동은 그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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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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